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라우마의 세대 : 위로가 필요한 계절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4.24 22: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봄을 떠올리면 기억은 자연스레 고등학교 시절로 회귀한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느라 살이 찌고, 적당한 운동을 하지 못해 피부가 안 좋아지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을까 싶다. 그만큼 내게 고등학교의 모습은 아름다운 풍경과 같았다. 다투기도 했지만 주변엔 친구들이 있었고 선생님은 우리를 혼냈지만 언제나 웃어주셨다. 학교는 언제나 시끄러웠고, 운동장은 소란스러웠다.  아득하게 멀어지는 추억 속에도 떠오르는 그 소리와 풍경들이 내게는 가장 큰 추억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수학여행은 지겨운 생활 속의 재미있는 일탈과 같았다. 집과 학교를 떠나던 설렘과 고단하지만 즐거웠던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 여정. 짧지만 충분했던 여행은 우리가 3학년으로 올라가서도 버틸 수 있는 양분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떠남으로써 남아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배웠고 소중함을 통해 살아가는 재미를 알았다. 적어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울 수 있을 때까지는 말이다.



4월 16일, 수학여행


photo_1.JPG
  

 아이들이 떠났다. 아이들은 팝콘처럼 웃음을 틔웠고 기대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아침이면 도착해있을 제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아이들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멈추어야 했다. 도착했어야 할 제주가 아닌 바다 한 가운데에서 아이들은 길을 잃었다. 배가 기울었지만 아이들은 웃었다. 괜찮을 거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공포가 가득했지만 서로의 손을 잡는 것으로 이겨내려 했다. 바다는 그렇게 천천히 아이들을 삼켰다.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보았을 때, 부모는 가슴을 쓸어 내렸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구조를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우리의 삶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뉴스의 윗부분에 실종자라는 글자가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모두 안전하게 구조됐다던 아이들이 아직 배 안에 있다니? 우리는 기도했고 전세계의 사람들이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노란 리본을 달았다. 아이들이 기적처럼 돌아오기를 빌었다. 뉴스는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영원히 수학여행을 떠나야 했다. 4월, 바다는 추웠고 아이들이 떠난 빈 자리는 더욱 시렸다. 아이들의 웃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4월의 봄이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팽목항, 바닷바람이 거친 가운데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는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호명되는 아이들 속에 혹시나 자신의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담요를 둘러 쓴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이를 묻기도 했다. ‘혹시 우리아이를 보았느냐’고.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먼저 와 있을 거라 생각했던 친구는 여전히 배에 있었다. 아이들은 안전하게 돌아온 자신을 원망해야 했다. 살아서 돌아온 죄책감이 아이들을 짓눌렀다. 부모는 기다려야 했다. 내 아이가 돌아와 주기를. 추웠을 몸을 안아줄 테니 부디 돌아만 오기를. 아이를 위해 준비해온 담요와 간식을 품에 안았다. 채 봄이 완성되지 못한 4월은 추웠지만, 부모에게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추위를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신보다 추울 아이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서 와야지. 노란 유채꽃 보러 가야지.” 뱉지 못한 소리가 파편처럼 바람에 휘날렸다. 바람이 자신의 말을 건네준다면, 배 안에서 떨고 있을 아이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전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의 짐이 도착했다.

커다란 택배박스는 채
닦이지 못한 바닷물에 젖어 있었다.

276번째로 수습된 희생자 수진이는
꼬박 두 달 반이 지나
부모님의 곁으로 올 수 있었다.

 엄마가 챙겨준 짐은
빨간색 캐리어에 그대로 있었다.
 엄마는 수진이의 캐리어 속에 있던
 수진이의 옷을 빨았다.

 옷에 묻은 바닷물이 모두 사라지면
 꼭 수진이가 돌아올 것처럼
그렇게 수진이의 옷을 한참이나 빨고, 또 빨았다.
 
-EBS 다큐프라임, 가족쇼크 1부 「나는 부모입니다」
2014년 12월 29일 방영.



 육지를 밟지 못한 아이들이 남아있는 채로 우리는 새로운 봄을 맞이했다. 바다에 남겨진 아이들의 부모는 차라리 유족이 되고 싶다고 했다. 실종자의 가족이기 보다 죽은 아이를 품에 안는 것이 낫다는 말이었다.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은 팽목항에서 부모는 한참이나 세월호를 보았다. 꽃보다 아름답던 아이들이 아스라이 사라진 바다. 바다는 부모의 속도 모른 채 맑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518과 416


 사회변동이란 사회구조나 문화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회는 사회변동의 과정 속에 있다. 가장 큰 예로 말하자면 518광주민주항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군부독재를 이끌던 정부와 맞서 싸우던 수많은 광주의 시민과 대학생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사회변동의 원인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광주의 경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이데올로기”였고, 두 번째는 “갈등”이었으며, 마지막은 “정치”였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왜곡된 이미지와 정보를 심고자 했다. 정부는 독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정부에 저항하던 많은 젊은이들과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한 순간에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들이 북한의 간첩이 되었고 그들은 정당한 이유도 없이 감옥으로 끌려가야 했다. 민주주의를 빼앗긴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5월 18일, 광주는 뜨거웠고 아팠으며 동시에 국민들은 결속력 강한 공동체가 되었다. 서서히 끓고 있던 분노가 하나로 뭉쳐 518을 계기로 폭탄이 터지 듯 터진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갈등, 정치는 대한민국에 518이라는 지워지지 않을 멍을 안겼다. 시민들의 희생을 통한 사회변동이었다.

