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다움을 찾는 공부, '논어' 학이편 [문학]

글 입력 2017.05.1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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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가는 공부 – 공자 ‘논어’


 
공부는 왜 할까? “공부는 왜 하니?”라는 질문에 보통은 ‘의사’ ‘판사’ 등의 직업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혹은, ‘대학이라도 잘 가두면 선택권이 넓어질 것 같아서요’라고 말한다. 공부는 사회적 생존 기능의 수단인 것이다. 공부 자체가 아니라,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되는 직업적 보상이 최종 관심인 것이다. 정리해보면, 공부를 하면 돈과 권력의 획득이 용이해지고 그에 따라 자유를 얻는 것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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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자의 ‘논어’에 의하면 공부는 한낱 이윤 추구 행위가 아니다. 고등학생 때 논어에 관심을 가져 시민 강좌도 들어 보고, 대학에 와서도 동양 철학 수업을 통해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사상에 대해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배운 공자의 ‘공부론’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논어 학이편의 첫 세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 而不溫 不亦君子乎


풀면 다음과 같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타인이 나를 몰라주어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닌가’


 
#1.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오늘날 ‘배움’이라는 것은 지식의 축적이자, 지식의 소유를 위한 연마이다. 그러나, 논어에서 거론되는 ‘배움(學)’은 이와는 다르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적절한 인간이 되기 위한 것의 의미이다. 즉, 인간의 삶의 목표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인간이란, 무의미한 동어 반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타고난 자질과 재능을 꽃피운 인간을 뜻한다. 그리고 그러한 배움을 ‘때때로 익힌다’는 것은 가끔 복습한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변화에 따라 꼭 맞는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공부라도 다 알맞은 시기에 해야 한다. 즉, 첫 문장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공부를 하고 그 공부를 통해 얻은 재능을 때에 따라 실천하고 행할줄 아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다’는 것을 전해주는 듯 하다.



#2.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 또한 가끔 친구가 찾아와서 담소를 나눈다는 말이 아니다. 나를 알아가는 공부를 통해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자 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면,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말이다. 내 뜻이 확실히 정립되지도 않은 사람이 누구와 뜻이 같다 다르다를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뜻이 같은 친구를 찾다 보면, 그 친구의 범위는 단순히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정되어있지 않고 그를 초월하게 된다. 먼 시대의 성인들 또한 나와 같이 뜻을 한다면 벗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러한 뜻이 맞는 벗이 ‘저 멀리’에도 있음을 알게 되면 그 또한 기쁜 것이 아닐까.



#3. 타인이 나를 몰라주어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닌가.


타인이 몰라 주어도 화를 참는다는게 아니라, 진짜로 화가 일어나지 않는 다는 뜻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면 행복해지고, 몰라주면 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나의 행복 여부가 나 스스로가 아닌 타인에게 달려있음을 증명하는 꼴이다. 하지만 나의 뜻이 확실히 정립되어 있으면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우리는 종종 사회가 정한 가치 – 주로 돈과 권력 – 에 따라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곤 한다. 집의 크기, 아파트, 성적, 재력.. 이러한 우열감의 근원은 인정욕구이고, 그 인정욕구의 근원은 결국 자기 불안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그의 승인을 얻어야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다움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공부를 해나간 사람이라면, 그러한 비교로부터 자유롭다.


 
#결국, 왜 공부인가?


결국 왜 공부일까? 나 자신을 알고 나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자조적으로 “공부는 내 길이 아니야, 글렀어”라고 말하곤 했다.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 수업에서 논어 학이편 구절의 가르침을 받고도, 공부를 ‘나다움을 찾는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 공부는 필요하다. 인생의 목적은 자기성의 실현이고, 다른 성과는 나다움의 실현에 있어서 따라오는 것이기에.


[김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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