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편집 : 단절 [문학]

글 입력 2017.05.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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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단편집.jpg
 
*단편집은 매달 24일에만 기고됩니다.*




1.투수(投手)


 택시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거세다. 떨어지는 비는 창의 경사면을 따라 밑으로 떨어진다. 가만히 경사면의 빗방울을 보다가 차를 돌렸다. 오후 8시. 이 시간이라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모여 있는 중구 쪽이 더욱 손님이 많을 터였다. 신호에 맞춰 우회전을 한 뒤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침을 뱉었다. 고여 있던 침이 웅덩이로 떨어졌다. 문득 모든 욕정의 결과는 배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손을 흔드는 남자들 앞으로 택시를 멈췄다.

 -청량리!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통해 남자들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외국인들의 한국어 발음은 모국어의 영향에 따라 제각기 조금씩 다르다. 가령 비슷하게 생긴 일본인과 중국인이더라도 그들의 한국어 발음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남자들에게 “청량리?” 하고 물은 뒤, 차를 움직였다. 습한 택시 안의 공기가 끈적거리며 얼굴로 쏟아졌다. 뒷목에서 더운 땀이 비죽 흘렀다.

-멀어요?
-금방 갑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재촉하듯 물었다. 이 정도의 거리라면 20분이면 청량리에 도착할 수 있다. 그들은 정확하게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다.

 청량리, 정확히 말하자면 역에서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한 홍등가(紅燈街)거리. 붉은 정육점 불빛 같은 것들이 일렁이며 빗속에서 번진다. 홍등가를 따라 차를 움직이면 이미 앞에서부터 밀리고 있는 택시들이 보인다. 뒷자리에 앉은 중국인 관광객 두 명이 창에 붙어 여자들을 보고 있다. 여자들은 비가 내리기 때문인지 바깥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쇼윈도 같은 창 안에 앉아 멀거니 줄을 이룬 택시들을 보고 있다. 문득 그녀들이 동물원의 원숭이와 다를 게 뭘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속옷만 걸친 그녀들은 담배를 피거나 화장을 고치거나 때때로 의미 없는 웃음을 지으며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향해 손짓한다. 앞 택시에서 남자 세 명이 내렸다. 그들은 빗속을 뛰어 가게 안으로 사라진다. 뒷자리에 앉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그 모습에 용기가 생긴 것인지 자기들도 이곳에서 내리겠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만 칠천 원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지갑에서 이만 원을 꺼낸 뒤 잔돈은 받지도 않은 채 또 다른 가게로 들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굳은 어깨를 움직여 근육을 풀었다. 할당금액은 채웠지만 어쩐지 습기 같은 찝찝함이 묻어있다. 줄을 이룬 택시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 그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들어간 남자들을 기다렸다가 다시 호텔로 데려다 주는 것. 들어간 두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 잠깐 눈을 감으며 잠을 채웠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빗방울이 거세게 창을 두드리고 있다.
 
-잠깐이면 돼요, 쉬었다가 가면 되는데.

거리에서 내 옷자락을 잡은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이끌었다. 당황스러웠다. 익숙한 말이기도 했고, 듣기에는 부끄러운 말이기도 했다. 여자는 나를 이끌고 가려 했고, 나는 그녀를 따라가지 않으려 했다. 이상한 모습이었다. 나와 여자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의문스러운 눈으로 이런 상황을 지켜보았다.

-잠깐이면 돼요, 잠깐.

여자는 계속해서 나를 이끌었다. 붉게 홍조를 올린 얼굴은 앳되어 보였다. 그녀의 고집을 거절하지 못한 채 그녀를 따라 걸었다. 서툴게 박힌 계단을 오르고 여자는 조잡한 스티커가 붙은 문을 열었다. 에어컨 바람이 서늘하게 목 뒤를 스쳤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자는 내게 손짓하며 안쪽을 가리켰다. 여자의 손짓을 따라 안쪽의 간이침대로 가 누웠다. 제법 푹신한 침대에 누워 여자가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보다 천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밋밋한 하얀색 천장은 약간의 때가 묻어있다. 반대편에서 또 다른 남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나온다.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별안간 고개를 돌리고 바깥으로 나간다. 여자는 나가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이윽고 여자가 웃으며 내 옆으로 왔다. 여자의 손에 들린 바구니에는 몇 가지의 종이가 들려있다. 여자는 확인해달라고 말한 뒤 뒤를 돌아 들어오는 여자를 향해 인사를 건넨다. 종이에 몇 가지 체크를 끝내자 여자는 내 팔에 주사를 꽂는다. 붉은 피가 주사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든 뱉어지는 것은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솜으로 팔을 문지르며 바깥으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다 다시금 뒤를 돌아 조잡한 스티커가 붙은 문을 바라본다. 「헌혈의 집」붉게 쓰인 글씨위로 문득 홍등가의 여자들이 떠오른다.
 
자정을 넘기는 시간이면 청량리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택시가 줄을 이룬다. 홍등가의 불빛만큼이나 택시 헤드라이트의 빛들도 그곳에 어우러진다. 오늘 탄 남자는 일본인 관광객인지, 습관적으로 일본어를 쓰며 말을 했다.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말한 단어는 하나뿐이다. 청량리. 다행스럽게도 비는 오지 않는다. 습기 없는 서늘한 택시 안은 쾌청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홍등가 입구로 차가 들어서자 남자는 창에 붙어 여자들을 바라본다. 여자들은 쇼윈도 밖으로 나와 지나는 택시로 다가와선 익숙하게 택시 창을 두드리며 웃는다. 일본인 남자는 금방이라도 나갈 것처럼 굴다 다시금 고개를 돌려 턱짓한다. 조금 더 앞으로 가달라는 뜻이다. 택시를 천천히 움직이다 백미러로 남자를 보자, 남자는 무언가 결정을 내린 얼굴로 어깨를 두드린다. 택시를 멈추자 남자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더불어 오만 원을 함께 건넨다.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에게 돈을 받았다. 남자가 차에서 내리고, 헤드라이트를 끈 채 홍등가 한 쪽 구석으로 차를 주차 시켰다. 붉은색 전등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재밌는 거 할래요?

