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숨어있는 프로크루스테스 찾기: 『정상인간』 [문학]

글 입력 2017.05.05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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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인간, 김영선 저 >


정상성은 특정한 역사 시기에 특수한 목적을 위해 특수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사회적인 발명품이다. (53)


이 책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상성이라는 것을 사회를 지배하는 질서와 규칙들, 그리고 시대 상황에 따라 매우 유동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그 말이 맞다. 최근 대선 토론에서 한 대통령 후보는 “동성애에 반대한다.” 는 발언을 해 논란이 있었다. 사실 이 책에서는 ‘여가’를 중심으로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고찰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단지 여가라는 영역에 머무르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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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대선후보자 토론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동성애' 관련 발언 >


 바로 떠오르는 것이 동성애였던 이유는, 사회 자체가 이성애 중심으로 다시금 구성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일각의 주장처럼 태초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동성연애는 현대 사회에서 그렇듯 터부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그 유명한 스파르타의 군대에서도 군인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동성애를 장려하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다, 일제강점기 하의 근대 대한제국 시기에만 해도 남녀간의 연애보다는 여자끼리 하는 연애를 더욱 장려하기도 했으며, 그런 문화가 스스럼없이 신문과 같은 매체에 등장하기도 했다. 동성애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점차적으로 비정상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인권이라는 개념이 발견되고 사회적으로 약자에 대한 존중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었기에 요즘은 오히려 차별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문화가 아주 조금씩이나마 확산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사실 그렇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하려는 것도 결국은 그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막기 위한 창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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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시초가 되었던 '스톤월 항쟁' >


 미국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 정부의 비열한 단속에 대해서 폭발한 LGBT 커뮤니티가 거리로 나서서 시위를 거듭한 ‘스톤월 항쟁’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사회에서 약자가 가만히 있었는데 알아서 그들의 배려해주고 존중해준 적이 있지는 할지 의심스럽다.

사회문제를 치료하기 위한 시나리오에서 출발한 합리적 오락 운동은
노동자 민중을 합리적인 가치로 교육하는 새로운 도구이자 혁신적인 처방으로 부상했다. (118)


 역사적으로도, 꼭 동성애가 아니더라도, 흑인들이나 노동자들 등등 사회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들고 일어나서 사회에 격돌을 가져오기 전까지 그런 을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뒤, 점차적으로 그들 역시 사회의 정상으로 편입되곤 했다.

 즉,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상성은 발명된다. 그리고 사회는 그 시대별로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기준을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인간들을 비정상이라고 처단하려고 한다.


여가의 기능과 유용성을 도덕적인 것으로 연결 짓는 접근도 문제로 지적되어야 한다. 
도덕적 접근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 규범적 태도를 전제하고 있어 
사회적 기능에 조응하는 여가 항목을 우월한 것으로 가치 부여 한다.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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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크루스테스 >


 책을 읽으며,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크루스테스가 생각났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엄청난 힘을 가진 기인으로, 자신의 집 앞을 지나는 사람을 잡아다가 키가 크면 다리를 잘라버리고, 키가 작으면 몸을 잡아당겨 늘여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기준에 맞추려고 하는 횡포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가’의 영역에서는 사실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프로크루스테스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가를 즐긴다는 것은,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라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도덕적인 여가와 그렇지 않은 여가를 구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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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트위터리안이 한국의 취미생활 문화의 부정적인 면을 꼬집었다 >


 위의 트위터에 굉장히 많은 공감을 하게 되는데,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여가나 취미 생활에 있어서 근검절약하고 돈을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는 것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자신이 버는 돈에 비해서 사치스러운 소비 생활을 할 경우 ‘속물’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그렇게 ‘노는 데에’ 돈을 많이 쓰는 것을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될 짓인 양 만들어버린다.


여성의 여가 또한 특정화 됐다. 
여성의 여가는 재생산 기능에 복무하는 한에서만 허용되었다. 
여성의 여가 가운데 가족의 재생산,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특수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범주 밖으로’ 쫓겨났다는 이야기다.(141)


 앞서 언급한 도덕적인 잣대는 여성의 여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노동력이 대량으로 필요한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적 재생산을 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의 여가는 신체적인 문제나 위험이 없는 쪽으로 특정되었다. 단적인 예시로, 많은 경우 여자들은 여행이라는 여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해외 여행이나, 장기 여행 등에 대해서 부모님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만류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 위험하다는 것이 참 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비슷한 지역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 남자이면 위험하다는 말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이기 때문에 신체적인 위험에 대해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초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온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도, ‘그러게 여자애가 위험하게 왜 그 시간까지 거기서 놀고 있었냐’ 라는 말이 간간히 들려오기도 했다. 여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사실 남성의 경우에도 사회적으로 호출되는 또 다른 방식들이 있을 것이다. 암묵적인 젠더 역할과, 그에 맞는 행동 방식이 심지어 그런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여가 시간에까지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어떤 시대를 살더라도 우리는 숨어 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손아귀를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적어도 그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프로크루스테스는 시시각각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간다. 우리는 그런 그를 찾아 내고, 주시할 필요가 있다.

 가장 단순한 이유는 그가 정상성을 위한 ’치료’를 단행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이는 사회의 규범과 ‘지배 질서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 확장하는 작업 이자 새로운 주체를 구성해 나가는 작업이기도(302)’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어느새 우리 자신이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범주에 갇혀 그 바깥의 회색 지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나 간단하고 폭력적인 규정을 내려버리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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