[Review] 뜨겁게 살아 숨쉬는 영원을 보는, 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

글 입력 2017.06.0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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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를 통해 모리스 드 블라맹크 전에 다녀왔다. 국내 최초로 열린 블라맹크 단독전인데다 그 강렬한 작품들을 꼭 눈에 담고 싶었기에 신청했는데, 비록 내가 원하던 시기보다는 조금 이후의(세잔의 영향을 받은) 시기의 작품들이 대다수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전시다운 전시를 보아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블라맹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자리였다.


3 - Les Toits rouges, 1908, oil on canvas, 79 x 92 cm.jpg
 [빨간 지붕, Les toits rouges, 1908]


이번 전시의 첫번째 섹션은 세잔에게 영향을 받은 시기의 블라맹크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블라맹크는 자신이 본 것만을 재해석하여 그려내던 작가였기에 파리 근교 시골의 모습들을 유추해볼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만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그의 초반 작품들에서는 전혀 인적이 없고 또 그려져 있는 대다수의 집에서 창문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굉장히 성의없게 그려졌다는 점이었다. 집을 그렸을 때 창문을 그리지 않는 것은 심리적으로 폐쇄된 상태라는 것을 암시하는데, 어쩌면 젊었을 때의 블라맹크는 감수성이 예민해서 마음을 그다지 오픈하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열지 않는 만큼, 자신의 마음 속에서 샘솟는 그 수많은 감정들과 인상, 영감들을 화폭에 쏟아냈던 것 같다.

세잔의 영향으로 푸른색의 영향이 강한 그림들을 그려가면서도 블라맹크의 그림에서는 여전히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의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부유하고 있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었다.


39 - La Route sous la neige, 1931, oil on canvas, 81 x 100.5 cm.jpg
[눈길, La route sous la neige, 1931]


블라맹크의 장년기에 접어들면 눈 덮인 마을과 길에 대한 그림들이 대다수 보인다. 블라맹크 작품의 정체성, 그 화풍의 정수를 보여주는 동시에 블라맹크라는 인물 자체를 아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하자면 흰색을 이렇게 멋드러지게 표현해내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블라맹크가 그린 겨울 풍경들에서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그 모습과 질척하게 녹아내리는 그 모든 질감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각각 다른 매력을,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30년대 이후의 작품들을 보면, 블라맹크에게서 anonymous하지 않은 상태의 인간들을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다. 맨 처음 있었던 1 전시관에서는 그 많은 풍경 속에서도 사람을 전혀 찾을 수 없었고, 그의 작품 속에서 보이는 풍경들은 마치 집(블라맹크 자신)을 건들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숲, 덤불로 감싸안은 형태로 그려졌다. 사람이 유일하게 그려졌던 작품에서는 파란색으로 사람의 형체를 표현하여 흘깃 보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anonymous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에 반하면 그의 장년기에 접어들어서는 여전히 그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하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이라 식별할 수 있는 형태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만큼 블라맹크의 내면이 안정되어 갔던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닫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열어가며 그의 그림도 보다 인간적인 따뜻함을 품어갔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근본적으로 타고난 멜랑꼴리함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 같다. 특히 눈 오는 겨울을 그린 그림들은 흰색과 어두운 회색의 극적인 대조를 보여준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서 자연스레 베토벤이 떠올랐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간 베토벤의 극적인 대비가 연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블라맹크는 베토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토벤이 작품 속에서 자신의 어두운 내면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면, 블라맹크는 작품 속에 자신의 어두운 내면과 생동하는 그 모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대비시켜 나타냈다. 내면의 명암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그 극적인 대비를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는 것으로 느껴진 것이다.

 
46 - Bouquet de coquelicots, c.1936-37, oil on canvas, 55,5 x 38 cm.jpg
[양귀비꽃, Bouquet de coquelicots, 1936-7]


눈 오는 풍경만큼이나 이번 전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블라맹크의 화병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는 모든 작품 옆에 블라맹크의 글을 인용해 두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예술가에게 있어 인생의 꽃은 작품이라는 대목이었다. 작품으로 결국 모든 것을 말하길 원했던 블라맹크는, 화병을 그리면서도 어두운 배경과 활력이 넘치고 아주 생생한 색조의 꽃들을 그려 마치 꽃이 지금 내 앞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했다. 있는 그대로 그리는 동시에, 자신의 재해석을 통해 드러난 이 화병들은 그 앞에 서게 되면 정말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시듦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 순간을 정말 아름답게 피워내는 그 찰나를 영원으로 담아낸 화폭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52 - Retour de peche. Bretagne, 1947, oil on canvas, 60 x 73 cm.jpg
[브르타뉴 어선의 귀환, Retour de peche, Bretagne, 1947]


몇 안되게 블라맹크가 그린 바다 작품은, 그가 하늘과 물을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다. 특별히 그의 '범선'은 정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범선의 이미지 파일이 없어 포스팅에 포함시킬 수 없는 것이 정말 아쉽지만, 파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알 것 같다. 블라맹크의 그림은 정말 실제로 보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논할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프레임 안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색채감과 터치감, 구도와 컨텍스트는 현장에 서지 않는 이상 느낄 수가 없는 것 같다.





뜨겁게 살아 숨쉬는 영원을 목도한 자리였다. 블라맹크가 가졌던 변덕과 멜랑꼴리함, 그 모든 내면들이 얽히고 뒤섥혀 이렇게 아름다운 관현악 같은 작품들을 그려낸 것이 경탄스러웠다.

8월 20일까지 이어지는 모리스 드 블라맹크 전은, 그가 얼마나 찬란하게 자신의 삶을 통해 꽃을 피워냈는지를 모든 관람객들이 목도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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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에밀리
    • 범선...!! 저도 모든 그림 중에 범선이 제일 좋았어요 ㅠㅠㅠ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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