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주 사적인 편지 : 기록2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5.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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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는 유명하지 않은 아역배우였다. 일곱 살의 Y는 예뻤고, 야무진 아이기도 했다. 나는 Y가 가진 그 유쾌함이 부러웠다. Y는 누구의 앞에서도 작아지지 않았고, 누구의 앞에서도 울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지금으로는 상상도 못할 만큼의 낯을 가리는 소심한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Y였다. 동네의 고만고만한 아이들 틈에서 Y는 어째서인지 나를 친구로 두고 싶어했다.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Y가 조금 무서웠다.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건지, 내가 뭘 해줘야 하는 건지. 그러나 Y는 단 한번도 내게서 무언가를 원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Y는 그저 나와 함께 술래잡기를 하고 인형놀이를 하고 그네를 탔다. 그게 다였다. 때때로 Y가 촬영을 하러 동네를 떠나는 날이면 나는 Y의 집 계단에 앉아 Y의 이름을 바닥에 쓰고는 했다. Y의 동생은 자신의 언니를 기다리는 나를 보며 내 옆에 앉곤 했다. Y의 동생과는 그렇게 친구가 됐다.

 나는 Y뿐만 아니라 Y의 가족들과도 친했다. Y의 가족들은 여행을 가거나 쇼핑을 갈 때면 나를 꼭 데리고 갔다. 지금 사회의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때의 사람들은 나누고 차별하기 보다 함께하기를 더욱 좋아했다. 나는 Y의 가족들과 온천여행에도 가고 목욕탕에도 갔다. Y의 할머니와는 장을 보러 시장에도 다녔다. Y는 친구보다 자매에 더 가까웠다. 내게 Y는 언니였고 Y의 동생은 나의 동생이었다. 외동이던 내게 Y의 존재는 유난히도 특별했다. ‘영원’에 대해 이야기할 순간이 온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때를 꼽았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Y와의 영원함을 꿈꿨다. 그것은 애정을 넘어선 어떤 신성함에 가까웠다. Y는 친구이기도, 구원자이기도, 때로는 ‘나’이기도 했다.

 이별은 언제나 순식간에,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품에 안고 다가왔다. Y는 어느 날 내게 우리가 더 이상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Y와 나는 각각 끝에서 끝 반으로 배정을 받았다. 그 즈음에 Y는 촬영으로 동네를 자주 떠났다. 학교에 등교할 때는 나 혼자일 때가 더 많았다. Y의 반에서 허탕을 치는 날도 많았다. Y가 예고한 이별은 서서히 잊혀지고 있었다.
 
 -나 미국에 가야 해.
 초 여름이었다. 매미들이 오랜 기다림을 끝낸 시기였다. 나는 Y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미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그곳이 얼마나 먼 곳인지 가늠할 수 없는 나이였다.
 -그럼 언제 오는데?
 Y는 손가락을 쫙 펴 보였다.
 -백 밤만 자면 된대.

 백 밤. 밤이 백 번 지나면 돌아오겠다고 말한 Y역시도 이별을 가늠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슬프지 않았다.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Y가 예고한 날은 8월이었다. 우리는 7월 까지도 매일 붙어 다녔다. 아주 가끔씩 Y의 할머니만이 나와 Y를 보며 혀를 찼다. Y의 집에서 놀 때면 점점 비워져 가는 거실이 신기했다. 가득 차있던 가구들이 사라지고 텅 빈 공간은 나와 Y의 놀이터가 되었다. 7월이 훌쩍 넘자 Y는 더 이상 촬영을 가지 않았다. 나는 Y가 동네를 떠나지 않는 게 좋았다.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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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매미가 더 힘차게 울더니, 아이스크림이 더 빨리 녹더니 8월이 왔다. Y가 미리 알려준 그날 아침, 나는 방학임에도 이른 새벽 눈을 떴다. 누가 깨우지 않았는데도 잠에서 깨 집을 나섰다. 기척 없는 Y의 집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매미가 잠에서 깼는지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Y의 집을 벗어나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9시가 되고 Y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Y는 집 앞에서 나를 불렀다. 내 이름을 한참이나 불렀다. 나는 집을 나왔지만 막상 Y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갈 용기가 없었다. 계단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Y는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이윽고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제야 1층으로 내려갔다. 멀리 Y가 탄 차가 떠나는 게 보였다. 뒤늦게 Y의 이름을 불렀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울면서 Y의 집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그곳엔 Y도, Y의 흔적도 없었다. 그저 텅 빈 집만이 있을 뿐이었다.