여자 한 명이 비틀거리며 창을 두드린다. 고개를 저으며 어색하게 웃어보이자 여자는 이미 드러낸 가슴을 내보이며 계속해서 창을 두드렸다.

-잠깐이면 돼요, 오빠. 그냥 쉬었다 가면 되는데.

함축적인 그녀의 말에서 어딘가 익숙한 기분이 든다. 거듭된 내 거절에 여자는 포기한 것인지 이내 다른 택시를 향해 걸어간다. 여자들은 비슷하다. 은근한 말로 내게 정액을 뱉으라고 요구하거나 피를 뱉으라고 요구한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녀들의 지시를 따른 적은 없지만, 결코 그녀들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몇 명의 여자들이 창을 두드렸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어색하게 웃는 것뿐이었다. 새벽쯤 이제 곧 들어간 일본인 관광객이 나오겠구나 싶을 때, 속옷을 입은 여자가 택시에 탔다.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앉아 고개를 젖히고 있다가 불현 듯 입을 연다.

-아무데나, 아주 멀리로 가요.
 



2. 포수(捕手)


생리가 시작되려는 건지 아랫배가 싸하게 아프다. 가리지 못한 아랫배를 손으로 문지르며 잠시간이나마 고통이 가시기를 바라지만, 애석하게도 내 어깨를 두드리는 남자의 손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의 얼굴을 보며 애써 웃어 보이고 방으로 향한다. 좁은 복도를 지나 고시원처럼 다닥다닥 붙은 방 중 열린 문으로 들어서며 브래지어를 벗는다. 문을 닫고 따라 들어온 남자는 멀뚱히 서서 방을 구경하는 얼굴로 둘러본다. 볼 거라곤 이미 몇 해가 지났는지 모르는 달력과 싸구려 콘돔이 든 바구니뿐. 남자에게 다가서며 다시 한 번 아랫배를 문질렀다. 아침이면 생리가 시작 될 것이다.

남자에게 가격을 말해주고 싸구려 침대로 가 누웠다. 남자는 바지를 벗으며 다가온다. 가끔씩 남자들은 다른 걸 원하지만, 다행인건지 이 남자는 가만히 내 위로 올라올 뿐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얇은 벽면을 넘어 옆방에서 높은 신음소리와 남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내 위에 올라탄 남자는 침을 삼키고는 천천히 아래로 손을 뻗는다. 더듬거리는 손이 촉수처럼 온 몸을 배회한다. 시계초침을 바라보다 얼른 끝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남자는 바지를 입고 마지막으로 신을 신으며 짧게 한숨을 토해낸다. 싸구려 콘돔에 찬 정액이 보기 싫게 바닥에 널브러져있다. 남자는 나가기 전 뒤를 돌아본 후 지갑에서 빳빳한 돈을 빼 내게 건넨다. 돈을 받아들고 남자가 나가고 나서야 콘돔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속옷을 주워 입었다. 옆방에선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만히 속옷을 입다 불쑥 피로감이 온 몸을 채웠다.

-언니 다했으면 나와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자, 방금 전 옆방에서 신음을 질렀을 여자애가 나를 밀치고 방으로 들어선다. 바깥으로 나오며 문을 닫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들었던 신음소리가 들린다. 좁은 복도를 지나 쇼윈도 같은 창으로 가 앉았다. 비틀거리는 여자들이 차를 향해 다가간다. 얼굴도 모를 남자들을 향해 손짓하며 웃음을 흘리는 모습에 괜스레 수치심이 든다. 여자들을 피해 고개를 돌리다 벽면에 주차한 택시가 보인다. 몇 명의 여자들이 다가가 창을 두드리지만 거절하는 건지, 여자들은 번번이 발길을 돌린다. 어쩌면, 저 택시를 타고 이곳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가 이곳에 발을 들였지만, 이제는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가게를 나와 택시로 향했다. 어쩌면 쇼윈도에 앉은 여자들의 눈에는 나 역시 차를 향해 손을 뻗고 웃음을 흘리는 여자들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상관없다. 그저 손님의 입장에서 택시를 타고 떠나고 싶을 뿐이다. 택시 뒷좌석에 타 고개를 젖혔다. 운전사는 곤혹스러운 듯 나를 보다 다시 핸들로 고개를 돌린다. 멀뚱히 택시 천장을 바라보다 아슴아슴 잠에 빠질 때 운전사에게 말했다.

-아무데나, 아주 멀리로 가요.


 

3.단절


여자의 말에 천천히 핸들을 돌렸다.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잠을 자듯 고른 숨소리로 자신이 뒤에 있음을 알릴뿐이다. 차는 청량리를 벗어나 목적지를 잃은 채 거리를 배회한다. 길고 긴 여자의 밤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청량리를 한참이나 벗어나고 나서야 내게 오만 원을 건네던 일본인 관광객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는 그의 모국어로 욕설을 뱉을지도 모른다. 기다리라고 건넨 오만 원은 주머니에 묵직하게 들어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점차 사라지자 뒷좌석에서 여자가 흐느낀다. 문득 깨닫는다. 택시의 안과 밖. 경사면으로 흐르다 끝내는 바깥으로 떨어지는 빗물. 일방적으로 건네는 돈과 받는 손. 창문 안에서 웃음을 흘리는 여자들과 택시 안에서 침을 삼키는 남자들.

모두가 단절이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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