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 비정상인가요? :소설 '편의점인간' [문학]

정상이 되기위한 몸부림
글 입력 2017.05.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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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책 <편의점인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 나는 이물질이 되었구나.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가게에서 쫓겨난 시라하 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은 내 차례일까?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본문 98쪽



  <편의점인간>에는 '이물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물질이라는 개념은 사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처음부터 '이물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은 없다.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물질로 '여겨지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다수와 다른 <편의점인간>의 두 주인공 후루쿠라와 시라하는 이물질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이물질이 된 느낌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까?


   나는 어렸을 때 당연히 스무 살이 되면 대학생이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20대 중반쯤 졸업과 취업을 해서 20대 후반이 되면 모두가 결혼을 하고 30대가 되면 아이를 낳을 것이라 생각했다. 막연하게 그냥 그 나이가 되면 저절로 무언가가 되는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스무살이 넘어보니 저절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나, 남들 다 하는 미팅 소개팅을 싫어하는 나를 사람들은 유별나게 여겼다. 누군가에게 너는 왜 청춘을 즐기지 않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청춘조차도 어떤 틀에 맞게 재단되어 있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소위 말하는 '청춘'을 살고 있지 않은 나는 이물질이었고 나의 생활과 취향 등은 대다수 20대의 그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청춘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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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이라는 책에서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나이에 맞는 역할에 사로잡혀 있다는 내용을 읽게 되었다. 예를 들어 보통 불특정 다수의 노인에게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가족호칭을 붙인다. 마치 나이가 들면 당연히 장성한 자식과 그들이 낳은 손자들이 있을것처럼 말이다. 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닌 노인의 삶은 아예 배제하는 것이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었는데 정말 그랬다. 20대, 30대, 40대, 모든 연령대마다 기대되는 일이나 역할이 분명했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사실 모두 나이에 맞다고 여겨지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아둥바둥 애를 쓰고 있었다. 지금쯤 되면 졸업을 해야 하는게 아닌가, 결혼을 해야 하는게 아닌가, 자기 소유의 집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가 길을 이탈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모두의 뇌가 상상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 되어간다.
모두의 축복이 기분 나빴지만,
"고맙습니다"하고만 말했다

본문 169쪽


   
 
  '정상적인' 삶에 집착하는 사람은 타인의 삶까지 지나치게 간섭한다. 정상이 되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단속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삶도 재단하려 드는 사람들이 꼭 있다. 소설 속 인물인 후루쿠라와 시라하, 그리고 그들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현실 속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후루쿠라와 시라하는 둘 다 현대사회에서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인간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이물질'이지만 이 둘이 세상에 맞서는 자세는 매우 다르다. 후루쿠라가 정상이라 여겨지는 삶에 반문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것과 달리 시라하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사람들을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도 어떻게든 정상으로 여겨지는 범주에 들어가고 싶어 애를 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정상의 범주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가장 맹렬하게 비난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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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인간>의 배경인 편의점은 정상으로 여겨지는 것들, 또는 정상이 되고자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식품들은 즉석조리가 가능한 상태로 포장되어 진열대에 가지런히 쌓여 있고 일하는 사람들은 한 개인이 아닌 '점원'으로 표준화되어 있다. 정상이 아닌 것들은 금방 퇴출되거나 바로잡힌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현대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편의점이 아닌가 싶다.



이제 깨달았어요.
나는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점원이에요.

인간으로서는 비뚤어져 있어도,
먹고살 수 없어서 결국 길가에 쓰러져 죽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내 모든 세포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요.

본문 188-189쪽


  
   역설적이게도 후루쿠라는 본인이 그런 편의점에 딱 맞는 인간임을 발견한다. 그래서 남들이 말하는 정상이 되기 위해 편의점을 그만뒀던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이 되기 위해 편의점으로 되돌아간다. 오늘도 자신이 이물질이 아닌 쓸모있는 부품으로 사용될 수 있는 곳을 찾아 사람들은 길을 헤맨다. 요즘같이 취업도 결혼도 힘든 시대에 '정상', '보통' 이라 여겨지는 삶은 때로 너무 높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심어 주기도 한다. 아무리 나만의 길을 가겠다 다짐해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 안심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후루쿠라조차 편의점에서 점원으로 존재할 때 편안함과 정상인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걸 보면 말이다. 중요한 건 그 정상의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이다. 끊임없이 정상이 되기 위해, 아니 정상으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에서 과연 그 정상은 무엇이며 누가 만든 기준인지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험난하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나만의 '정상 기준'을 정립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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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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