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빠순이가 당당한 사회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5.2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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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빠순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익숙하다. 응답하라 1997에 나오는 성시원은 HOT 빠순이었고 응답하라 1994의 성나정은 농구빠순이었다. 그리고 아이돌 문화가 주류 문화로 자리잡은 지금 빠순이라는 단어는 더욱더 친숙하게만 들린다.

어딘가에 쉽게 빠지는 성격 탓에, 중학생 때부터 나 또한 ‘빠순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중학생 때부터 2PM 등의 아이돌을 따라다니고, 축구를 접한 후 경기들을 다 보러 다니고, 사촌오빠 따라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보고, 팬텀싱어를 보고 계속 복습해서 돌려본다고 빠순이, 오덕, 여덕 등의 ‘덕후’ 관련 소리를 중학생 때부터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다 나름 돈이 많이 나가는 취미였다. 2PM 팬을 할 때에는 중학생이어서 이렇다 할 돈은 없어 친구 따라 콘서트 간 게 전부였지만, 세뱃돈을 몇 년을 저축하고 나서는 여기 저기 돈을 꽤 썼다. 축구의 경우는 경기 예매는 물론이고, 내가 좋아하는 팀의 져지와, 팀 로고가 새겨진 지갑, 달력 등을 사느라 돈을 꽤 썼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난 후로는 퀄리티 있는 피규어를 모으느라 돈을 꽤 써보고, 팬텀싱어를 좋아한 후로는 온갖 음반은 물론이고 팬텀싱어 출연 싱어들이 나온 콘서트들을 예매하느라 돈을 몇 십 만원은 썼다. 한창 뮤지컬에 빠져 살 때에는 동일한 라인업으로 진행되는 공연을 여러 회차를 나누어 보고, 씨디와 디비디를 사려 혈안이 되어 겨우 구한 적도 있었다. 뿐만 아니다. 뮤지컬 공연이나 팬텀싱어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들의 퇴근길을 기다리며 공연장 주변을 서성이다가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한 적도 있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는 나의 일종의 덕후스러움을 내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했고, 나를 구성하는 그 일부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돈을 지불하여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면 슬픈건 사실이었지만, 그만큼 행복했기 때문이다. 화면에서만 보던 그런 배우들과 가수들을 직접 보고 음원으로만 듣다가 실제로 공연장에서 들을 때의 행복이란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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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이러한 소비 행태는 ‘빠순이’, ‘얼빠’로 일축되고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도 축구 경기 그 자체보다는 ‘잘생긴 축구 선수’를 좋아하는 얼빠면서 축구 좋아하는 척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더 심한 건 아이돌과 팬텀싱어, 뮤지컬 등을 좋아한다고 빠순이 소리를 듣고, 사치스러운 취미를 즐긴다는 소리도 들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즐겼을 뿐인데 ‘남자만 따라 다니는데 돈을 펑펑 쓰는 여성’으로 여겨진다. 아이돌 같은 특정 분야는 더 한 것 같다. 그 눈길이 문화산업 전체에 대한 비하로 이어진다.

이는 일종의 여성 혐오이다. 구조화된 여성혐오다. 예전에는 이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여성혐오 문제가 끊임없이 공론화 되는 것을 보고 하나 둘씩 배워가며 느낀 바로는, 여기에는 여성혐오의 분위기가 깔려있는 듯 하다. 여성들의 주체적인 소비 행위를 남성에 대한 동경으로 여겨진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해외의 유명 가수들을 좋아해서 그에 돈을 쓰거나 게임을 좋아해서, 카메라를 좋아해서 돈을 쓰는 것에는 ‘취향’, ‘취미’라고 하는 반면, 그 취미의 대상이 ‘아이돌’ ‘남자’ 그리고 그를 향유하는 대상이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일수록 그런 혐오적 분위기가 강화되는 듯 하다. 소비에 있어서, 특히 자신의 기호에 따라 주체적으로 소비를 해나가는데 있어서 성별과 대상은 중요하지 않은데 말이다. (물론, 그 팬질에 있어서 기본적인, 그리고 상식적인 윤리가 깔려있음을 전제로 한다)

우리들의 소비와 취미는 왜 항상 폄하되고 무시될까. 그리고 왜 그런 시선에 위축되어 ‘일코’를 해야 하고 그것이 팬질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된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소비와 취미에 있어서 당당해져야 하고, 또 그럴만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김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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