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너는 누구냐고 묻는 말에 [문학]

글 입력 2017.04.1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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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커다란 초록색 우체통에 작은 편지 한 통이 달랑 들어 있었다. 소피에게 온 편지였다.
작은 편지봉투에는 ‘클뢰베르베이엔3, 소피 아문센’이라고만 적혀있을 뿐 보낸 사람의 이름도 없었다. 우표도 붙어있지 않았다.
소피는 문을 닫고 편지봉투를 뜯어보았다. 그 안엔 봉투보다 크지 않은, 아주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고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는 누구니?

인사말도 보낸 사람 이름도 없이 손수 적은 이 네 글자만 커다란 물음표를 달고 있었다.



14살 소녀 소피 아문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가 끝난 후 집에 도착해 우체통을 열고, 이 쪽지를 통해 새로운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이제부터 소피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면? 예를 들어 안네 크누트센이라든가, 그럼 소피도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소피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그 비밀스러운 편지를 들고 욕실로 갔다. 그리고는 거울 앞에 서서 두 눈을 응시했다.

“너는 누구니?”
소피가 물었다.
역시 대답은 없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소피는 이 질문을 던진 게 소피인지 거울 속의 소녀인지 혼란스러웠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자기의 외모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 역시 불합리적인 게 아닐까? 소피의 외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친구는 선택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은 선택할 수 없다. 심지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인간은 무엇일까?



가장 가깝고, 가장 미스터리한 ‘나’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철학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소피, 그 이야기를 다룬 소피의 세계를 읽고 철학 동아리 회원들끼리 철학발표를 위해 이 쪽지를 돌렸을 때의 반응은 소피 아문센과는 사뭇 달랐다.

사물함을 열고, ‘너는 누구니?’라는 쪽지를 본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그것을 무시했고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우리가 발표할 때 민망해질 정도였다. 쪽지를 받았냐,라고 물었을 때 그때서야 사람들은 ‘아’라고 했다.

철학은 작은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질문을 던지고, 받고, 생각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진행할 힘이 없어진 지금, 지금의 사회야 말로 철학자의 가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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