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낙랑은 이해했지만 민족통합은 과연?_오페라 자명고

글 입력 2017.05.24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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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오페라 <자명고>에 대한 프리뷰 제목이었다. 오로지 사랑을 위해 그간 낙랑국을 지켜온 아버지와 백성들의 노력을 저버리고 자명고를 찢는다니. 반려자에게 버려지는 것만큼 거대한 비극이 없던 시대였지만, 특히 한 나라의 공주에게 혼인에 대한 강박관념은 대단했겠지만, 모든 걸 감안하더라도 감정적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대적 변용을 거쳤다는 오페라 <자명고>에서는 낙랑공주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공연을 보면서도 이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번 공연을 통해 나는 낙랑공주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자명고> 자체에 감동을 받진 못했다. 그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내보려 한다.


자명고 2.JPG▲ -국립오페라단 제공

 
 <자명고>의 무대는 굉장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러 다니다보니 그런 것인지, 오페라 무대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화려했고 웅장했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전체 무대 뒤편을 물들이는 색이었다. 
 오페라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민족통합'이었다. 이는 본래 자명고 이야기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주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낙랑공주의 행동에 보다 높은 개연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되어주기도 한다. 낙랑공주가 낙랑국과 고구려가 한 민족임을 강조하며 오랑캐를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고구려 호동왕자에게 감명을 받고 낙랑국의 비밀병기였던 자명고를 찢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렇듯 민족통합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 무대는 때로는 푸른빛, 때로는 붉은빛을 띠며 전반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제1장에서는 오랑캐 진대철이 낙랑국 조정을 능멸하며 자신의 우월함을 뽐낸다. 뿐만 아니라 하루 빨리 낙랑공주와 혼인하고자 하는 의사를 표시하며 최리왕과 낙랑공주를 압박한다. 이 때 무대는 푸른빛으로 물든다. 제2장도 마찬가지로 푸른빛 아래에서 진행되며 낙랑국 궁성에 침입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드디어 첫 대면을 하게 되지만 진대철은 민족통합을 외치는 그를 잡아가 버린다. 제3장 1부에서는 호동왕자의 신념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낙랑공주가 옥獄에 갇힌 호동왕자를 탈출시키고 함께 도망을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푸른빛이 아닌 붉은빛 속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진다. 제3장 2부에서는 도망간 두 사람이 폭포수 아래로 숨어들었다가 결국 진대철에 의해 발각되며 다시 푸른빛이 그들을 감싸 안는다. 대망의 제4장에서 진대철과의 혼인날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고 자살을 택하는데 공주가 민족의 영광스런 자산을 파괴하는 동시에 푸른빛으로 가득했던 무대는 붉은빛을 토해낸다. 이렇듯 공연은 민족통합이 좌절되는가 아니면 실현되는가에 따라 색을 달리하며 몰입도있는 무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오페라의 첫 시작에서 아름다운 낙랑국 궁녀들이 북춤을 출 때 민족통합을 암시하는 자막과 함께 새빨간 천이 휘날리는 듯한 배경을 설정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자명고 대표사진.jpg▲ -국립오페라단 제공

 
 한편 파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민족통합이라는 문제의식은 우리나라가 처한 특수한 상황, 바로 분단의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오페라의 초반에서 진대철은 낙랑국의 건승은 자명고가 아닌 자신의 출중한 능력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낙랑국은 자명고로 인해 패망했다. 다시 말해 낙랑국을 지탱했던 실체는 자명고였던 것이다. 자명고는 표면적으로 적의 침입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신비한 북일 뿐이지만 같은 민족인 고구려와의 통합을 방해하는 장애물로써 상대에 대한 깊은 불신과 원망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에게 낙랑국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건 왕궁밖에 없으며 그 밖은 오랑캐의 수탈과 기근으로 인해 피폐하기 그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낙랑국은 백성이 평안한 건강한 국가가 아닌, 외부 적에 대한 적개심을 뜯어 먹으며 허울만 살아남은 '실패국가'였던 것이다. 마치 지금의 북한처럼 말이다. 여기서 오랑캐는 한반도의 상황덕분에 이익을 챙기는 (특정할 수는 없지만) 외세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민족통합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고자 하는 <자명고>의 노력은 '남한은 파란색, 북한은 빨간색, 우리는 한민족'으로 이어지고 결국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는 단순한 러브스토리를 넘어 지나치게 무겁게 흘러갈 가능성이 다분해진다. 이를 두고 좋다 나쁘다 판단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의적인 측면에서 남북관계가 썩 우호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민족’이라는 단어가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얼마만큼의 동질감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이다. 궁극적으로 민족통합이 현대의 감수성인가에 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낙랑의 행동 자체를 보다 유연하게 설명하는데 민족통합은 긍정적으로 기능했을는지 모르겠지만 관객이 <자명고> 자체에 빠져들기엔 적어도 나에겐 역부족이었다.


자명고 3.jpg▲ -국립오페라단 제공

 
 하지만 오페라 <자명고>는 스토리 외에도 즐길 만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무대도 그렇지만 성재형 무용단 숨ssum이 초반에 보여준 북춤과 공연 중간에 등장한 두 번의 독무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야기에 있어서는 감상이 갈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지만 공연 자체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오페라, <자명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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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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