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섬세하게 밤을 가르는 바이올린 활, 양고운 바이올린 리사이틀 [공연]

글 입력 2017.05.1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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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초의 8시는 이미 해가 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는 시간이다. 시각이 어둠에 가려지며 둔감해지면 동시에 청각이 더 예민해진다. 음의 높낮이와 떨림 하나까지도 귀기울이게 되는 이 시간. 나는 이 시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악기가 바로 바이올린이라고 생각한다. 그 음에서 음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 활의 움직임과,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섬세한 떨림. 낮에는 여러 소음들이 합쳐져 다 들을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소리들이 곤두선 청각을 통해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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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어둠이 내린 바깥에서 공연장 안으로 들어오자, 곧이어 이 곳 역시 무대 위만 빼놓고 어두워졌다. 바이올린 소리에 귀기울이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이윽고 바이올린 연주자 양고운과 피아노 연주자 니나 구레비치가 들어와 베토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베토벤 소나타부터 슈베르트로 이어진 1부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곡 위주로 달콤하게 채워졌다. 음의 변주가 많지 않은 곡들이라 바이올린의 섬세한 비브라토가 더더욱 빛을 발했다. 그리고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화려한 기교를 소화해내는 피아노가 인상깊었다.

 잠깐의 휴식시간 뒤 시작된 2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근대 작곡가들답게 1부보다 사뭇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곡들이 연주되었다. 개인적으로는 2부가 더 맘에 들었다. 그 실험정신 덕택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미가 있었다고나 할까.

 우선 스트라빈스키의 콘체르탄테는 여러 풍경을 연상케 했다. 거센 파도,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바람에 바스락대는 나뭇잎들, 그리고 태풍이 휩쓸고 간 폐허가 공연장을 메운 어둠 위에 그려졌다 사라지곤 했다. 그 다음 연주된 비에니아프스키는 바이올린으로 낼 수 있는 최고음이겠다 싶은 극강의 고음, 더불어 정신없이 현 위를 오르내리는 극강의 기교를 보여주었다. 이 범접할 수 없는 연주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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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를 마친 두 연주자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인사하고 들어가도 박수 갈채는 끝나지 않았다. 결국 앙코르곡이 이어졌다. 마침 역사적인 날인 투표일이 공연일과 겹쳐져, 투표를 마치고 온 이들에게 위로 혹은 축하의 의미로 슈베르트의 '보리수'가 연주되었다. 부드럽고 친숙한 선율을 끝으로 아쉬운 공연이 막을 내렸다.

 공연장을 나오자 더더욱 짙어진 어둠이 나를 반겨, 바이올린의 섬세한 연주를 더욱 더 깊이 곱씹을 수 있었다. 장미 향기가 달큰하게 퍼지는 따뜻한 5월의 밤, 양고운의 바이올린 연주는 그 밤을 가르고 오래오래 내 맘에 주저앉았다.
 
 
[명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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