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생각]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했나

글 입력 2017.05.1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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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서울에서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특정 진로와 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특강이었는데, 특강에 참여했을 당시 나는 한창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특강은 나처럼 아직 명확한 진로를 찾지 못해 이런저런 분야를 다양하게 접해보기 위해 참석한 사람들, 확고한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참석한 사람들, 자신의 사례를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기 위해 온 사람들로 붐볐다. 작은 공간은 저마다의 열정으로 가득 채워졌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특강 시작 전에 잠시 틀어준 짧은 광고 영상이었다.




   내가 갈 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간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의심의 여지없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정도의 어렴풋한 윤곽도 잡지도 못했을 때, 나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 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며 방황했다. 무엇을 좋아하는 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무엇 하나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나도 답답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작은 실마리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수업을 들으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밤에 자려고 누워서도 인터넷을 뒤적여보곤 했다. 그래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땐,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보기도 하고 직접 찾아가 뵙기도 하고 나름 고민으로 치열한 나날들을 보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 오면 꿈같은 것쯤이야 당연히 생기는 건줄 알았다. 대학은 그런 꿈들을 모두 이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선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교에 가라고. 치열한 입시경쟁에서는 전공마저도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친구들이 더 좋은 대학교를 위해 원치 않는 전공이라도 지원하곤 했다. 그렇게 해서 나 역시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보니 나는 여전히 어렸고, 아는 것은 별로 없었고, 또 다른 문제들을 마주해야 했다. 대학생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처음 접하는 자유로운 문화에 마냥 행복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유롭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임을, 그것은 책임의 동의어임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 된 내게 세상은 자유를 만끽하면서, 학점관리도 하고, 연애도 하고, 행복도 하기를 요구했다. ('지은아 뛰어야 돼, 시간이 안 기다려 준대, 치열하게 일하되 틈틈이 행복도 해야 돼' 라는 아이유 노래의 가사처럼.) 동아리 활동을 하고, 엠티를 몇 번 다녀오고, 복수전공도 신청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났다. 그리고 다시 대책 없이 고학번이 되었다.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었을 때처럼, 그렇게 다시 한 번 대책 없이 고학번이 되었다. 새로운 봄이 돌아올 때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교정을 배회했고, 나는 어딘가 마음이 불안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면 무엇이든 혼자 해낼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졸업이 곧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뒤늦게 길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가장 큰 길,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공무원 시험을 고려해보기도 했고, 적성과는 맞지 않지만 취직에는 유리한 학문을 고려해보기도 했다. 어떤 길이든 멀고 험한 것은 마찬가지이나, 적어도 이 길은 결승점이 명확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마라톤 선수처럼 한길로 달리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고, 많은 이들이 달리고 있는 이 길은 멀고 험하겠지만 그래도 결승점은 분명해보였다. 마음이 급할수록 빨리 달리기를 시작하려고 했지 다른 길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한 편의 짧은 광고는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결승점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은 순간이라는 건 없다는 것을.


   마음이 급해질 때면 어김없이 인생은 마라톤이고 길은 하나뿐인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제 내가 가고자 하는 결승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꿋꿋이 찾아갈 것이다.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했는가. 함께 특강을 들으며 치열하게 미래를 그렸던 그에게도 이 말을 전한다. 길은 인간의 수만큼 있다고. 너무 늦은 순간은 없다고.


[노혜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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