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감.대] 공간05. '불확정성 원리'에 대한 이모저모

글 입력 2017.05.2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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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원리'에 대한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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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젠베르크 (1901년 12월 5일~1976년 2월 1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물리학에서 가장 의미 있는 개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원리’라기 보다는 대전제에 가깝다. ‘사물의 실체를 정확하게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발견은 아니, 의식의 대전환은 물체의 운동량이나 에너지, 힘과 같은 것들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고전역학의 시대를 저물게 만들었다. 물론 고전물리학이 가시적인 자연 그대로의 현상, 거시세계에서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지만 미시세계, 즉 사물의 본질적 실체와 속성 원리에 관해서는 단지 가정을 내리고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때의 과학은 정확한 관측에 기반한 기술(記述)이 아니라 오직, 확률적 접근이다.

  대표적인 예로, ‘전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전자’가 음전하를 가지고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정규교육 과정을 통해 배웠다. 그런데 전자의 실체를 확인한 적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전자의 실제 운동을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과학기술 단계에서는 전자 그 자체의 운동이 아니라 전자에 빛을 쏘아 충돌하여 되돌아오는 빛 입자들을 보며 전자의 운동 상태를 파악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저 어떤 공간의 어딘가에 전자가 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완벽한 공식으로 모든 자연의 질서를 밝혀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물리학 역시 우리 세계의 현상을 정확한 표현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단순히 현대 물리학의 대전제를 깔았다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근대 철학의 근본적인 인식과 상통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는 우리가 관측한 대로의 세계일뿐이다’, ‘현상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과에 대한 모든 해석은 그저 추측에 따른 논리적인 의견일 뿐이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과학 계뿐만 아니라 인문과학, 예술, 사회과학 등의 분야에서도 널리 통용되는 부분이다. 동일화의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 부정성의 ‘타자론’도 넓게 보면 이에 해당한다. ‘불확정성 원리’는 학문적 장을 넘어, 일상 속에서 관계하는 집단과 집단,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물 등의 모든 존재들이 빚어내는 물리/화학작용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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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불확정성의 원리> (사진 출처: 네오룩)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하이젠베르크의 원리를 컨셉으로 한 전시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매우 흥미로웠다. 이 철학 개념을 어떻게 예술작품에 녹여낼 수 있을까?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이번 달 24일부터 10월 9일까지 진행되며, 4명의 아티스트가 각자의 세계인식을 독특한 디스플레이나 사진, 영상, VR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하는 전시다.


"자료채집과 연구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들 중에서도 특히 탈식민주의와 동남아시아의 형세, 정치와 종교가 복잡하게 얽힌 레바논 전쟁 이후의 중동, 자본주의 체제의 출발지점에서 기록된 이미지의 분석, 가상현실 장치가 제공하는 새로운 시공간 구성을 통해 드러나는 집단 또는 개인의 기억 등을 매개로 작품을 구현하는 네 명의 현대미술 작가들에 주목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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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확정성 원리’라는 컨셉으로 한 데 묶인 작품들이지만 사실 이들 사이에서 과학철학 개념과의 긴밀한 연관성을 찾기를 기대한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말 그대로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하고 모호한 현대문명에 대한 이미지를 미술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현하는 것이 큰 목적이기 때문에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중구난방 식에 가깝다.
  왈리드 라드는 캔버스의 뒷면에 드로잉을 함으로써 전시의 형태를 뒤집어 무엇이 예술의 위상을 결정하는지,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권하윤은 개인의 기억을 가상현실 설치 작품으로 재구성하여 관객이 움직이면 과거를 설명하는 내레이션과 이미지가 펼쳐지면서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시공간의 체험을 제공한다. 재커리 폼왈트는 파노라마 기법의 창시자가 촬영한 샌프란시스코 사진을 통해 ‘법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시기가 이 사진이 촬영된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성립되는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영상으로 설명한다. 호 추 니엔은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이라는 컨셉으로 이 문명권의 역사와 철학, 종교 등을 알파벳 항목으로 분류하여 미디어 아트로 보여주면서 ‘동남아시아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과 비판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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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왈리드 라드 [아홉번째 판에 부치는 서문: 마완 카삽-바치]
(오) 권하윤 [새(鳥) 여인] (사진 출처: 네오룩) 


  하이젠베르크의 물리학적 개념에 너무 의존하지 않고 ‘예술이 물리적 대상이나 사회적 현상, 심리적 상태 따위를 어떻게 재현할 수 있고, 얼마나 상세히 설명 가능한가?’, ‘이 예술가는 우리 세계를 어떤 관측 도구를 통해 바라보는가?’를 떠올리며 감상한다면 충분히 즐겁고 풍부하게 감상/체험할 수 있는 전시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 자체를 주요 주제로 하여 기획된 전시로 알고 미술관을 방문했기 때문에 약간은 맥이 빠지긴 했다. 그런 불만에는 이 전시가 굳이 ‘불확정성 원리라는 개념으로 명명하며 그 이미지를 빌린 이유가 뭔가?’라는 의구심이 포함되어 있다. 현대예술의 흐름과 시대적 지향 자체가 사실 거의 대부분 불확실성에 대한 탐구로 귀결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같은 ‘역사적 사건’ 혹은 같은 ‘개인의 기억’처럼 동일한 대상을 두고 4명이 서로 다른 증언으로 재현하는 것이 더 주제에 맞고 개념에 대한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모든 권위적 신념과 정의를 해체시키고 결정론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작품들은 ‘불확정성’이라는 넓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확정적인 것, 예측 가능한 것, 정확성이 보장되는 것에 대한 강박으로 삶을 굴리도록 끊임없이 부추기는 이 사회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의미 있는 개념으로서, ‘불확정성’이 그 가치를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증명됐으면 좋겠다. 존재의 존재론은 저마다 다 달라야 한다. 서로 통용될 이유도, 통용될 도리도 없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관측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위대한, 거대한, 막강한 관측자의 눈에 띌 필요 없이 자기 자신의 장소에서 스스로 존재하면 될 뿐이다. 전자처럼 말이다. 그것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타인 역시 ‘나’로 존재하고 싶은 존재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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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호 추 니엔 [동남아시아 비평사전 제 2권: 고스트의 G]/ 
(오) 재커리 폼왈트 [파노라마와 법인의 탄생] (사진 출처: 네오룩) 


  정리하자면, ‘A’를 ‘B’가 정의 내리는 것은 A에 대한 A’가 아니라 B의 C라는 생각일 뿐이다. C라는 정류장은 B의 의지에 따라 오랫동안 머물 수는 있어도 지름길이거나 A로 가는 쪽으로 통한다고 보장하지는 않는다.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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