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이라는 여행지에서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

글 입력 2017.05.10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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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여행지에서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


나무발전소-빠이표지-평면.jpg
 


일상 속 내겐, 너무도 얄미웠던.


SNS엔 하루에도 수많은 이들의 여행이 올라옵니다. 세상에 다시없을 환상적인 순간들. 모두가 같은 곳을 똑같이 여행하는 듯 보여도 각자가 하는 여행은 모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 수많은 여행들을 제 일상 속에 서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내뱉곤 했죠.

“부럽다….”

일이 있어서, 해야 할 것이 있어서, 갈 여유가 없어서,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무언가 있고 또 무언가 없어서 제 여행은 언제나 뒤로, 또 뒤로 미뤄지곤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커지면서 예전에 멀기만 한 줄 알았던 국내 곳곳이 실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어쩐지 마음의 거리는 그 전보다 멀어진 기분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지만, 그 ‘마음’을 먹기가 참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갈 수 있는 돈은 있지만, 일상에서도 그 돈으로 해야만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갈 수 있는 시간도 있지만, 일상적으로 있는 ‘할 일’들이 발목을 붙잡죠. 가고자하는 마음은 있지만 다녀왔을 때의 그 금전적·시간적 부담을 떠올리면 고개를 내젓게 됩니다. 항상 여행을 꿈꾸면서 선뜻 떠나지는 못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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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집어든 것이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제게 저자인 노동효씨는 조금 얄미웠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고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 있지만
난 당신의 위시 리스트가 최소한이길 바라요
위시 리스트에 담아둔 게 하나도 없다면 가장 좋겠죠

바라지 말고, 저스트 두 잇!
내 아버지의 첫 직장은 부산의 어느 사립 중학교
당신께선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평생을 보내셨지요
난 궁금했어요
왜 사람들은 하나의 직업에 종사하며 일생을 보낼까?
마치 버스노선처럼 뻔한 길을 지나며 살 미래가 싫었어요.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장소는 가장 유명한 마하탓 사원.
근데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그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보통 10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I WAS THERE! 나 거기 있었어
왔다 가다를 증명하기 위한 사진을
찰칵찰칵, 찍는데는 단지 5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일까요?

(중략)

근데 진정 아쉬운 건, 내가 머무르는 시간 동안
후다닥 사진 찍고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자들뿐.
불상을 두 손으로 만지고, 느끼고, 하여
부처의 웃음을 받아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는 것.

다들 하고싶지 않아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뻔한 삶을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며, 온전히 느끼고 싶지 않아서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용기가 없어서 떠나지 못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삶을 견뎌내는 것조차 힘들어 다른 것을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무언가를 위해 ‘뻔한 삶’을 살아왔겠죠. 여행지에 채 10분도 머무를 수 없는 이유는, ‘다음에 다시는 올 수 없을’ 여행이기에 최대한 많은 곳들을 가봐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다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란 거죠. 물론 이런 말을 저자분께 하면,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걸 하라는 것’이라 말할수도 있겠지만. 어쩌겠습니까. ‘할 수 없는’ 것을요. 그런 사고가 좀처럼 잘 되지 않는 걸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마치 당연하게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인 양 말하는 저자는 야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는 아마 제가 그 ‘위시리스트만 많고’ ‘뻔한’ 삶을 살며, ‘다시는 여기로 여행을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하는, 용기 없는 소시민이면서 쪼잔하기까지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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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할 수 없는 그 사람


하지만 그런, 용기없으면서 쪼잔하기까지한 제가. 저자가 얄밉고 야속하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던 것은 얄미움마저도 피식 웃어넘길 수 있게 만든 저자의 유쾌함과, 제가 꿈꾸던 삶을 담고있는 빠이의 모습, 그리고 저자의 사색 덕분이었습니다.

저자는 유쾌했습니다. 물론 이 유쾌함이 때론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제가 그나마 저자에게 얄미움을 덜 느끼고, 그의 글을 끝까지 읽어볼 수 있던 것은 초반 두어 페이지 가량의 말장난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혼여행만 이미 여섯 번을 다녀오고 말았다고.

첫 번째 아내였던 그이와는 네팔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를 따라 보름간을 보냈지요. 그리고 두 번째 아내와 갔던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고 한 달을 함께 보냈습니다.

(중략)

그리고 살다 보니 일곱 번째 신혼여행을 갈 수 밖에 없는 사정이 그만, 또 생기고 말았습니다.

(중략)

아참, 고백을 끝내기 전에 한 가지 밝히자면 첫 번째 아내와 세 번째 아내는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아내와 다섯 번째 아내 역시 같은 사람이었죠. 게다가 첫 번째 아내와 지금 빠이로 함께 온 신부도 같은 사람. 아, 실은 일곱명의 신부는 단 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한길이 천의 길로 뻗고, 천 길이 곧 하나의 길로 모이듯, 한 여자 속에 천의 여자가 들어 있고, 천의 여자가 곧 하나의 여자로 모인다는 것을. 

하여 나는 그이와 천 번의 신혼여행을 떠날 생각입니다.

