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골의「외투」를 읽고 [문학]

글 입력 2017.05.0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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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있어서 니콜라이 고골은 정말 특별한 작가이다. 처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접하게 되었고, 독특한 형식과 환상적인 요소들에 감명 받아 그 후 여러 사람들과 고골의 작품(그래봤자 코랑 외투, 광인일기 정도 밖에 지만…)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저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서였다. 단편을 읽었기 때문에 얘기를 나누는 데는 책을 빌려주고 이틀 이내면 되었다. 읽고 나서 대부분은 ‘재밌게 읽었는데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골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책을 읽어보면 이는 확실히 증명된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기 때문이다. 진짜 술술 넘어간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읽어도 문제될 게 없다. 그래도 모든 작품이 그렇듯이 의미가 있고 감동이 있으니, 읽으면서 짐작한 몇몇 의미들과 느낀 점,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이상적인 인간상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자기 스스로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하고, 그에 맞춰서 자신의 인간성을 갈고 닦는다. 그 끝에 있는 최종적인, 완벽한 인간상이란 무엇일까? 여러 작품들을 보면 시대와 사회 분위기에 따라 그 인간상이 다르게 드러난다. 「외투」에서는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슈막츠킨이 관료제의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만큼 자기 직무에 충실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기 직무에 충실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사실 부족하다. 그는 자기가 맡은 업무에 진정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는 공문서를 정서하는 하찮은 일에서도 나름대로 다양하고 즐거운 세계를 발견하고 언제나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글자 가운데 몇몇 글자를 특히 좋아해 서류에서 그 글자가 나오기만 하면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만약 관청이 그의 열성에 맞추어서 포상을 했다면, 아마 그는 틀림없이 지금쯤 5급 관리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스스로는 깜짝 놀라 이해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애착을 가지며 그 일에 종사하는 아카키는 이상적인 공무원이지만, 주위에서 보이는 그에 대한 태도는 어쩐지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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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일하는 관청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를 존중해주지 않았다. 수위들조차 그가 앞을 지나가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마치 파리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는 듯한 태도로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더구나 상관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에게 위압적이고 전제적인 태도를 보였다. …젊은 관리들은 이른바 공무원식 위트를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그를 풍자하고 골려 먹기에 바빴다. 그들은 전혀 근거 없는 얘기를 만들어 그의 앞에서 떠들어 대곤 했다. …심지어 종잇조각을 잘게 찢어서 눈이 내린다며 그의 머리 위에 뿌리기도 했다.



 그렇다. 자기 일에 충실하고, 누구 하나 괴롭히거나 한 적 없는 사람이 받는 취급은 작고 너무나도 일상적이라서 더 비참하기만 하다. 하지만 아카키는 그에 대꾸도 하지 않고, 일에 지장이 있지 않은 한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위기가 닥쳐오는 데, 그것은 러시아의 강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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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키 아카키에비치 역시 그러한 거리를 될 수 있으면 빨리 뛰어서 지나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등과 어깨가 뼈에 사무칠 정도로 추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외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외투의 등과 어깨 두서너 군데가 마치 모기장처럼 얇아진 것을 발견했다. 천이 닳을 대로 닳아 속이 훤히 비칠 지경이었고, 안감도 갈기갈기 해진 상태였다.



 연봉도 얼마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9급관리 아카키에게는 곤란한 상황이다. 그 동안 외투가 해지면 외투의 깃에서 천을 잘라서 메우는 등을 반복해 외투가 보릿자루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아카키는 어떻게든 수선하려고 재봉사 페트로비치를 찾아가지만, 단호하게 퇴짜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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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안 됩니다!” 페트로비치는 딱 잘라 말했다. “바닥 천이 워낙 낡아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요. 차라리 이걸 잘라서 각반이라도 만드시는 편이 훨씬 나으실 겁니다. …그 대신 외투는 아무래도 새로 하나 장만하셔야 할 겁니다요.”

‘새 외투’라는 말을 듣자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뒤엉켜 범벅이 되는 느낌이었다.



 저금통에 꾸준히 모아왔던 돈으로도 역부족이자 아카키는 생활비를 줄이기로 마음먹는다. 밤에 촛불을 켜지 않고, 세탁물을 보내지도 않고, 구두를 신고 걸을 때도 살금살금 걸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이 일련의 행동들이 오히려 아카키를 기쁘게 했다. 새 외투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렇게 반년동안이나 이 일을 계속하고, 상여금을 받은 결과 새 외투를 맞출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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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월 며칠이었는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페트로비치가 새로 만든 외투를 갖고 온 날은 분명히 아카키 아카키에비치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모두 아카키 아카키에비치의 새 외투를 구경하려고 수위실로 달려왔다. 모두 앞 다투어 축하와 칭찬하는 말을 퍼부었다. 처음에는 아카키 아카키에비치도 흐뭇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으나 나중에는 왠지 낯이 뜨거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아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험상궂은 사내들에게 외투를 뺏기게 된다. 아카키는 재빨리 경찰초소에 갔지만, 별 소용이 없어 친구의 조언을 따라 장관에게 부탁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통제하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아카키를 이유 없이 겁줬고, 아카키는 완전히 절망해서 열병에 걸렸다. 그리고…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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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키 아카키에비치가 없어져도 페테르부르크는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였다. 마치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리하여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누구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했던, 흔해 빠진 파리조차도 핀으로 꽂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박물학자의 주의조차 끌지 못한 존재, 관청에서 온갖 비웃음을 순순히 참아내면서 이렇다 할 업적 하나 이루지 못한 채 무덤으로 간 그 존재는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원한이 컸던 모양인지, 아카키는 유령으로 돌아와 사람들의 외투를 뺏는다. 경찰도 수사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호통을 쳤던 그 장관의 외투를 뺏고 나서 아카키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카키는 성실한 공무원이었다. 일에 애착을 가지고 삶의 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며, 세상에 얼마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바람을 맞은 후 목표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으로 바뀌었고, 외투를 얻은 후에는 항상 일을 하던 시간에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등 행동이 변한다. 자본주의는 죽어서도 유령이 되어 그들을 따라다녔고, 그들의 외투를 뺏었다.

고골의 작품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사실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도 그것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사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과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의미로 고골의 작품들을 사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삽화는 http://mi-galka.livejournal.com/20697.html 에서 가져왔습니다.


[고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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