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모 로보타쿠스,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

글 입력 2017.05.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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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극장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꽤나 신선했다. 대학로에서 가 본 몇몇 소극장에서는 대부분 무대가 맨 앞에 있고, 관객석이 있는 일반적인 극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장은 신기하게도 무대가 가운데 있고, 관객석이 이를 빙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게다가 관객석 중간중간에는 극을 위해 사용되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무대와 정말 가까운 공간에서도 관객석이 있어서 관객석과 무대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누가 관객이고, 누가 배우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의 내용을 관객이 단순히 ‘관람’하는 것이 아닌, 관객인 나 역시도 마치 극의 일부분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그 이야기에 이입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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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된다는 별다른 표시도 없이, 극은 마치 내 옆의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오듯이 자연스럽게 시작했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극 속에 몰입할 수 있었다. 공연은 헬레나가 호모 로보타쿠스를 생산하는 공장을 방문하면서 전개된다. 이 공장에서는, 인간과 모든 것이 똑같이 생겼지만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호모 로보타쿠스를 만들고 전국으로 유통한다. 공장주 해리와 나머지 공장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없고, 오직 명령에 복종하게끔 설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으로부터 오는 고통이나 아픔같은 것들은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권에 많은 관심을 가진 헬레나는 이러한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호모 로보타쿠스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헬레나는 그 이후 공장에서 생활하면서 호모 로보타쿠스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헬레나는 명령을 내리는 다른 인간과는 달리, 호모 로보타쿠스와 동등한 위치에 선다. 계속해서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감정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헬레나의 노력으로 한 로보타쿠스는 그림을 그리는 등, 이전과 다른 행동들을 보이지만 여전히 해리와 그 직원들은 이러한 행동을 단순한 모방으로 치부한다. 그들의 반인권적 행태를 용납할 수 없는 헬레나는 로보타쿠스를 만드는 설명서를 태워 버리기에 이르고, 다시는 이런 일들을 저지를 수 없게 한다. 한편 공장주 해리는 호모 로보타쿠스를 노동에 이용하는 것에 더해, 전쟁용 호모 로보타쿠스를 만들기에 이른다. 인간이 하기 싫은 전쟁까지도 이러한 기계들에게 맡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헬레나의 예상대로였을까. 호모 로보타쿠스들에게 감정을 주입하는 실험을 수행하던 수잔 박사에 의해서, 호모 로보타쿠스는 점차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 감정은 자신들을 이용한 인간에 대한 분노, 저항과 같은 것들이었다. 전쟁용 호모 로보타쿠스는 자신의 무기를 서로가 아닌 인간에게 겨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만든 기계들에게 멸망되는 것이다. 그들을 만든 공장주, 과학자, 그들을 인간으로 여겼던 헬레나마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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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을 관람하기 전까지 나의 생각은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호모 로보타쿠스’라는 이름만 없지 사실상 기계들에 의해서 정복당하는 지금의 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무엇으로 정의해 나갈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느 부분에 우선순위를 두고, 어떻게 하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잘 살아 나갈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극을 관람한 후 나의 생각은 완벽히 인간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인간이 기계를 만들고 이용했다는 사실은 잊은 채, 우리를 어떻게 하면 방어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었던 것이다.

호모 로보타쿠스로 표현된 기계, 혹은 인간일지도 모르는 기계. 이들은 어쩌면 인간인 우리가, 우리들의 편의를 위해 이용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내 주위에 있는 기계들일수도 있고, 우리와 같은 생명을 가지고 있는 동물일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와 같은 인간 그 자체일수도 있고. 단순히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리할까, 우리의 일을 줄일 수 있을까. 단지 효율성만을 중시한 소위 말하는 ‘합리적’인 시각에서 우리는 주변의 것들에 대한 존중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호모 로보타쿠스를 처음 접했을 때 자연스레 인간을 방어한 나의 생각처럼 말이다.

이번 공연은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입장만을 대변한 나의 생각에 조금이나마 변화를 준 공연이었다. 지금까지 인간의 ‘이익’만을 위해 어떠한 일들도 정당화하던 모습들을 되돌아본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 사랑하고, 결혼을 하는 순수한 감정의 호모 로보타쿠스들을 보며, 그들이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같다는, 아니, 정말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인간은 우리의 자리를 지키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위해 이용한 모든 것들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 이번 공연을 통해 얻은 의미 있는 깨달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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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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