결혼을 어떻게 7번씩이나 했을까, 혼인 신고나 결혼식은 하지 않은 걸까. 별의 별 생각을 하면서 읽어 내려가다가 몇 번째 몇 번째 아내는 같은 사람이라고 할 때는 책 읽던 것을 잠깐 멈추고 머릿 속으로 맞추어 보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모두는 같은 사람이었죠.

고민 헀던 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지만 그와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예 틀린 말을 하면 화라도 날 텐데, 타당한 말을 하니 사람을 들었다 놓는 저자의 재주에 감탄을 하게 되더라고요. 어쩌면 저는 이 순간부터 이 얄밉고 야속한 저자에게 빠져버린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얄미운 건 얄미운 거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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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빠이에 빠져들게 한


저자가 거는 빠이 사랑의 마법에 쉽게 빠져든 것도 이 때문일지도 모르죠. 사실 인터뷰를 빼면 책 내에서 저자가 순전하게 ‘빠이’를 설명하는 분량은 많지 않습니다. 초반부의 약간뿐이죠. 그럼에도 제가 빠이를 사랑할 수 있던 건 단 2페이지 덕분이었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났습니다. 오전 11시.
토스트기에 구운 식빵 한 조각과 블랙 커피 한잔.

(중략)

오후 3시반이 되자 드디어 배가 꼬르륵꼬르륵 합니다.
빠이시장에서 프라이드 치킨과 야채튀김을 사와 테라스에서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곤 저녁 7시까지 책을 읽었어요. 다시 배가 출출해집니다. 그래서 야시장으로 마실을 나갔습니다. 
태국식 비빔국수 한 그릇 뚝딱. 그리곤 패션 프루트 쉐이크를 한잔하려고 단골 과일음료 가게를 찾아갔지만 가게 주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테이블에 앉아 기다려도 오지 않네요.

(중략)

그치만 나는 빠이의 이런 분위기가 아주 맘에 듭니다.
도둑 걱정하지 않고, 
문 활짝 열어놓은 채 가게 비우고 나갔다가 아무 걱정 없이 들어와도 괜찮은, 그런 곳.

길지 않은 글임에도, 빠이의 분위기와 빠이에서의 생활이 단번에 보이지 않나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여유로운 일상. 그다지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지도 않지만 빠이에서의 생활이 눈에 앞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저는 빠이와 사랑에 빠졌죠. 물론 이 외에도 대나무 찻잔이라던가, 오토바이 노점상, 온천 등 빠이를 사랑할 만한 요소는 차고 넘쳤지만. 저 두 페이지면 제가 빠이와 사랑에 빠지기엔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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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떠난 자그마한 여정


그렇다고 ‘빠이’와 관련된 부분만 열심히 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빠이를 묘사하거나 그 안에서의 생활을 말하는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았거든요. 나머지는 대부분이 여행에 대한, 혹은 여행을 다니면서 했던 저자의 생각이었습니다. 후반부는 그다지 유쾌하지도 않고 빠이에 대해서 말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글은 매력적이었습니다. 여행, 그리고 삶에 대한 저자의 사색이 담겨있었거든요.

지구에서
나의 첫 입국 서류는 출생 신고서였습니다.
물론 아무도 체류기간을 묻지 않았습니다.
내게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가 답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신말입니다.

지구의 신은
ARRIVAL도장만 찍고
우리들이 체류기간 동안 무슨 짓을 하든
전혀 관여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출입국 사무관 같은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체류기간이 끝났을 때
DEPARTURE 도장만 찍어주면
자신의 업무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여기는….

삶과 여행에 대한, 이보다 더 간단하고 정확한 비유가 있을까요? 이쯤되니 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 참 얄밉지만 참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얄밉다, 얄밉다 하면서도 그의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있던 것은 그가 묘사하는 ‘빠이’가 너무도 사랑스럽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 자체도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사실 빠이에 관한 책이 아니라 저자의 여행에 대한 책이고 그 중 빠이는 저자가 사랑해마지않는 여행지일 뿐인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저자의 생각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데도 괜찮았던 것이고요.



인생의 계절 중, 어느 찬란한 순간에 빠이가 있기를.


저자는 일주일보다는 한달이, 한달보다는 한 계절이, 한 계절보단 사계절이 좋다고 말합니다. 여행지에서모든 계절을 다 지내봐야 비로소 그곳의 모습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며 말입니다. 이 논리에 인생 또한 '여행'이라는 저자의 말을 적용시켜보자면. 우리네 인생도 모두 살아봐야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모든 절기를 살아내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DEPARTURE도장이 찍히는 것이겠죠.

사실 아직 앞으로의 제 인생이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 무언가를 하겠다고 결심해도, 그것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하나 바라보자면.

저는 바라건데, 제 인생의 절기 안엔 단 한장면이라도 빠이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나무 찻잔을 달랑달랑 들고다니며 차를 마시는, 오토바이 상점에서 물건을 구경하는, 스쿠터로 빠이의 곳곳을 다니는. 찬란한 일상을 즐기고 있는 제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찬란한 계절이 제 '인생'이란 여행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저는 오늘도 위시리스트에 한줄을 더 채워넣습니다. 언젠가는 꼭 비워나갈 위시리스트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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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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