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 아닌 신념의 노래, 오페라 '자명고'

글 입력 2017.05.2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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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닌 신념의 노래,
오페라 <자명고>
 
 
자명고 2.JPG
(국립 오페라단 제공)
 
 

 '기대와 다른 전개, 감동 없는 결말.
그렇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은.'


누군가 오페라 <자명고>에 대한 감상평을 묻는다면 딱 이 한 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고무가 보여진 처음 시작은 완벽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북춤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이어질 극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놨다. 하지만 그 이후의 극 전개 속에서 집중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자명고> 자체는 스토리 라인이 매우 단순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이야기가 이어지기 위한  충분한 개연성이 부족했다. 낙랑공주를 포함해 호동왕자, 진대철, 최리왕의 행동을 보며 '왜?'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던건 나뿐이었을까. 화려한 고음이 덧입혀진 대사는 놀라웠지만 노래로 표현된 주요인물들의 독백은 공허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둘의 러브스토리이다. 우리는 한민족이며, 함께 오랑캐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호동왕자의 주장에 빠져든 낙랑공주. 물론 평소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에 빠져들 확률이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페라 <자명고> 속 두 사람의 대사는 두 사람의 사랑이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보다, '결과'에 대한 이야기만 담겼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들의 사랑에는 개연성이 없었다. 차라리 다른 메세지를 주장하고 싶었다면 사랑보다는 '우정'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존 설화의 사랑 이야기에 억지로 끼워 맞추느니 차라리 그 편이 낫지 않았을까?


자명고 4.jpg
(국립 오페라단 제공)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을 봐야하는 이유를 꼽자면 단 한가지가 있다. 오페라 <자명고> 본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이 주고자 했던 메세지를 분명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모든 에피소드 및 이야기가 흐릿한 가운데 단 하나의 메세지는 매우 분명했기 때문이다. 바로 '한민족'이다. 낙랑공주는 외세가 아닌 한민족끼리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호동왕자에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봐야 한다.) 그런 주장을 굽히지 않고 끝내는 사랑을 버리며 (이 또한 그렇다고 봐야 한다.) 자명고까지 찢어버린 그녀는 분명 깨어있는 여성이었다. (그러한 여성상을 그리고자 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단어에 약하다. 한민족끼리 싸우며 외세의 힘을 빌려 살아남고자 했던 '낙랑국'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오페라 <자명고>의 취지는 좋았지만,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진정한 사랑이야기, 그리고 민족통합 두 가지를 모두 이야기 하기에는 좀 부족했던 것 같다.

낙랑공주가 불렀던 아리아는 사랑이 아닌, '신념'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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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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