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황제 펭귄이 겨울을 나는 법 [문화전반]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
글 입력 2017.05.26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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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펭귄이 겨울을 나는 법
_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


우리는.jpg
 


지구의 어느 모퉁이엔 태양이 비춰도 도저히 녹지 않는 마을이 있대 서로 껴안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극단적인 마을이 있대

도마 - 항제 펭귄이 겨울을 나는 법



지하철을 타고 바깥으로 나가려다보면 한 줄로 쭉 늘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좁은 에스컬레이터는 꼭 한 줄로, 한 칸에는 한 사람만 설 수 있고, 뒷 사람은 앞 사람을 비껴 나갈 수 없고다. 그들은 에스컬레이터 한 칸씩을 차지하고 가만히 서서 아래칸부터 위로 차근차근 올려진다. 그러니까 꼭 배송되는 것만 같이 나란히 차근히 가만히 그리고 천천히 옮겨진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들 뒤에 가만히 줄을 서고 한 칸을 차지해 그들 사이에서 어딘가로 올려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 칸에 한 명, 평화로운 나열. 

지구의 어느 모퉁이엔 태양이 비춰도 도저히 녹지 않는 마을이 있다는데, 그런 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야만 살 수 있다. 그런 극단적인 곳이 있단다. 가끔 그런 극단적인 곳에 가보기라도 한 듯 그곳을 알아버릴 때가 있다. 그 곳에서 꽁꽁 얼어버린 적이 있는 거처럼 문득 한기가 발끝을 얼어붙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껴안을 사람을 찾아 두리번 거리게 되는데, 그럴 때. 



하얀 바람이 불어와 우리를 떼어놓으려 해도 토실토실한 엉덩이로 이겨낼 수 있어 

도마 - 같은 곡



그럴 때 간절히 바란다. 나를 껴안아 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가끔이라도 한 때처럼 보이더라도 우리는 나란히 에스컬레이터의 한 칸씩을 밝고 가만히 천천히 움직이곤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속한 한 줄 속에서 서두르지도, 앞의 사람을 밀치지도 않기 때문에. 성급히 앞 사람이 디디고 있는 작은 칸으로 침범하지도, 선울 넘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그런 믿음이 헛되거나 허망하지 않다는 걸 언제부터인가 알고 있다. 

그에게 문득 맥락없이 노래 가사를 주욱 적어 엉뚱한 문자를 보내면, 그는 뭐냐고 묻지 않고 그저 그런 곳에 가서 서로을 안아주자고 한다. 나는 엉뚱한 문자를 불쑥 보내버리며 그를 향해 안아달라고 하면 그는 내색없이 안아주고, 나는 그렇게 나를 안아 줄 사람들을 알고 만다. 어쩌면 그 사람은 내가 얼어죽지 않도록 언제까지고 나를 둘러 안아줄지 모르고 그는 내색하지 않고, 이유를 묻지 않으며 내 투정까지 귀여워할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를 그렇게 안아주듯 나 또한 이유없이 그가 궁금하고 그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서리가 내려앉은 입술로 하얗고 아름다운 알을 품고

도마 - 같은 곡



우리는 서리가 내려 앉은 입술로 파랗게 질려서도 오들오들 이를 부딪히는 추위에서도 하얗고 아름다운 알을 품을 거고 하얗고 아름다워질 거다. 하얗고 아름다운 알을 깨고 우리의 다음 세대는 어쩌면 땅 속 깊이 얼어붙은 그 곳을 녹여버릴 거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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