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색과 상암, ‘춘몽’ 속 경계 [문화 공간]

수색과 상암, 이 어색한 공간-경계 속에서 영화 ‘춘몽’이 탄생했다.
글 입력 2017.06.02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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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수색-상암 터널> <상암>


   수색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오면, 오른 편으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이 낮고 좁게 달려있는 건물들이 보인다. 치안 센터에서 꺾으면, 작은 터널이 하나 나오는데, 수색과 상암을 연결하는 지하 통로다. 알록달록 칠해져 있는 터널을 지나면, 수색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상암이 자릴 지키고 서있다.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영화 ‘춘몽’ 속 주인공들이 영화를 보던 한국영상자료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수색과 상암, 이 어색한 공간-경계 속에서 영화 ‘춘몽’이 탄생했다.

   장률 감독은 영화 ‘춘몽’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수색-상암 터널 하나를 지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이 말을 듣고 난 후로부터 수색-상암 터널을 지나갈 때마다 필자는 그 오묘한 경계, 그 느낌을 놓칠 수가 없었다. 이 터널 안은 그 어디의 것일지 곰곰이 짚어보기도 한다. 가끔 함께 터널을 걷는 사람들은 과연 건너편의 세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고민해본다. 분명 수색과 상암은 몇 분만 걸으면 오갈 수 있는 연속된 공간이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타고 났다. 분위기뿐만이 아니다. 애초에 소속 구부터가 각자 은평구와 마포구로 전혀 다른 소속이다. 이쯤의 생각과 정보들이 쌓이게 되면, 영화 ‘춘몽’의 ‘춘몽’과 그 배경이 된 ‘수색-상암’은 결코 우연이나 무의미함이 아님을 눈치 채게 된다.

   먼저 그도 그럴 것이, 장률 감독의 영화는 제법 오랜 시간동안 경계의 장소를 사랑해왔다. 그의 영화 ‘경계’는 몽골의 초원과 사막 사이의 경계가 배경이고, ‘두만강’은 두만강 일대가 배경이며, ‘이리’는 이리역 사고 이후 여전히 익산이 아닌 이리에 머물고 있는 인물들을 다루었다. ‘경주’ 역시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즉 죽음과 삶의 경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장소로 유의미하다. ‘춘몽’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엔 서울의 ‘수색-상암’이 그 경계의 장소로 낙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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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그런가, ‘춘몽’은 배경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맛이 좋게 붙는다. 물론 주로 다루고 있는 배경은 수색에 가깝지만, 수색-상암 속 경계의 의미는 영화의 간을 딱 좋게 맞춘다(물론 수색 자체에 경계의 분위기도 서려있다). 제목부터가 ‘춘몽’. 무색하리만큼 폴폴 날아가 버리는 꿈. 가볍게 날아든 꿈은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꾸는 이에게 혼란을 가져다준다. 꿈과 현실의 경계는 찾기가 어렵고 모호하게 겹쳐있다. 마치 춘몽을 꾼 것처럼. 그러나 꿈에서 벗어나, 현실의 윤곽선이 점점 분명해질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허무함과 혼란을 겪는다. 마치 수색-상암 터널을 지나온 누군가 같이.

   덧붙여 제목에서 얘기하는 ‘춘몽’은 꿈과 현실간의 경계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이해하기도 어렵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디아스포라 자체다. 딸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 역시 죽음과 삶의 경계를 품고 있다. 이분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은 영화의 흐름과 결말 속에서 서로를 흔들어 깨우며 관객들에게 잘 지켜보고 있어 달라 말한다. 수색과 상암은 이런 의미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내용뿐만 아니라 상징적으로도 훌륭히 전달하고 있다.

   한땀 한땀 장률 감독이 담아낸 경계 속에 우리는 지나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감회와 의심을 안게 된다. 수색과 상암, 그 터널을 건너며 우리는 그간 무슨 생각을 해왔는가? 극명하게 갈리는 두 공간의 차이를 한 감독은 경계의 이미지로 연결 지어 냈다. 영화의 한 장면을 걷고 있는 그 순간순간, 수색과 상암 사이 숨어있는 무언가, 그 ‘무언가’가 내 걸음걸음을 멈칫하게 만든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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