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몰락의 끝을 달리다, '소리와 분노' [문학]

콤슨 가의 비극 앞에서 나는 시작을 보았고 끝을 보았다.
글 입력 2017.05.20 01:2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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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나는 책이라 하면 마치 숙면 지침서인 양 여기고, 여전히 독서를 즐겨하진 않지만 ‘고전 명작 필독서’에는 이상한 욕심이 있다.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도스토예프스키, 괴테, 톨스토이 등등... ‘죽기 전까지 꼭 읽어봐야 할 세계 명작 100선!’ 정말이지 도전의식과 승부욕을 불러일으키는 문구다. 하지만 독후감을 쓰는 것이 아니라면 절반도 못 넘기고 덮어 버리는 장편 소설, 이번에는 이를 극복하고자 스스로 작가와 책을 직접 골라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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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선정한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 대표 단편선 중 하나인 ‘에밀리에게 장미를(A rose for Emily)’은 대학 교양 수업에서도, 전공 수업에서도 다뤄본 적이 있는 작품이다.
 색다르게 장편을 읽어보자 하고 고른 작품은 장편소설 ‘소리와 분노(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 복잡하고 심오하지만 한편으론 읽는 재미가 있어 명작으로 꼽힌다는 소설이다. 또한 평소에 알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문체가 익숙하다던지, 작가 고유의 서술 상 특징을 웬만큼 알고 있으니 읽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는 역시나, 다섯 장 정도를 읽었을까. 도무지 무슨 말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언어의 나열이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해설을 읽지 않고서는 1회독으로 이해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만약 성공하신 분이 계신다면 존경의 박수를 무한히 드린다.
 이 글은 혹시나 좌절할 독자들을 위해 어느 정도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글이다.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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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Sound and the Fury(소리와 분노)' (2014) 스틸 컷 중에서.


 이 소설은 전쟁에서 패한 이후 남부 백인 가부장 질서의 붕괴를 명문가의 몰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실종, 콤슨 집안에는 아버지의 권위와 가르침, 그리고 어머니의 보호와 사랑이 부재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부모의 애정과 가르침이 부재하는 집안에서 방황하는 자녀들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며, 그 황량한 상태는 세 아들, 백치인 거세 당한 벤지, 자살하는 퀜틴, 분노와 피해의식에 병든 제이슨으로 나타난다. 또한 그들의 성적인 결벽증과 불안정으로도 암시되는데 특히 고명딸인 캐디의 조숙함과 일탈. 그녀의 사생아 딸 퀜틴의 방종과 타락으로 나타난다.


 소설은 총 네 장으로 구성된다. 그 중 세 장은 이 집안의 세 아들의 관점에서 각각 쓰였고, 나머지 한 장은 제3자인 작가의 관점에서 쓰였다. ‘캐디’의 장은 없지만 세 아들의 독백의 중심에는 캐디가 있다. 독자들은 그들을 통해 캐디를 만나게 된다. 이를 염두로 하여, 각 장 제목에 붙어 있는 날짜에 주목해야 한다. 이 날짜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이야기 이면의 숨은 뜻으로 인도하기 위한 포크너의 방식이다. 날짜와 스토리 전개의 관계를 알고 나면 콤슨 가의 비극이 더욱 분명해진다.



Opinion.

 1.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들에서 ‘죽음’은 숨겨진 사실들을 밝혀내고 어떠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소재로써 자주 등장한다. 소리와 분노에서, 1장 벤지의 장은 ‘죽음과 몰락’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부터 할머니의 장례식이 있고, 죽은 동물의 시체, 갈까마귀도 등장한다. “이곳은 불길한 집안”이라는 흑인 하인의 말도 들린다.
 이러한 벤지의 독백을 채우는 것은 인물들의 부재로 인한 슬픔이다. 그것은 쉬지 않고 이어지는 그의 울음소리로 나타난다. 우리는 벤지의 장에서 콤슨가에 일어난 비극적인 일들의 윤곽을 알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비관적 허무주의를 느낄 수 있었던 몇몇 대목들을 가져와봤다.


