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 기록, 그리고 영화 [문화전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는 방법들
글 입력 2017.05.0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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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 
어떻게 순간이 영원으로 남을 수 있을까
How can a story never die 
어떻게 이야기가 영원할 수 있을까
It is love we must hold onto 
답은 사랑,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
Never easy but we try 
쉽지 않지만 우리는 시도하지
Sometimes our happiness is captured 
때때로 우리의 행복은 손에 잡히고
Somehow a time and place stand still  
시간과 공간은 그대로 멈추어버리지
Love lives on inside our hearts and always will 
사랑은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가고 늘 그럴거야

-영화 <미녀와 야수> ost 'How does a moment last forever'-



  어떤 순간들은 지나가지 않고 영원하길 바라게 된다. '순간'이라는 단어에서 '순'은 눈깜빡일 순(瞬)이다. 즉 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중 현재에 속한 개념으로 눈을 한 번 깜빡하는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나 순간은 너무 짧고 금새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순간은 미지의 영역인 미래로부터 순식간에 날아와 현재의 공기를 스치고 이미 쌓여있는 과거더미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미녀와 야수> ost의 가사처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늘 이 스쳐지나가는 순간을 손으로 잡아 간직하고 싶어했다. 소중한 순간, 행복한 순간이라면 더욱 더 그랬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순간은 과거의 일부가 되는 시점부터 빠르게 색이 바래기 시작한다. 지금도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무수한 순간들을 모두 생생하게 간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순간을 붙잡는 가장 오래된 두 가지 방법으로 바로 '기억'과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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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은 사람의 뇌가 갖고 있는 놀라운 능력들 중 하나로 어쩌면 인간이 순간을 붙잡기 위해 가장 먼저 터득한 방법일 것이다. 잊고 싶지 않은 특정한 감정이나 장면을 머릿속으로 계속 떠올리다보면 관련된 기억이 생성된다. 기억은 크게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뉘는데 장기기억의 경우 용량의 제한이 없고 길게는 평생토록 지속된다. 어떤 순간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면 우리는 몇 번이고 그 순간을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같은 일을 경험하고도 나중에 이야기해보면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기억을 형성한다. 즉 기억은 실제 있었던 순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사람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주관적인 감정과 생각이 상당히 많이 개입된다. 따라서 기억이 기억의 바탕이 되는 순간 그 자체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 기억이 순간을 간직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면서도 신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게다가 기억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죽는다면 기억으로 보존되던 순간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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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순간을 간직하기에 기억은 여러가지 한계가 있다. 불완전하고 객관성도 떨어지는 기억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기록이다. 기록은 어떤 순간들을 문자를 이용해 일종의 '기호화'를 한 것이다. 즉 '나는 밥을 먹었다'라는 기록이 있을 때 글자 자체에서 따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밥과 그걸 먹는 나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밥'이라는 기호가 밥을 의미하도록 사람들간에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나는 밥을 먹었다'라는 기록을 보면 밥이 있었고 그걸 먹었던 순간이 있었음을 우리는 인식할 수 있다. 기록은 이처럼 사회적으로 합의된 '문자'라는 도구를 이용해 순간을 보관하는 것으로, 기억과 비해 객관적이다. 사람들이 기억과 기록의 차이가 있을 때 기억보다 기록을 더 신뢰하는 이유이다. 특히 역사와 같은 특수한 기록은 전담하는 '사관'이라는 직업이 따로 있어 철저한 사회적 감시 속에 이루어졌다. 또한 기록한 사람이 죽어도 기록은 남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기억과는 달리 기억은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그 순간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록은 어떤 일이 일어났던 순간을 한 번 기호화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사실과는 다를 수 있다. 아까의 예시와 마찬가지로 '나는 밥을 먹는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이 기호를 보고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상상한다. 그 이미지는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떤 밥을 어떤 상태로 먹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을 문자를 이용해 기호화하고 기호화된 것을 다시 이미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이다. 그런 면에서는 기록 역시 기억과 비슷한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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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에디슨과 딕슨이 발명한 영사기 '키네토스코프'


  오랫동안 인간은 머리로는 기억하고 손으로는 기록하면서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아두려 했다. 그러던 중 19세기 말에 에디슨이 발명한 영사기와 촬영기는 엄청난 혁명이었다. 영상기술의 시대가 온 것이다. 소리와 움직이는 이미지를 저장해두고 원하면 언제든 재생하여 반복해 볼 수 있다니!  이 방법은 기록과 같은 기호화가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이 경우 어떤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서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미리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기술은 이전까지 존재했던 어떤 방법보다도 순간을 원본에 가깝게 보관하고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재미있는 건 기술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순간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영상을 '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영화의 탄생이었다.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기술과 만나 영화라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는 원래 있던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어떤 특정한 순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어 영원으로 만들 수 있는 예술이다.



최초의 상업 영화 <기차의 도착> 뤼미에르 형제 作

  
 1895년 최초의 상업영화 <기차의 도착>의 러닝타임은 3분이었다. 33명의 관객들은 관람료 1프랑을 내고 이 3분짜리 영화를 봤다. <기차의 도착>이 상영된 지는120여년이 흘렀다. 그 동안 영화는 급속하게 발전했다. 무성영화는 유성영화로 다시 유성영화는 컬러영화로 이어졌으며 영화는 거대한 종합예술인 동시에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순간을 붙잡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오늘날 영화는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해온 다른 여러 예술의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영화산업은 지금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으며 전세계 사람들이 이 독특하고 다채로운 예술을 향유한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방법들 중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게 어쩌면 영화가 아닐까 싶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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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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