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해리? 헬레나? 그것이 문제로다_연극 호모 로보타쿠스

글 입력 2017.05.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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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디자인을 하고 있어. 미대에서 프로덕트디자인을 전공하는 친구는 말했다. 교수님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매 강의마다 강조하셨다. 이번 학기 내내 끈질기게 따라붙는 제4차 산업혁명이 무엇이기에 다들 이리도 바삐 움직이는 것일까? 신문이나 SNS 등을 통해 이미 회자되고 있는 주제인 제4차 산업혁명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개념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서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제1차 산업혁명,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한 제2차 산업혁명, 그리고 컴퓨터 및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지식정보 혁명에 이어지는 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적 발전을 의미한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제4차 산업혁명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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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이 어느 정도 완료되었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있을까.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의 표현으로 귀결되는 제4차 산업혁명은 산업 분야에 있어서는 궁극적으로 완전한 자동 생산 체제를 꿈꾼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기계에 조금씩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기술은 발전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제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노동 자체를 기술에 내어주려 한다. 핑크빛 미래가 따로 없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좁은 취업 관문을 통과하고자 발버둥 치며 성공하고 나면 평생에 걸쳐 지긋지긋한 노동에 온 생애를 바친다. 성실히 노동하는 것은 시대와 국경을 막론하고 바람직한 덕목이었다. 인간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속박하는 노동을 로봇이 대신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간은 먹고 놀기만 하면 된다. 로봇이 만들어준 재화와 서비스를 마음껏 누리고 향유하면서. 연극 <호모 로보타쿠스>의 R.H.C 사장 해리를 비롯한 수잔, 파브리, 지니 등은 바로 이러한 핑크빛 미래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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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헬레나, 그것이 문제로다  

 그들은 인간의 짐을 대신 짊어질 호모 로보타쿠스들을 생산하고 또 생산한다. 하지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것의 옳고 그럼과는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총리의 딸이자 인도연맹에서 활동하는 헬레나는 R.H.C에 찾아와 인간이나 다름없는 호모 로보타쿠스를 착취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며 이들을 인간과 동등하게 대우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런 그녀를 보며 해리는 말한다. 감정이나 욕구와 같이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불필요한 요소들이 거세된 호모 로보타쿠스는 외적으로는 인간과 다르지 않지만 절대 같을 수 없다고. 그는 이들이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선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위대한 발전의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한다. 헬레나가 혼란스러워하자 그는 호모 로보타쿠스 하나를 분해해보겠다고 한다. 그럼 자신의 말을 믿겠냐면서. 이렇듯 가치관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갑론을박 하는 것으로 극은 시작되는데, 이는 주제의식을 분명하게 전달하면서 그렇다면 둘 중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관객이 은연중에 선택하게 한다.


내 안의 섬뜩함  
 
 헬레나는 5년 동안 R.H.C에 머무르면서 호모 로보타쿠스들에게 영혼을 불어넣고 그들을 깨우치기 위한 계몽 활동을 지속한다.(이는 해리가 헬레나를 사랑했기에 가능했다.) 한편 수잔 박사는 호모 로보타쿠스들에게 감정을 주입하는 실험을 비밀리에 시행한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던 시도들은 마침내 호모 로보타쿠스들에게 인격이 형성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이들은 인간의 지배자가 되고자 혁명을 일으킨다. 마침내 인간은 인간보다 나은 인간이 되어버린 그들의 손에 휩쓸려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호모 로보타쿠스>는 막을 내린다.
 주제 자체는 진부할 수도 있다. 문명과 기술의 발전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는 작품들은 이제껏 꾸준히 등장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호모 로보타쿠스가 인격을 가져서가 아니었다. 인류가 멸종해서가 아니었다. 섬뜩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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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언급한 해리와 헬레나 두 사람의 대화에서 머리는 헬레나 편에 섰지만 사실 나의 마음은 이미 해리를 향해있었다. 호모 로보타쿠스들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 R.H.C의 인간들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따지고 든다. 누군가는 호모 로보타쿠스에게 혁명과 권리를 가르치고 영혼을 불어넣은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다른 누군가는 호모 로보타쿠스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파국은 예상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샌가 나의 마음은 전자의 편에서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건 꽤 섬뜩했다. 드론이 날아다니고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을 두고 있을 때 늘 생각했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편안함은 동시에 불편함을 안겨주지 않았나? 단 한 번도 스스로가 발전과 진보에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호모 로보타쿠스>를 보면서 깨달았다. 줄곧 부인해왔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진보에 대한 신념이 마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걸. 발전이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확신하진 못한다는 걸.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제4차 산업혁명은 그만 두자고 맨발로 뛰쳐나가 1인 시위라도 해야 하는 것인지, <호모 로보타쿠스>를 노파심 가득한 겁쟁이로 치부하고 말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이 연극이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있는, 나도 몰랐던 나의 신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모든 것은 동전과 같기에, 단 한 번도 제대로 의심 받은 적 없는 발전과 진보도 한 번 쯤 과감하게 뒤집어봐야 한다는 것도. 그래서 <호모 로보타쿠스>는 필요한 연극이었다. 당연한 무언가에 경종을 울리는 일은 문화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이고 숭고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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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는 좁디좁았다.
객석도 많지 않았고 심지어는 무대와의 구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배우가 직접 앉아서 연기를 하는 소품 의자가 바로 내 옆에 놓여있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덕분에 극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또한 관객과의 거리가 필요 이상으로 가까운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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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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