 ‘소리의 마지막 울림이 멎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울림은 오랫동안 공중에 머물러 있어 들린다기 보다는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제껏 울린 모든 종들이 사그라드는 긴 광선 속에서 여전히 소리를 내고 있는 것처럼, 예수와 성 프란체스코가 그들의 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죽어도 단지 지옥으로 가는 것뿐이라면, 그게 전부라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사물이 그 자체로서 끝을 맺는다면.’ 
-118p
 
‘산 자는 어느 누구든 죽은 자보다 낫지만 어떤 살거나 죽은 자도 다른 살거나 죽은 자보다 훨씬 나은 건 아니다.’
-149p

 ‘시계는 할아버지의 것이었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나에게 주실 떄 이렇게 말씀하셨다. 퀜틴, 난 너에게 모든 희망과 욕망을 묻은 무덤을 준 것이다. 네가 이것을 갖고 괴로워할 만큼 모든 인간의 경험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
-129p



2.

 한편, 윌리엄 포크너는 미국 남부 출신의 작가로, 전쟁 후 몰락해가는 남부의 황폐함을 실험적인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전후 미국은 잃어버린 세대라고 칭해졌는데, 이 로스트 제너레이션 세대의 작가군으로는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피츠제럴드 스콧 등이 대표로 활약했다.
 포크너가 집필한 장편, 단편 작품의 대부분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요크나파토파’인데,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인종 갈등, 계층 갈등과 몰락하는 사회가 드러나는 공간으로 형상화하여 당시 미국 남부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요크나파토파 시리즈가 보여주는 일관된 주제와 유기적인 세계 및 내용은 남북전쟁 이후 구세대의 몰락과 사회 변화상, 백인의 빈곤한 생활상과 그들의 무지와 교활함 묘사, 남부 사회에 흐르는 흑인 문제와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요크나파토파를 설정한 의도는 자신의 고향에 가하는 예리한 비판, 무지한 흑인에 대한 백인의 학대와 비인간적인 봉건적 노예제에 대한 비판임을 알 수 있다.


3.


‘콤슨 가의 비극 앞에서 나는 시작을 보았고 끝을 보았다.’
- 딜지의 말 中


 내가 꼽은 명대사. 아마 이 한 마디에 ‘소리와 분노’의 주제가 다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pilogue.

 윌리엄 포크너는 한마디로 묘사와 문체의 마술사다.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무의식 중에 써내려간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과거와 현재 시제를 자유롭게 드나들고, 짧은 호흡으로 한 문장을 읽기란 절대 불가능할 만큼 길고 복잡한 기법을 갖고 있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스토리를 전개시켜 독자로 하여금 대혼란을 일으켜 당혹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주제 의식과 독특한 작품 세계로 인해 퓰리처상,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떠안으며 아직까지도 세계적으로 열광하고 인정받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록 며칠 동안 졸음과 씨름하면서 읽긴 했지만, 굉장한 뿌듯함이 남는다. 이번이 좋은 도전이었음은 명백하다.


[성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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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에밀리
    • 저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인데, 용기 있게(?) 읽고 리뷰를 남겨주셔서 저도 책을 집어들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 어렵지만 좋은 책들을 읽기 시작하려면 지윤님의 글과 같은 도우미 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줄거리를 먼저 소개해주신 점과 가독성 있게 문단을 정리해주신 것은 아주 좋았습니다! 다만, 문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도 이 리뷰를 읽고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려면,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포인트 하나만을 짚어 그것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내신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전쟁 후 몰락해가는 남부의 현실이 어떤 줄거리와 문체로 묘사되고 있는지 좀더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제시해주신다면 더욱 책이 궁금해지는 리뷰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은 지윤님이 꼽으신 명대사가 어떤 의미에서 이 소설을 대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주셔도 하나의 흥미진진한 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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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림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는 작가들만 편애하던 제가 읽을 책이 또 생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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