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극 속을 서성이는 자들을 향한 북소리, 창작 오페라 < 자명고 >

글 입력 2017.05.2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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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포스터-오페라 자명고.jpg
 



"제8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오페라 <자명고> by. 노블아트오페라단

2017. 5. 19~21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낙랑공주. 고구려국의 왕자, 호동을 위해 전쟁에 있어 전설적인 힘을 발휘하는 자국의 신고(자명고)를 찢고 진정한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보여준 낙랑국의 여인이다. 프리뷰에서 표현한 바 있듯 국가의 존망과 사랑을 위한 희생 사이에서 운명의 칼자루를 쥔 이 여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애잔함 이상의 감정을 안겨준다. 현대문학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단순한 서사 구조를 갖고 있지만 본 설화의 결말이 장엄한 비극으로 마무리 된다는 것 그리고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공감하기가 어려운 등장인물들의 가치관과 같은 것들은 끊임없이 궁금증을 야기한다. 호동은 정말 낙랑을 사랑하기는 했을까? 호동은 낙랑에게 죄책감을 갖고는 있을까? 호동의 자결은 무엇일까? 낙랑이 북을 찢게 된 것은 정말 사랑 때문일까? 
  
  이에 대한 물음으로 창작된 것이 오페라 <자명고>다. ‘낙랑’에 대한 나름대로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는 여러 작품들 중 하나다. 프로그램북에 소개 되어 있는 Director’s Comment 코너에 의하면 <자명고> 속에서 그려지는 ‘낙랑’은 아버지 최리왕의 말보다 연인 호동의 말보다 자명고의 울림에 더 귀를 기울였던 여인이었고 그녀의 죽음은 연인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민족을 위한 억척스러운 믿음으로 비롯된 숭고한 희생이다. 낙랑이 왜 북을 찢게 되었을지, 그녀는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을지에 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끝에 ‘가족과 국가를 배신한 여인’이 아닌,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져버린 여인’이 아닌 ‘민족 통일에 대한 열망과 자국의 어리석은 현실에 눈을 뜬 강인한 여성상’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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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낙랑’에 대한 오페라 <자명고>의 해석은 내게 전혀 설득력이 없는 쪽이다. <자명고> 속 ‘낙랑’의 죽음이야말로 원본 설화 속 공주의 죽음보다 공허했고 극단적이었다. 대의만이 가득하고 그곳에 ‘인간’은 없다. 새로운 ‘낙랑’의 이야기라면서 ‘개인 낙랑’이 없다. 조국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가슴에 품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겨레의 하나 된 미래를 위해 북을 찢고 오랑캐에게 신부로 팔려가지 않으려 스스로 자신의 배를 찌른 여인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시신 곁에서 전원이 합창한다. 여인을 칭송하면서 만백성의 가슴 속에 길이 남아 영원할 것이라고 우상화시킨다. 심지어 그녀를 사랑했다고 하는 ‘호동’마저도 그렇게 노래했다. 나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결의에 찬 배우들의 장중한 연기를 지켜보며 어이없는 ‘불편함’에 할 말을 잃었다.

  창작자가 진짜 ‘낙랑’이라는 캐릭터를 아끼고 새롭게 인식했다면 그녀의 이름부터 제대로 붙여줘야 했다. 설화는 워낙 오래 전 역사의 이야기이므로 여성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시대의 ‘낙랑국’ 공주니까 그냥 쉽게 ‘낙랑공주’라고 불렀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까지 그녀를 낙랑공주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가 뭔가. 호동이라도 그녀를 새롭게 불러줘야 하지 않은가? 현대의 관점에서 각색된 극본 속에서까지 ‘낙랑공주’는 이름 없는 흐릿한 여인에 불과하다. 
  그 다음 불만사항은 ‘사랑이야기’다. 남녀 주인공의 감정적 개연성이 굉장히 조악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주가 호동에게 마음을 뺏긴 것을 통일을 위해 강한 고구려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으로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진짜 이성적으로 매혹된 것이라 받아 들여야 할지 정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드러지는 사랑의 아리아를 지켜봐야 했다. ‘낙랑’의 죽음을 다르게 해석할 것이었다면 그들의 사랑이야기도 감정의 깊이와 진폭, 방향성과 같은 다양한 부분에서 달라져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작품은 ‘사랑을 나누는 씬’에서만큼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원작에 밀접하게 기댄다.
  또한, ‘호동의 자결’과 그것을 둘러싼 배경이 통째로 빠졌다는 점도 의아했다. 주요 인물인 호동의 죽음을 삭제시킨 것은 창작자가 작품을 통해 호동이 아닌 ‘낙랑공주’라는 캐릭터를 중점에 두고 분석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명고> 속에서 그려지는 공주 캐릭터에 어떠한 공감도, 애정도 갖지 못했기에 그 의도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설득력 없는 무리한 각색은 오히려 원작을 훼손하고 의미를 한쪽으로만 매몰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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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국립오페라단 제공


