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 『안녕 주정뱅이』 [문학]

글 입력 2017.05.21 21:1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jpg
 
 


인생이 던지는 잔혹한 농담,
그 비극을 견디는 자들이 그리는 아름다운 생의 무늬

2007년 제15회 오영수문학상,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2012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그리고 2014년 “작품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상찬을 받으며 장편소설 『토우의 집』으로 제18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권여선이 다섯번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선보인다. 2013년 여름부터 2015년 겨울까지 바지런히 발표한 일곱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한국문학의 특출한 성취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권여선의 이번 소설집은 이해되지 않는, 그러면서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지난 삶의 불가해한 장면을 잡아채는 선명하고도 서늘한 문장으로 삶의 비의를 그려낸다. 인생이 던지는 지독한 농담이 인간을 벼랑 끝까지 밀어뜨릴 때, 인간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 불행을 견뎌낼 수 있을까. 미세한 균열로도 생은 완전히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탁월한 감각을 발휘해온 권여선은 그럼에도 그 비극을 견뎌내는 자들의 숭고함을 가슴 먹먹하게 그려낸다.

< 창비 출판사 '책 소개' 중에서 >




image_readtop_2016_381875_14643368562487473.jpg
 

권여선 權汝宣
 
196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장편소설 『레가토』 『토우의 집』이 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전부 알 것 같아도 더 이상의
이해는 없었음 좋겠어
묻고 싶지만 끝내 그 대답을
듣지 못했음 좋겠어
(IU, 마침표 중에서)


이제까지 보아 왔던 소설집의 제목은 대개 그 소설집을 대표하는 소설의 제목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소설집 안에 ‘안녕 주정뱅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나 찾았는데 보이지 않아서, 작가가 왜 이 책의 제목을 따로 정했는지 생각해 보다가, 문득 이 책의 모든 단편에 술을 마시는 장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런 상징성을 단순하게 정의해 버리는 짓에 염증이 나기 시작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런 책을 읽고 ‘작가는 왜 이러이러한 장면을 저러저러하게 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해야 한다는 것에 맥이 빠졌다.

그래서 그 질문을 무시하기로 했다.

이 책의 일곱 가지 단편들 속에서 술을 마신다는 행위는 여러가지로 표현되었다. 알코올중독자의 모습으로, 서로에 대한 서운함을 표출하는 계기로, 일주일 중 단 하루 일요일을 보내는 특별한 방식으로,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기 위한 도구로, 십 몇 년 만에 만난 이들 간의 어색함을 덜어내기 위한 용도로 말이다.


3-10.png
 

역시 이렇게 섬세한 소설을 이렇게 무디게 분류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식으로 술을 마신다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데, 그건 정말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술을 마시는 건 다른 행동보다는 보편적으로 용인되는 행동이다. 기쁠 때도 축배를 든다는 이유로 술을 마실 수 있고, 슬플 때도 슬프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비단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꾸만 모든 행동의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이유가 없는, 즉 이유를 바로바로 유추할 수 없는 행동은 곧 ‘좀 이상한’ 것으로 치부된다.

이상한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하고 넘어가는 것과 왜 저런 이상한 행동을 할까 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덜 폭력적인가.

또, <층>에 등장하는 남자 강사가 그러하듯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그 이상한 일의 자초지종을 다른 사람이 알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과 그렇게 무관심한 사람에게라도 공감을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지나쳐버리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폭력적인가.
 
 규정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누군가를 규정할 때에 끊임없이 원인과 결과를 찾으려고 하면서도, 결국에 결론은 맥없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알코올 중독자를 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술을 엄청나게 마셔 댄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사실 이유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모두들 저마다 자신이 주인공인 비극이 적어도 한 편씩은 있는 법이기 때문에, 간편하게 그 중의 하나 혹은 전부를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래도 그러면 안된다’고 한다, 보통은.

하지만 그 취사선택의 과정에 포함되는 이해심은 왜곡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그렇게 미친듯이 술을 마신다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할 때는 그 사람의 일상이라는 게 이미 ‘당신이 아닌 나’는 결코 알 수도 없을 만큼 비현실적(여기서 비현실적이라는 것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봄밤>에서 알코올 중독에 걸린 영경을 바라보는 다른 인물들의 시선만 보아도 그렇다.

그 만남이 행인지 불행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176)

<실내화 한 켤레>에 등장하는 혜련이 아주 멀리에 있는 것은 정말 잘 보면서 가까이에 있는 건 잘 보지 못하는 모습이 이와 같다. 아주 멀리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가벼워지고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무거워지는 것이 관계의 잣대라면 나는 어디쯤에 있고 너는 어디쯤에 있을까. 지금은 연락을 끊은 친구가 생각났다.

정말 진지한 얼굴로 사람은 행복하게 살려고 사는 거 같아, 하고 말하던 것도 떠올랐다. 그 말에 반박하고 싶어했던 뒤틀린 내 표정도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결국 아무 반박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십 몇 년이 지나서 다시 만난다면 나는 그리고 너는 경안일까 혜련일까 선미일까.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마음대로 단정짓는 너의 가정에 코웃음을 치고 싶었으면서도, 동시에 나 역시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을 견딜 수 없었다.


ddd(1).jpg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눈을 멀게 하고 주변을 보려 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는 순간이,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순간이,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순간이 견딜 수 없으니까, 결국 그런 관계는 내가 바라는 가까운 곳에서는 오지 않고 내 의지대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생을 살면서 한 번 정도는 그런 우연이 등장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한다. <이모>에서 등장하는 시이모님과 ‘나’의, 무척 생소한 관계처럼 말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동등하게 무언가를 나누기 힘든 관계, 아니 애초에 서로를 제대로 알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관계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가지고 글을 쓴다.

결국 공감이나 이해라는 건 나를 다 알아주길 바라는 상대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갑자기 툭 하고 나타나 나를 바라봐 주는 시선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 또 그 한 번이 있다면 ‘나를 전부 알 것 같다는 이해’도, ‘대답을 들어야만 하는 물음’도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52VEyDFS.jpg


[최서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