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살게 하는 쓸모 없음에 대하여: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문학]

글 입력 2017.05.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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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기만 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마는,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예기치 않은 일, 스스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일들은 시시때때로 우리 앞에 나타나 우리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약한 존재임을 실감케 한다. 이처럼 개인적 삶과 사회적 조건 속에서 우리에게 익숙했던 규칙이 모두 적용되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해하고 그 시기가 하루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그 불확실한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은 매우 달라진다.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은 그러한 과도기에 대한 깊은 탐색과 빛나는 통찰을 보여주는 책으로, 그 시기를 조급하게 벗어나려 하거나 피하려 들지 말고 의식적으로 깊이 경험해보기를 권한다. 다양한 임상사례, 자신의 체험, 인터뷰, 문학과 예술작품, 역사적 사건 속에서 과도기의 의미를 길어올림으로써 과도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어준다. 더불어 그 시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변화를 통해 삶의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갈 능력, 세상의 혼란에 휩쓸리지 않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용기를 선사한다.

-Daum 책 소개글 중에서




1.

 요즘 엄마는 내가 쓸데 없는 일에 매진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을 하신다. 대학생이 되어서 걱정을 처음 하시는 건 아니고, 그 전까지는 잔소리를 하시거나 혼을 내는 식으로 그 걱정을 표현하시곤 했다. 내가 대학 생활의 반을 마무리하고 3학년이 되자, 엄마는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려는지 은연 중에 궁금해하곤 하셨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항상 학과 공부, 영어 공부처럼 나에게 지금 당장 주어진 공부에 매진하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사실 엄마는 인생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그렇게 사는 인생이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당장 공부하는 것에서도, 엄마는 나보다 훨씬 공부를 좋아했고, 잘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과는 조금 어긋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학회를 하면서 학교에 새벽까지 남아있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가기 위해서 몇 달 동안 과외를 한 돈을 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비록 대놓고 말로 하시지는 않지만, 딸의 이런 느긋한 모습이 철없다고 여기시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효용이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만약 효용이 별로 없다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벚꽃은 맛난 버찌가 되기 위해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계절에 피어나는 것이 합당하기에 피어난다.
– 본문 p. 30 중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
무조건 능력을 발휘해야 하고,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곧바로 되게 만들어야 하는 분위기
– 본문 p. 203 중


 나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답도 없는 고민을 붙잡고 고찰하는 것도 이미 예전에 그만두었다. 슬픈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나는 무언가가 되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가 쓸모 있어야만 나를 알아 주는 것이 너무나 싫다.

 하지만 그러면서 자꾸 뭔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언제나 주저한다. 내가 중학교 때 그림을 그릴 때도, 고등학교 때 창작 수업을 받을 때에도, 지금 대학에 와서 문학을 공부할 때에도 나는 그것 자체에 홀려서 그것만을 파고들려 하지 못한다. 언제나 내 주변에는 나보다 더 ‘적합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들만큼 뛰어나지 못하니까, 나는 저렇게 완벽해 질 수 없으니까, 하고 지레 포기하고 만다.

 당장 내가 대학원을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도 내 옆에 나보다 더 인정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과연 그 엄청난 시간과 돈을 나의 자기만족(공부는 아주 일차적으로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에 쓰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결심하지 못한다.


그런 질문들에 객관적으로 답변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개인적인 답변과 태도가 중요한 것이리라.
– 본문 p. 146 중


 그런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들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루 종일 듣고 가사를 되뇌거나, 주변 사람들 중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게임 리그를 보면서 응원을 하거나, 즉흥적으로 영화를 보러 가는 일. 나는 그런 경험들 속에서 책상에 앉아서 문학에 대해서 공부할 때만큼 많은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장 창조적이고, 가장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이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과도기인 것 같다. 나는 내 삶에서 이런 ‘한 숨 돌리는’ 시간을 뺀다면, 과연 내가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생에 정답이라는 게 없다면, 살아가면서 틀린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내가 남들이 보기에 쓸데 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을지언정 그게 과연 무슨 상관일까?

 문학에도 ‘정답’ 이라는 해석은 없지만, 완전히 ‘틀린’ 해석은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해서 성찰하는 모습 하나 뿐이다. 성찰하고 고민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너는 틀렸다, 실패했다고, 어느 누구도 감히 말할 자격이 없다.


더 이상 예전의 법칙이 통하지 않고,
새로운 법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 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다시금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경험에 가까워진다.
이런 존재의 순간, 삶은 새로워진다.
– 본문 p. 36 중



2.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심판과, 대통령 보궐선거가 끝난지 3주 정도가 되어간다. 20대 초반의 나이인 나에게 있어서는 역사의 한 획을 처음으로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한숨을 쉬시면서 텔레비전을 끄시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뉴스를 보면서 하셨던 말로 미루어 보건대, 할머니는 이 모든 일이 우리 나라를 점점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이라고 생각하시는 듯 했다. “우리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부터 시작해서 “너희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로 끝나는 할머니의 말은 사실 젊은 애들이 뭘 아느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할머니가 살아왔던 시절을 모르듯이 할머니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절을 모르신다. 경제를 살릴 수 있으면 다른 잘못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태도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시급 6000원을 받으면서 일하는 우리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얼버무려지지 말아야한다.


위대한 생각은
종종 사회적으로 불안한 시대에
특히 강력하게 부각되고
그 물결을 더는 막을 수가 없다.
– 본문 p. 237 중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되찾을 기회를 얻는다.
– 본문 p. 308 중


 내가 솔직하게 기뻤던 이유는, 이런 불안한 시대에는 무엇이 어떤 것으로든 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바로 이 시대에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합리화하지 않고, 이래야 한다고 정해두는, 모두들 그러고 있으면, 다 그런 거 라는 말로는 해소할 수 없는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젊은 애들이 뭘 알겠냐, 는 말에서 요즘 현실을 모르고 쓸데 없는 이야기만 주구장창 해 대는 ‘젊은 애’ 부분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쁘다, 이런 엉망진창인 곳에, 엉망진창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

 내가 느끼는 답답함은 불완전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마치 완전한 것처럼 표현하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는 걸 느꼈다. 나는 결국 무너지고만 이 미완의 사회가 마음에 든다. 마침내 내가, 우리가 무언가를 그릴 수 있는 자리가 생겼기에.


[최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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