 Y가 떠나고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Y의 할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함께 미국에 간 Y의 할머니는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나는 Y의 할머니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품에 안고 Y에 대해 물었다. Y는 미국에 가서 매일 운다고 했다. 나를 그리워한다며 한숨 쉬는 Y의 할머니 앞에서 나 역시 울었다. 미국이 얼마나 먼 곳인지 조금 알 수 있었다. Y의 할머니는 그렇게 떠났다. 나는 짐을 들고 돌아서는 Y의 할머니를 보며 Y를 태운 채 떠나던 차를 떠올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9살이 되면서 내게는 새로운 단짝 친구가 생겼다. 우리는 소풍 갈 때 짝을 했고 밥을 먹을 땐 꼭 함께 앉아 먹었다. Y는 그렇게 내 어린 날의 친구로 낡아갔다. 빛 바랜 사진들처럼 그리운 향을 풍기는 추억이 되어 있었다. 상투적인 표현처럼 시간은 눈을 깜빡일 틈도 없이 흘렀다. 나는 순식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Y를 다시 떠올린 것은 열여섯 살의 어느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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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섯 살은 광적으로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던 시기였다. 그날도 영화를 보고 새벽까지 그림을 그린 뒤 잠에 든 평범한 하루였다. 꿈 속에서 나는 어릴 적 Y와 살던 그 동네에 있었다. 꿈은 지나칠 만큼 현실적이었다. 돌아보는 동네는 그 시절, 그러니까 나와 Y가 일곱 살이던(혹은 여덟 살이던)그 시절에서 멈춘 것만 같았다. 나는 한참을 동네를 배회했다. 그러다 앞에 Y가 나타났다. 성장을 끝마친 내 모습과 달리 Y는 헤어지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와 Y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꿈이라 그런지 우리의 대화는 묵음이었다. 그러나 나와 Y는 분명히 수많은 대화를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Y가 뒤를 돌며 인사했다. 나는 멀어지는 Y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꿈에서 깼을 때 나는 이유 모를 서러움이 밀려와 울었다. 잘 울지 않는 시기였는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너무 많이 났다. 그 꿈을 꾼 이후로 나는 Y를 찾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했다. 미국 내에 있는 한인교회에 연락을 하기도 했고, 사설 탐정이라는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Y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Y는 이미 너무 오래 전의 과거였고, 내게는 그 흔한 사진 한 장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자주 놀았으면서 왜 우리는 사진 한 장 찍지 않았을까?
 
 Y를 찾는 일은 잊혀져 간 Y의 기억처럼 뜸해졌다. 나는 다시 Y가 없는 일상으로 복귀했고 Y는 꿈에 나오지 않았다. 시시하지만 이게 전부였다.

 며칠 전부터 준비하던 칼럼이 따로 있었다. 오래 전부터 구상하던 것을 본격적으로 준비해 시작하려고 마음 먹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오늘 Y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은 약 7년만에 그 영화를 다시 보았기 때문이다. 나와 Y랑은 전혀 닮지 않은 두 친구의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다.

 영화를 보다 문득 벌써 어른이 되었을 Y를 떠올렸다. Y가 이제는 운전을 하고 구두를 신을 거라 생각하니 우리가 이별한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조금 깨달았다. 헤어질 때 우리는 운전도, 구두도 신지 못했었는데.
 
 Y가 여전히 나를 기억한다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끔씩 내 이름을 검색해본다면 언젠가 Y가 이 글을 읽게 될까? 공적인 장소에 사적인 편지를 적어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전한다. 미국에 있을지, 한국에 돌아왔을지, 아니면 제 3국에 있을지 모르는 내 친구 Y에게 꼭 한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네가 상상도 못할 만큼 나는 달라졌어.
그러니까 우리가 먼 훗날 만나게 되면 네가 놀라지 않았으면 해.
 나는 잘 지내. 꽤 괜찮은 어른이 되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네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면 좋겠어.
아주 가끔은 서로를 떠올리면서 그렇게.
안녕, 안녕.”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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