  나는 이러한 여러 불편한 지점들이 왜 이토록 시종일관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인지 당황했지만 오페라 <자명고>의 창작 의도부터가 내가 가진 가치관과는 상당히 상반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는 이해가 되었다. 나는 원본 설화 속 ‘낙랑’을 연출자처럼 ‘사랑에 눈이 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여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어리석어 지는 것이 왜 한계를 가진 인간형인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설화 속 어떤 인물보다도 낙랑이 제일 솔직했고 비겁하지 않았다. 사랑을 행하는 행위는 희생당하는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 사랑을 이용한 자가 비겁한 것이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지켜내려 하는 인간의 고뇌와 갈등은 숭고하다. 한 나라의 공주 정도 되는 사람이 ‘자명고’를 찢었을 때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 못했겠는가? 조국에게 버려질 것을 알고, 아버지에게 버려질 것을 알면서도 칼로 신고를 찢었다는 것은, 신적인 힘을 지닌 성스러운 것에 감히 커다란 흠집을 냈다는 것은 자신이 품은 커다란 사랑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체화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에 충실했을 뿐이다. 사랑을 해본 자라면, 어찌 이해할 수 없다고 매도할 수 있는가?

  오페라 <자명고>는 마치 사사로운 사랑보다도 위대한 것이 민족 통일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위한 희생이 더 가치 있고 위대한 것이라고. 한 여자가 남자를 위해 죽음을 불사른 것을 왜 굳이 부정하고 그렇게만 해석해야 했을까. ‘사랑에 이용당한 여인 그래서 조국을 배신한 여인’이 거대한 역사적 전환의 의미를 더럽히기라도 하는가? 그래, 민족은 하나다. 그러나 ‘낙랑’은 고유하며 ‘낙랑의 사랑’ 역시 단 하나였다. 국가의 존망과 사랑이라는 잔혹한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는 여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줬어도 좋았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조국의 통일을 위해 몸을 던지고 죽는 순간까지도 겨레의 희망을 노래하는 인간상이야 말로 인위적이다. 여기에 인간적인 조바심과 두려움이 있는가? 그렇다면 <자명고>의 낙랑은 원본 설화가 비판받는 지점인 ‘여성의 무조건적인 희생’에 있어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고전을 재해석할 때는 반드시 원래대로의 재현에 충실해질 필요는 없지만 ‘고전’이 품고 있는 생철학적 의문점과 서사적 난해함을 새로운 시각과 틀로 보여줄 필요는 있다. 그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고전을 읽고 리메이크하는 이유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자명고>는 원본에서 그저 인상적인 소재를 이용하였을 뿐 다른 해석의 여지를 차단해버리는 ‘답이 정해진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여러모로 아쉬웠다. 훌륭한 무대연출과 의상, 탄탄한 실력을 갖춘 젊은 성악가들의 노래는 인상적이었지만 길게 울려 퍼지는 여운의 ‘북소리’도 슬픈 여인 ‘낙랑’의 모습도 내 가슴엔 남지 못했다.



< Synopsis >

낙랑국의 신비의 북 ‘자명고’는 나라가
위태로움에 처할 때 마다 스스로 울려,
민족통일을 염원했던 고구려는 늘 패배했고
이에 호동왕자는 낙랑공주를 설득하기에 이른다.

오랑캐 진대철과 손잡고
고구려에 맞서는 자국의 어리석음에
회의를 느낀 낙랑은 호동왕자의
신념어린 모습에 흔들린다.

낙랑공주는 진정한 민족통일을 위해
강한 고구려에게 힘을 실어 주어
분란의 원인인 외부 세력을
내몰아야 한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한편 아버지 최리왕은
진대철과 낙랑공주의 정략결혼만이
낙랑국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지만,
낙랑공주는 미래의 통일 조국은
고구려의 승리뿐이라 여긴다.

낙랑국의 패망을 감수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자명고를 찢어버린 낙랑공주는 이것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진정한 선택이었음을 자신하며 호동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최종] 자명고 웹배너.jpg
 

<공연정보>

공연장소 ㅣ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날짜 ㅣ 5월 19일(금), 5월 20일(토) 오후 7시 30분
      5월 21일(일) 오후 3시
공연시간 ㅣ 총 4막 120분(인터미션 포함)
문의 ㅣ 노블아트오페라단 02) 518- 0154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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