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교육이라는 이름의 야누스: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 [문학]

글 입력 2017.05.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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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 들어와서 용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해왔다. 지금도 하고 있는 과외나 두 번의 학원 (영어와 국어), 시험기간에만 질문을 받아주는 기간제 조교 등등.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지금까지 했던 일들이 전부 나보다 어린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아이들이 정말로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두려움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이미 대학생인 내가 보기에도 충분히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시험을 못 볼까 봐, 아니면 지난 번보다 성적이 내려갈까 봐 우는 아이. 혹은 이미 그 두려움 앞에 굴복하거나 체념하고,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이 닦달하는 것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나는 안될 거야.’ 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아이.

“쌤, 저 담임선생님이,
자기는 인성보다 성적이 중요하다고,
성적에 따라서 선생님이 우리를 대하는 것도
달라질 거라고 하셨어요.”

 내가 반년 째 영어 과외를 해주고 있는 중학생이 3월 반 배정을 받고는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왔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과 진학 상담(이 학생은 올 해 중2이 되었다)을 하면서, 지금 이 성적으로는 목표하는 고등학교 원서를 써줄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학생이 지원하려는 학교에 모자란 성적을 가진 것도 아닌데다, 이미 성적 등수를 떠나 공부하는 자세에서만은 웬만한 고등학생들을 훌쩍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문제의 그 학교는 나의 모교이기 때문에 나는 그 학교가 원하는 인간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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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 입시를 위해 공부 중인 중학생 >


 내가 가르치는 학생보다 훨씬 방황하면서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나름 성공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나는 그럼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 날 내가 아무리 기운을 북돋아 주어도, 학생은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시무룩해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쌤, 저 중간고사를 진짜 잘 봐야겠어요.
벌써부터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싫은데,
그래도 저 꼭 담임선생님한테 인정받고 싶어요.
그니까 이번에는 내신 기간 늘려서 수업하면 안돼요?”

참으로 기특한 제자가 아닐 수 없으나, 내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만일 바람직한 상으로 제시되는 이들이,
엘리트들이 짜놓은 계획을 단순히 실행할 뿐인
기술적으로 순종적인 노동자 집단이라면,
(학생들의) 자유로운 정신이란 기실 위험천만한 것이다. (51)

학생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간단하게도,
오점 없는 선에 관한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것 (52)
 
 돌이켜 보면, 나는 한 번도 선생님들이 나에게 가르치는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행동거지는 얌전하고 조용했지만, 공부는 내가 재미있다고 여기는 것만 했다. 그래서 성적은 들쭉날쭉했고,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의지도 별로 크지 않았다. 그 대신에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 심할 때는 시험 전 날에도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몰래 읽고 싶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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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자율'학습 중인 고등학생 >


 나는 참,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아이였다. 나쁘게 말하면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애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게, 나는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과를 정할 때도, 어디를 붙든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도록 수시 6개를 모두 가고 싶은 학과로 정했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학점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나는 내 흥미와 맞지 않는 수업은 당최 무슨 짓을 해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반면, 한번 재미를 느낀 수업에는 미친듯이 파고들곤 한다. 이런 별난 나에게 과외를 받는 학생들은 그래서 언제나 이런 위험한(?) 사상에 노출되어 있다.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문학 교육을 나는 나름대로 항상 시도한다.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거나, 직접 책을 빌려주거나, 어떤 날은 수업을 제쳐 두고 그 날의 뉴스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한다거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항상 썩 만족스럽지 않게 끝났다.

민주주의 체제는 모든 개인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세워지는 것인데,
성장 모델은 오로지 어떤 군집체만을
존중하니 말이다. (53)

사회적 • 가족적 규범 양자를 통해 그 사회들은
완벽함 • 강함 • 지배야말로 
성공한 삶의 핵심 요소라는 메시지를 가르친다. (72)

 아이들은 초조해한다. 자기 옆에 누군가가 자기를 추월하고 가버리면 어쩌지, 다른 아이들은 지금도 미친듯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텐데 나만 제자리인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자연스럽지 않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하면서 동시에 롤모델을 가져라, 꿈을 가져라, 라는 말을 하는 것은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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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누스의 두 얼굴 >


 우스우면서도,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두 가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서늘한 공포도 함께 존재한다. 마치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왜 우리는 맹목적으로 성공한 1%가 되기 위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 수동적으로 길들여지면서도,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찬미하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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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 >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경제가 지배하는 이 사회의 질서에서 벗어난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저지른 그 ‘이단’에서 최고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피겨 계에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김연아 외에 피겨 선수를 일반인들이 몇 명이나 기억할까? 게임을 애들이나 하는 질 낮은 오락으로 취급하는 한국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프로게이머 임요환이나 Faker 외에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누가 기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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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ports 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른 'Faker', 이상혁 선수 >


 결국 이 사회는 사회의 위계 질서를 벗어나는 행위를, 이 사회를 지배하는 질서를 비판하는 행위를 하나의 거대한 도박처럼 만들어버린 것 같다. 그 도박판에서 길이길이 기억될 이름들은 널리널리 칭송된다. 그들의 엄청난 노력과, 재능은 그걸 보는 우리들에게 도전을 시작하기 전부터 큰 벽을 준다. 그리고 대부분은 체념한다. 나는 이미 글렀다고, 평범한 삶만으로도 나에게는 이미 차고 넘친다고, 이 삶을 따라가기도 벅차다고. 그 벽이 실제로 어디서 왔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벽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막아버린다.

깊은 공감은 그 자체로 도덕성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성의 핵심 성분들을
공급할 수 있다. (75)

 벽에 갇힌 이들은 서로를 보지 못한다. 맹목적으로 벽을 넘으려고 하거나, 아니면 벽을 넘는 것을 포기해버린다. 힘을 합쳐 벽을 부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벽은 점점 더 단단해진다. 우리가 이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벽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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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 나를 가로막고 있는 벽인지, 아니면 마음만 먹으면 없어질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껏 생각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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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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