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휴학예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5.3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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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2017년 1학기 종강이 가까워지고, 한 학기 치 나의 휴학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작년 12월 종강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업을 안 들은 지 거의 다섯 달이니 참 오래도 됐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 보면, 사실 딱히 별 건 없다. 짧은 여행을 한 번 다녀왔고, 글을 썼고,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며 돈을 벌었고, 공연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문화생활도 하고, 뭐 그냥 남들 다 하는 이런 것들... 딱히 휴학을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 아주 없진 않다. 사정상 재학 중에 한 번밖에 휴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엄청 신중하게 결정한 것에 비해 그다지 ‘큰 일’을 하지는 않았다. 휴학을 망설였던 이유에는 그것도 있었다. 언젠가 인턴이나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휴학해야 할 수도 있는데, 지금 해 버리면 의미 없이 시간만 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아쉬운 마음이 잠깐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휴학이 끝나가는 지금 나는 휴학이 정말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최고다 휴학 최고! 왜냐하면 휴학하기 전의 나는 여유가 없었고, 불안했고 시간에 끌려갔던 데 비해 휴학을 한 지금은 남들보다 뒤쳐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유롭고 멘탈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아직 복학하지 않은 휴학생이 하는 말이므로 신빙성이 약간 떨어질 수도 있다. 그저 노느라 정신 없었고 전공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던 1학년, 그리고 그 후폭풍으로 찾아온 대2병과 싸웠던 2학년, 4학기를 마치기 전에는 제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바람일 뿐이었고 시간은 속절 없이 가 버리기만 한다는 것을 알았고, 4학기를 마치자 아직 정말 늦은 것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절반이 지나갔을 뿐이다. 물론 보통 절반이 지나가면 고학번으로 취급하지만, 새내기와 같은 마음으로 여유를 가져 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휴학은 정말 좋은 방법이었다.

 며칠 전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내 휴학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하릴없이”라는 말을 했다. 목표가 있긴 했지만, 뚜렷하지는 않았고, 물론 다 달성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휴학을 결심할 때엔 몰랐던 생각 외의 것들도 다 나에게 경험이 되었다. 이것 저것 일을 벌려 주변에서 잔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쓸데 없는 일을 너그럽게 할 수 있다는 것도 휴학의 특권이지 않을까. 여유가 없을 때는 시도하지도 못했던 일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얻게 된다거나, 새로운 적성을 발견한다거나 할 수도 있고. 물론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이런 것들이 얻어 걸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휴학을 하면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냥, 휴학은 진짜 그냥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하고 싶으니까. 휴학. 말 그대로 학업을 쉬고 싶으니까. 휴학을 하고 무엇을 하든지,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휴학은 7년 이상을 방학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쉬지 못했던 대한민국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서야 최초로 당당하게 학교를 쉴 기회를 제공하는 빛나는 특권이다.

 그렇다고 휴학을 꼭 해야 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각자 추구하는 진로와 커리어에 따라 휴학의 목적은 많이 다르고, 휴학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와 같이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휴학 한 번 정도는 별 것 아니니 그냥 해버려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어진 학업에 너무 지쳐서 쉬고 싶은데 휴학하고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망설이고 있다거나 하는, 남의 눈치 보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말하고 싶다. 휴학은 그냥 해도 된다고.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거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사색할 시간을 가지거나, 남들 시험기간에 침대에 누워 시험과 과제에 치여 보지 못했던 드라마를 정주행한다거나, 책을 읽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스펙이 아닌 일상 어느 것 하나 짜릿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찌든 삶을 탈출하기만 해도 새로운 시야가 트일 것이다. 살짝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한데, 나중에 면접관이 “휴학 하고 뭐 했어요?”라고 물었을 때 “그냥 쉬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정말 그랬을 경우 같은 대답을 할 각오로 휴학을 결심했고, 결과는 만족스럽다. 아직 면접장에 가 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거야 원래 모두들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는 하니까 지금은 모르는 척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소중한 휴학에 열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휴학 최고!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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