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찬란한 순간, 우리는 하나였다. 영화 '써니' [시각예술]

*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 입력 2017.05.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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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했던 당시 나는 <써니>라는 작품을 매니아 수준으로 좋아했었다. 영화를 극장에서도 보고, 감독판도 찾아서 보고, 열일곱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도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Bonny M의 ‘Sunny’와 Tuck & patti의 ‘Time after time’였다. 함께 있으면 그저 마음 편하고 좋았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 아니면 가족보다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익숙해서였는지 그 때의 나는 지금보다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들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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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벌교 전학생 나미는 긴장하면 터져 나오는 사투리 탓에 첫날부터 날라리들의 놀림감이 된다. 이때 범상치 않는 포스의 친구들이 어리버리한 그녀를 도와주는데… 그들은 진덕여고 의리짱 춘화, 쌍꺼풀에 목숨 건 못난이 장미, 욕배틀 대표주자 진희, 괴력의 다구발 문학소녀 금옥,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사차원 복희 그리고 도도한 얼음공주 수지. 나미는 이들의 새 멤버가 되어 경쟁그룹 ‘소녀시대’와의 맞짱대결에서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사투리 욕 신공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하는 대활약을 펼친다. 일곱 명의 단짝 친구들은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는 맹세로 칠공주 ‘써니’를 결성하고 학교축제 때 선보일 공연을 야심차게 준비하지만 축제 당일, 뜻밖의 사고가 일어나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로부터 25년 후, 잘 나가는 남편과 예쁜 딸을 둔 나미의 삶은 무언가 2프로 부족하다. 어느 날 ‘써니짱’ 춘화와 마주친 나미는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써니’ 멤버들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는데… 가족에게만 매어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추억 속 친구들을 찾아나선 나미는 그 시절 눈부신 우정을 떠올리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자신과 만나게 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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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비현실의 사이

 
영화는 10대와 현실을 살고 있는 현재의 인물의 교차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모든 10대가 그렇듯 영화 속에서도 캐릭터들은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결국에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어딘가 늘 부족한 나미, 작가가 되길 원했지만 결혼과 육아라는 굴레에 시도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금옥, 미스코리아를 꿈꿀 만큼 예쁜 소녀였지만 나쁜 길로 빠져버린 복희, 그리고 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춘화까지.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미래의 나는 어떻게든 잘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오늘을 살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며 20년 후의 나는 정말 뭘 하고 살고 있을까, 덜컥 겁부터 났더랬다. 지극히 현실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춘화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행복하게 마무리된다는 결말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었다. 출판사를 차려주고, 보험을 전부 사주고, 미용실을 차려줄 만큼의 재력이 춘화에게 어떻게 생겼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지만, 개인의 팍팍한 삶의 원천이 전부 돈으로 귀결된다는 점이 씁쓸했다. 모두가 행복하고 잘 살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군부정권 아래 국민들의 노력과 투쟁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줬다는 것도 의아했던 부분이었다. 극을 유쾌하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최루탄을 쏘고, 실제로 수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던 역사적인 사건을 영화에 가볍게 넣어야만 했던 것일까. 정말로 어떤 아픔이든 시간이 지나면 다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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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여러 가지 부분이 눈에 밟힘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내게 <써니>라는 영화가 지극히 한국적이고, 특히 여성이라면 더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복고적인 측면이 분명 있지만 ‘우리의 삶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 <바람>이 남성들에게 많이 회자된다면, <써니>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유대를 넘어 하나의 시기가 되는 여성들에게 의미를 심어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준 것이다.
 
그리고 6년이 지나 최근 다시 만나게 된 <써니>는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점들을 시사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영화를 보고 당연하게도 ‘나와 친구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에 바빴다. 하지만 지금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눈에 밟혔던 것은 그 때의 내가 아니라, Sunny를 들으며 ‘예전에 이 노래 많이 들었었는데.’ 하고 슬쩍 미소를 보이던 엄마였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현재 견뎌야 할 무게를 버티기 힘들 때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하기도, 슬퍼하기도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안타깝지만, 사실 돌이켜봤을 때 아련하게 만드는 기억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앞으로 수많은 날들을 살아가면서 뒤를 몇 번이고 돌아볼 것이고, 그럴 때마다 ‘써니’를 닮은 환한 시절을 그리며 웃음 짓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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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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