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공연예술]

뮤지컬, 스모크
글 입력 2017.04.2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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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스모크는 이상의 시 오감도 제15호를 모티프로 한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의 창작 뮤지컬로 필자는 박은석(초), 고은성(해), 유주혜(홍) 캐스팅의 공연을 관람했다.

 작가 이상을 처음 만난 건 수험생 때였는데, 기출문제집을 풀면서 이상의「날개」라는 소설을 분석했던 기억이 있다. 공교롭게도 필자의 첫 수능 시험 문제지에도 이상의 작품이 실려 있었다. 풀밭에 누운 채로 소의 반추를 보고 느낀 한없는 권태로움을 가득 담은「권태」를 긴장한 마음으로 읽어야했던 그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문제를 맞혀야 하는 상황 속에서 필자에게 이상은 그저 원망의 대상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보게 된 뮤지컬로 인해 김해경이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이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 난해한 말들로 쓰인 그의 고민들이,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고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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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역의 박은석 (출처: 연예투데이뉴스)


 뮤지컬은 감옥을 배경으로 폐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초의 모습이 비춰지면서 시작된다. 곧 해가 등장하여 자신이 쓴 시들을 불태우려는 초를 설득시킨다. 해는 바다에 가면 초가 글을 다시 쓸 수 있고 자신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초는 미츠코시 백화점의 딸 홍을 납치해서 몸값을 받아내는 것이 바다로 가는 유일한 티켓이라고 말했고 해는 두려웠지만 홍을 납치하는 계획에 동조한다. 초가 전보를 치러 간 사이 해와 홍 둘만 남게 된 상황 속에서 마음이 약해진 해는 홍을 풀어주고 대화를 나눈다. 같은 음악과 같은 시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해는 홍에게 애틋한 감정마저 느낀다. 해가 홍에게 점점 마음을 열어갈 즈음 초가 돌아온다. 초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초는 해에게 홍은 절망, 고통 그 자체이며 해를 죽이려고까지 했다고 말한다. 초는 여전히 거울 속에 갇혀 괴로워하고 홍에게 더 이상 해를 괴롭히지 말라고 소리친다. 해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혼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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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역의 고은성 (출처: 부산일보)


 트라이아웃 때는 초, 해, 홍이 같은 존재였지만, 수정을 거친 후의 작품에서는 초와 해는 같은 존재이고 홍은 인생과 삶을 내포하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한다. 초는 자신의 글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답답해하고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인물이다. 그는 바다에 대해서 한없이 넓고 깊으며 끝없이 추락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반면 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있고, 바다를 한 번도 경험해 본적 없는 인물로 아이같은 모습으로 바다를 갈망한다. 홍은 ‘빨간 시작 푸른 끝’이 반복되는 바다를 고귀하게 여기고 바다로 가고 싶어 하는 해에게 희망을 주는 인물이다. 세 명의 인물을 모두 한 사람의 자아로 설정했을 때의 작품도 보고 싶었다. 작품이 ‘희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상이라는 인물의 ‘고뇌’에 더 집중했다면 조금 난해하더라도 심도 있는 작품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봤기 때문이다. 미스터리의 긴장감도 가지고 싶고, 이상의 이야기도 끌어오고 싶고, 희망이라는 메시지도 던져주고 싶은 욕심이 오히려 전개에 있어서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들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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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역의 유주혜 (출처: BSTODAY)


 오감도 제15호에서는 거울 속에 있는 나에게 자살을 권유하고 거울 속의 나를 겨누고 총을 쏘아도 보지만 결국 거울 속의 나와의 동반자살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한탄한다. 그러나 스모크는 관객에게 좀 더 희망찬 결말을 안겨주고 싶었던 듯싶다. 권총은 천장을 향해 발사되었고,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거울이 깨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라는 대사를 인용해서 관객에게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나라는 메시지를 준다.

 실제로 이 뮤지컬의 연출인 추정화씨는 인터뷰에서 ‘이상의 어떤 매력이 작품을 집필하게 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날개」의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하는 구절이 인상 깊었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좌절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좌절 속에 있다 보니 그 구절이 더 좋았다고 말하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상의 시로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연출자의 의도대로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이라는 메시지는 잘 전달 된 것 같다.

 짧았지만 난해하기 그지없었던 이상의 스물여덟 해를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모두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했겠지만 ‘아,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구나. 꿈꾸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희망과 절망 속에서 헤맸던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이었구나. 그의 고민이 완전히 동떨어진 맥락의 것은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했고, 이상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하기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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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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