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래서 나의 진짜는 뭔데? - 영화 '최악의 하루'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5.29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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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꼭 완벽해야 하는 걸까?  


 많은 영화에서의 주인공들은 왜 총에 맞고 칼에 찔려도 죽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마치 영생의 몸을 가진 것처럼 그려진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결과적으로 행복하다. 물론 순탄하지만은 않다. 중간에 주인공에게 위협이 될 만한 갈등 요소들이 충분히 등장하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해내며 발전하는 모습도 또 하나의 볼거리로 작용한다. 어느새 영화는 주인공의 무한한 가능성과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시각화 함으로써 관객들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매우 현실적인 영화들도 있다. 관객들의 현실을 향한 불만을 해소해주고자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거울처럼 보여줘서 부끄러울 정도의 그런 영화 말이다. <최악의 하루>가 그러하다. 아니, 사실 관람 중에는 그 현실감이 마구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허구적인 영화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우리를 비추고 있다고 하기에 은희의 하루는 너무나도 최악이었으니까.


은희.jpg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말이 이해가 될 정도로 은희의 하루는 매우 길었고 많은 일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하루 모두를 담고있다. 신기하게도 본 영화는 부정적인 기분과 웃음을 동시에 유발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역설적인 태도를 보이도록 한다. 등장인물들의 위선적인 행동, 우연이라고는 너무 절묘한 상황들이 나열되는데, 이것은 기분을 불쾌, 불안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재밌다”

 그들의 뻔뻔한 거짓말이나 핑계를 듣고 있다 보면 실소가 터져 나오고는 한다. 캐릭터들 자체도 특별했고 맞물리는 상황들이 어이가 없다는 이유도 있다. 신기한 매력을 지니었다.


"긴 긴 하루였어요.
하나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겠어요.
저는 당신이 원하시는 걸 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진짜가 아닐 꺼에요.
진짜가 무엇일까요.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발레장면.jpg


나의 진짜. 솔직하다.


  사실 영화를 보고 있다 보면 그 최악에 하루에서 주인공인 은희의 잘못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거짓말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남산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상한 인물로 보이기까지 하겠다. 남자를 밝혀서 양다리까지 걸친 거짓말쟁이. 그리고는 비판하기까지 할 것이다.


 
 과연 우리가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진실한데?



  은희의 하루는 사실 우리의 몇 일을 응축시켜 놓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선택의 기로, 거짓말이 들통나는 순간이 아주 재수없게도 하루에 모두 이루어졌을 뿐. 사실 영화 <최악의 하루>는 명백하게 우리의 몇 일을 비춰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은희와 료헤이.jpg

 
 오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새로이 알게 된 일본 남자, 신뢰를 잃고 위태롭지만 아직은 사랑하는 현재의 남자, 과거에 만났고 다시 은희를 찾은 과거의 남자. 은희를 가운데 두고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들의 관계는 어느 하루에 모두 밝혀지기에는 너무 방대했다. 각본 작가가 은희를 불행의 한가운데에 던져 놓은 것만 같았다. 일본 작가 료헤이가 어쩌면 영화 속의 은희를 만나러 온 시나리오 작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하게 된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료헤이는 주인공을 극한의 상황에 넣어 놓고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형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들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은희를 보며 영화 끝에서 말한다.


"하지만 걱정하지마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니까요.
여자주인공은 꼭 행복해질 거예요"





마지막장면.jpg
 

 많은 생각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서촌 한옥 마을과 남산이 봄의 내음새와 어울리어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매우 아름답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은희의 하루와는 상반되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은 관객으로서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햇빛이 비추는 가운데 최악의 하루가 진행되는 영화. 우리는 은희의 하루를 펼쳐서 살아가고 있다.


[맹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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