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실격, 인간의 가면에 대하여. [문학]

글 입력 2017.05.0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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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에 대하여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 쓴 ‘가면’이라는 시가 있다. 아빠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아마 아빠가 나와 동생을 위해서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계신다는 걸 처음 깨닫고 쓴 것 같다. 유독 부모님께만 무뚝뚝했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항상 즐거우실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로 감정표현을 잘 하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점점 자라면서, 그 가면이 조금씩 낡고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지 말이다. 커서 본 그 가면은, 헤져서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의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그 속에 차마 내게는 말할 수 없으셨던 이야기들과, 보여주고 싶지 않으셨던 표정들이 조금씩 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본 가면이라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더 흐르고, 더 많은 사람들, 더 많은 어른들을 만나면서 세상에는 ‘그런’ 가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걸 느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가식과 위선으로 자신을 덮어버렸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러한 사실들을 받아들였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도 훌륭한 적응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가면'을 쓰는 자


그러나 여기, 적응하지 못한 자, 요조가 있다. 그는 인간을 두려워했다. 그에게 인간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존재였으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실용적인 사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가는 태도, 그리고 그 모든 계산적인 과정으로 그는 인간을 더욱 경멸했다. 인간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 살아가는 삶의 방식 모든 것을 요조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세상에서 요조는, 그 자신 역시도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게 익살꾼으로 위장해서, 자신의 생각들을 모두 숨기고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유일하게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비극적 익살꾼의 이야기들


비극적인 익살꾼으로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서 몇 가지 주목해서 보았던 부분이 있다. 처음 주목해 보았던 점은, 그가 인간을 두려워하게 된 계기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요조가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서술한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그에게 특별한 환경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경험은, 인간의 삶 전체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의 어린 시절은 여느 다른 가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배고프냐고 물으며 먹을 것을 주는 어른들, 함께 조용히 식사를 하는 가족, 사소한 꾸중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그다지 큰 가식이나 아부, 혹은 위선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체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예민하면 이러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감정이 요동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이미 인간의 삶에 너무 적응해 버려서, 그것이 단지 ‘여느 가족의 모습’처럼 느껴지고, 이 상황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그의 생각은 인정하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는 없는 부분인 것이다.

두 번째로 책을 읽으면서 주목하여 보았던 부분은 요조가 세상에 대해 가지는 태도의 변화들이다. 물론 그 변화가 매우 미약하긴 했지만, 절대 변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 요조의 생각에 조금의 동요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요조가 호리키와 대화하는 중 호리키는 “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라는 말은 요조에게 크게 다가왔던 부분이다. 호리키가 말하는 세상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 아닐까. 그렇다면, 그 세상은 실체 없는 하나의 ‘세상’, 내가 두려워하는 그 세상이 아니라 하나의 개개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에도 요조는 세상을 이러한 개개인의 투쟁으로 생각하며, 그에 말을 빌리자면 ‘필요에 따라 얼마간은 뻔뻔하게’ 행동할 줄 알게 된다. ‘필요에 따라, 뻔뻔하게.’ 보통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이 대목을 통해, 요조 또한 여느 사람들처럼 세상에 적응해 버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나의 성급한 추측이었을 뿐, 요조는 그 이후에도 절대 인간들의 세상에 편입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의미와 비슷하게, 나름의 세상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였지만 결코 그것이 삶에서 받아들여지진 않았던 것이다.



인간 실격, 그러나 나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주목한 이 부분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의문점은, ‘요조가 과연 인간의 삶을 두려워하고, 배척하려고만 했던 것이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이라는 것에 편입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애초에 자신을 인간으로부터 유리된 존재로 생각하지만, 정작 그 세상 안에 들어가고자 한다는 점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호리키가 요조에게, ‘아직 나는 너처럼 오랏줄에 묶이는 치욕 같은 건 겪은 적이 없어’라고 말했을 때 요조는, 그가 자신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에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곧, 자신은 인간 자격이 없는 아이었다고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자신과 ‘인간’들의 모습을 철저히 구분하던 그였지만, 자신의 친구에게는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 것일까? 그 뒤에도 정신병원에 수용된 그는 ‘인간 실격’이라는 표현을 쓰며, 자신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그의 관점에서 그는, 삶의 전 과정에 있어서 한 번도 인간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살아가기 위해 억지로 익살꾼 노릇을 하며 두 개의 모습을 형성했던 그이기에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를 나름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관계를 맺었던 인물 중 다케이치와 요시코에게 주목하였다. 이 인물들을 거론한 이유는, 그들이 모두 요조와 같이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갔기 때문이었다. 우선 다케이치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공부를 전혀 못하고 교련이나 체육 시간에는 언제나 견학을 하는’ 학생,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 원초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백치 비슷한 학생으로 통하지만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요시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순수성을 그대로 간직한 요시코는 자신의 순수함을 전혀 감추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 마음을 표현하고, 인간을 신뢰하는 그녀는 결국 그러한 원초적 감정 때문에 인간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두 인물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일관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조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인간의 원초적인 생각들, 세상에 적응하기 전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그 생각들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항상 웃는 익살꾼의 가면으로 말이다. 결국 그는, 가면을 쓴 사람들에게 더 완벽한 가면으로 대응했지만 그 아래 감춰진 그의 진짜 모습은 조금씩 곪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이토록 노력했지만 인간으로써 받아들여주지 않는 세상. 동시에 인간의 삶에 절대로 적응할 수 없는 자신의 진짜 모습이 혼재되어, 인간을 두려워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냥 보통의 인간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나,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본다.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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