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뮤지컬 라스트 챈스

글 입력 2017.05.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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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와서 '가족'은 더이상 혈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가족은 꾸준히 그 규모가 분리되어왔고, 이제는 1인 가구, 즉 개인이 하나의 가족 단위가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가족은 더이상 끈끈한 피의 정으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개인들은 다양한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설립하고, 일반적으로 혈연 가족들이 공유하는 정을 나눈다. 다양한 가족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뮤지컬 라스트 챈스는 이런 현대의 가족 개념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 가연은 자살 시도를 하려다가 수상한 노인인 대섭에게 붙들려 끌려오고, 그곳에서 순자와 재욱을 만난다. 뮤지컬은 결국 이 네 사람이 어떻게 가족이 되느냐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연대는 보통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사이에서 자주 발생하고, 이 뮤지컬에서도 인물들 간의 비슷한 상처가 존재한다. 인물들은 모두 한 번쯤 죽기를 원했다. 사랑이 무너지고, 세상에게 버려졌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그들을 덮쳤고,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자살을 택하려고 했다. 네 인물은 저마다 개성 있어 보이고 재미있어 보이지만, 이 캐릭터들의 사연은 모두 너무 평면적이며 평범하다. 가연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사채 빚에 쫓기는 불쌍하고 무고한 이십대 여성 캐릭터는 여태껏 많이 있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 거대한 캐릭터의 틀 이상의 디테일이다. 왜 그녀가 혼자 그 빚을 다 짊어지게 되었는지,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아르바이트를 해 왔는지, 왜 빚을 계속 지고 있다가 지금에 와서야 죽어 버리려고 했는지에 대한 것들. 다시 말해 이 문제는 캐릭터의 구체성에 관련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캐릭터들의 이미지만을 차용해 왔기 때문에 캐릭터들은 붕 떠 있고, 무대 위에서 움직인다기 보다는 극본에 맞추어 지정된 행동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결합에 대해 그리는 이야기'에서 캐릭터성이 흐려져 있다는 것은 아마 이 작품의 모순을 만드는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순은 캐릭터의 현실성 이후로도 존재하는데, 서사의 갈등부에도 모순이 있다. 이 서사에서 그들의 연대를 깨트릴 뻔한 갈등은 재욱의 질투 때문이다. 가연에게도 가게를 함께 물려준다는 대섭의 말에 재욱은 화를 내고, 가연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전개는 이전까지 네 사람이 쌓아 놓은 것처럼 보였던 '가족'의 연대를 질투라는 유치한 전개로 허물어 버린다. 애초에 불안하게 쌓여 있던 연대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게 간단한 이유로 무너질 수 있는 연대였다면, 그것은 가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종류의 것이 된다. 그냥 며칠 알고 지낸 어색한 사람들에 가깝지.

다양한 문제점들 가운데 가장 걸리는 지점은, 가족이라는 단어의 해석에 있었다. 우리가 겪어 왔던 가족이라는 단체는 결코 인정과 사랑만 넘치는 집단은 아니다. 하지만 이 뮤지컬에서 가족이라는 단어는 단지 이해와 사랑만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그려지고, 그래서 그들의 연대는 너무 얄팍하며 거짓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더욱 친절해질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의성 있는 소재를 캐치해 뮤지컬로 올리려는 시도가 좋았지만 그를 채우는 디테일들에 대한 고민이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가족이라는 말이 현대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오래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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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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