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아시아권에서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글 입력 2017.06.01 09: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미움받을 용기』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청년이 아들러 심리학을 익힌 철학자를 찾아가 다섯 날의 밤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서사적인 설명이다. 아들러 심리학의 주요 골자를 읽기 쉽게 '대화'라는 형식으로 재배열하여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책이기도 하다.

 다섯 날의 밤은 제각기 다른 테마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밤, 청년은 철학자의 지론에 논박하기 위해 그의 서재에 앉아 있다. 철학자는 아들러적 목적론에 입각하여 청년의 트라우마와 불행이 전적으로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감정, 과거에 지배받지 않는데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는 것이다. 아들러에 따르면, 생활양식(life style)은 다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데 인간이란 온갖 핑계를 대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존재이다. 소년은 생각을 재고해서 다시 방문하겠다고 말한다.

 두 번째 밤, 소년은 아들러의 목적론이 궤변에 불가하다며 철학자의 생각에 반기를 든다. 철학자는 소년의 반론에 이는 전적으로 용기 부여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하였으며, 특히 열등 콤플렉스의 문제, 자랑, 경쟁, 비교, 복수, 분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설파한다. 아들러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인생의 과제'이다. 여기에는 행동의 목표가 뒤따른다. 자립이 가장 우선시되고, 사회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행동에는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것과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을 함양하는 심리적 목표가 뒷받침된다. 하지만 청년은 여전히 의문한다. 용기를 부여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철학자는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며 말을 맺는다.

 세 번째 밤, 소년은 2주 동안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했으나 명쾌한 해답은 얻지 못하고 자신이 부자유하다고 여긴다. 철학자는 여기에서 '과제의 분리'라는 개념을 천명한다. 이것은 누구의 문제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관계의 고민은 단숨에 해결된다. 인간관계를 '과제의 분리' 차원에서 응시하게 되면 주도권은 '내'가 쥐게 된다는 것이다.

 어언 네 번째 밤이다. 소년은 과제를 분리한다는 발상이 유용하다고 여겼으나 결국 그렇게 사는 인생이란 고독하기 마련이라며, 차라리 자유보다 부자유를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가지고 방문을 두드린다. 철학자는 이에 대해 '과제의 분리'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개념일 뿐, 인간관계의 진정한 목표는 '공동체 감각'을 향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일원일 뿐이라는 생각을 견지하며 수평적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다섯 번째 밤이 도래했다. 청년은 아들러의 의견이 틀린 건 아니지만 너무 인간관계에 치중한다는 문제를 지적하고자 했다. 또한, '공동체 감각'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철학자는 청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이라는 개념을 차례로 설명한다. 결국 이들의 논의에서 도출된 사실은 행복이란 공헌감이라는 것이다. 아들러에 따르면, 인간이란 '지금, 여기'에 살아가며 타인에게 공헌함으로써 비로소 행복해진다. 그럼으로써 나 자신은 만족감과 의미를 얻게 된다.





 전히 17년 5월 8일 기준 반디앤루니스 베스트셀러 13위를 수성하고 있는 책이다.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심리학이라는 이론에 기초하여 짜여졌으므로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봤고, 실제로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적어도 인간관계 문제로는 속을 덜 썩히게 된다는 확실한 이점이 있다. 분명 유익한 부분이 두드러질 뿐더러 심리학자와 전문 작가의 공저로 무엇 하나 지적할 만한 결점이 없는 깔끔한 책이다. 그렇다고 이번 서평을 책에 대한 찬양으로 일변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인지에 대한 나의 작은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작년 이맘때쯤 사회주의 국가였던 베트남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풍경은 좋았지만 실망스런 부분 역시 적잖은 여행이었다. 제아무리 상이한 사회체제를 가지고 있다한들 자본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명백해졌다. 이런 얘기를 하자니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한 아프리카 부족에 속한 가족이 자녀의 대학 교육을 위해 그들의 전통을 인위적으로 유지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한 주민은 인터뷰 도중 이렇게 야만인 취급 받으면서 살아가는 게 신물나지만, 자식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물려주고 싶어 일을 계속하고 있다며 눈물 흘렸다. 이는 자본의 입김이 문화까지 닿는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나는 인간이 언제나 욕망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 욕망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까지 금지되는지에 대한 딜레마는 중요한 논쟁거리일 것이다. 따라서 이 논제 역시 자유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인데, 이에 대한 원론적인 답은 명쾌하다. 『자유론』을 펴냈던 존 스튜어트 밀마저도 "개인은 오로지 타인과 관련된 부분에만 사회에 책임을 진다"라고 말했다. 즉, 이는 자유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 할 것이다. 
 
 나는 아들러 심리학에 한 층 더 나아가 인간관계의 문제는 '더 자유롭고자(더 누리고자)'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제딴에 오래 살았다고 임산부석에 다리 쩍 벌리고 앉아있는 노인, 슈팅 게임하듯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재산 불리기에 급급한 재계 인사들. 이들은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법률과 관습에 반기를 든다. 이 경우 타인이 자유를 누릴 권리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법률과 관습이 애당초 근본부터 잘못되었다면 어떨까? 오늘날 자본주의는 전적으로 서구에서 도입된 체제이다. 그렇다보니 남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의 제3국은 각국의 문화에 따라 저마다 상이한 진통을 겪어야했다. 한국 역시 오늘날까지 이러한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동양권의 체면치레 문화일 것이다. 유교적 전통은 서구 자본주의와 상통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하등 무익한 권위주의에 기여하고 있을 뿐, 이 나라의 99%에겐 전혀 유익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우리는 먼먼 길을 돌아왔다. 숙려의 결과, 나는 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승자독식 체제에서 더 가지고자 하는 욕망은 보다 실현되기 용이해진다. 이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조장하는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착취란 '사적 소유'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 영역에서도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즉, 한국 특유의 술자리 문화, 직장문화 등의 '눈치보기'는 더 누리고자 하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와 변질된 유교적 전통이 결합된 문제라는 것이다. '인간관계' 역시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사회학에서는 개인과 개인을 사회의 최소 단위로 규정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모든 사회에선 파워 게임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매우 복합적인 이유로 사회에서 개인들은 동등할 수 없다. 이러한 논리는 자본주의 치하에서 더더욱 부각되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문화적 양극화'다. 이는 비단 계급이 높고 낮음으로부터 비롯하지 않는다. 나이, 출신, 학력 등 특정 분류에 따른 상급자가 하급자를 옭아맬 수 있다. 친구, 연인 사이에서마저도 사회 통념상 인정하지 않을 뿐 상급자와 하급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갈등은 착취를 흉내낸 차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인가에 대한 논의는 쓸쓸히 마무리된다.
 
 우리는 차별하지 않으면 차별당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열심히 일을 하고, 출세를 하려 하지만 도무지 남아나는 것이 없다. '공존'이라는 개념 역시 누군가의 불평등한 희생으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해답을 제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참, 재미없는 세상이지 아니한가?


[조현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