 “상실”. 이것은 518 부모와 416 부모를 동시에 묶을 수 있는 말이다. 두 사건의 가족들 모두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과조차 듣지 못했다. 518과 416은 그 모습이 너무나 닮아있다. 일어난 사건이나 방식은 다르지만 사회변동의 요소가 비슷하다. “이데올로기”와 “갈등”, “정치”는 데칼코마니처럼 두 사건의 주변을 기웃거린다. 문제가 있다면 사회변동의 요소는 비슷한데 전개양상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518은 국가를 엎었을 정도의 모습을 보였지만 416은 그렇지 않았다. 518도 그랬지만 416은 사람들의 외면이 더욱 심했다. “지겹다”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아이들이 죽었는데 슬퍼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났고, 보상금도 준다고 하니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물음이다. 자본과 경쟁에 미친 사회는 인간들의 소외를 낳았지만 더 큰 문제는 ‘공감’을 상실했다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사회학적으로 말하자면 사회를 비판하는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의미이다. 사회를 비판할 줄 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일이 416과 518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상실의 세대’답게 사회를 비판하는 힘도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는 법도 잊고 말았다. 이러한 인간성의 부식은 어쩌면 마르크스가 걱정한 인간소외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의 개념들을 단순히 노동시장의 문제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더 넓게 시야를 가지고 보게 된다면 개개인의 인간소외가 보인다. 이미 우리는 서로를 소외시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욕망의 사회, 신자유주의


 세월호 참사에는 여러 요인이 중첩돼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적 시간을 ‘사건사적 시간’과 ‘국면사적 시간’ 그리고 ‘구조사적 시간’으로 나눈 바 있다. 세월호 참사에도 이 시간이 공존하는데, 우선 사건사적 시간에는 사전 예방을 못한 청해진 해운과 초동 대처에 더없이 미숙했던 해경 등이 포함되고, 국면사적 시간에는 규제 완화나 비정규직 증대 등 경제·사회구조를 신자유주의로 재편해온 ‘97년 체제’가 문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구조사적 시간에서 보면 성장지상주의에 매진한 결과로 나타난 ‘이중적 위험사회’를 주목해야 한다는 점도 제기 됐다. 물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신자유주의에 귀속시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세월호 참사의 배경적 요인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세월호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세월호 선박직 직원 15명 중 9명이 비정규직이었고 선장도 1년 계약으로 고용돼 있었다. 승객을 구조하지 않은 세월호 선장과 선박직 승무원이 법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의 비도덕적 책임 윤리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상태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고용이 안정돼 있고 임금 수준이 높다고 해서 선박직 승무원들이 승객의 안전을 언제나 우선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안전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의 불안한 고용 상태는 승객의 안전보다 자신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의 그늘이다.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위한, 경쟁에 의한, 경쟁의 체제’다. 무한경쟁,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이 체제는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 말한 ‘인간성의 부식’, 즉 책임 윤리의 실종을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위험이 사회의 중심적 현상이 되는 사회로, 그 특징은 측정 가능한 위험과 측정 불가능한 불확실성 간의 경계, 객관적 위험 분석과 사회적 위험 인식 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는데 있다. 그의 논리를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한국 사회는 압축적 발전 초기부터 위험사회였다. 산업화한 국가를 추격하기 위해 성장에 모든 것을 걸었고 성장지상주의에 따라 정치적 민주주의, 사회적 안전, 문화적 신뢰 등의 가치를 너무나 소홀하게 여겼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오래된 위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벡이 말하는 현대성이 가져온 결과로서의 위험, 즉 생태 위기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위험’이 공존한다. 결국 오래된 위험과 새로운 위험이 존재하는 ‘이중적 위험사회’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인 것이다.

 침몰하는 세월호를 통해 우리가 본 것은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의 침몰이다. 제도와 윤리라는 이중의 침몰이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우리는 잘못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고치지 않았다. 우리의 잘못으로 아이들은 죽었다. “어른이라서 미안하다.”라는 말이 아이들의 분향소에서 특히나 많이 보이고 들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트라우마의 세대가 되어


 최근 문학 이야기를 하다 놀란 점이 있었다. 소설을 쓰고 있는 Y양이 주인공의 이름을 “바다”로 정했는데 이에 대해 모두들 세월호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내용이 친구와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바다와 이별이라는 두 키워드로 세월호를 떠올렸다는 것은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그제야 나는 세월호를 경험한 우리 세대가 “트라우마의 세대”라는 걸 깨달았다. 배를 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심한 경우는 바다에 가는 것조차 거북한 사람들도 생겨났다. 세월호 트라우마는 이미 우리 안에 깊게 잠식되어있는 것이다.


photo_2.JPG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이리도 빠르게 인양할 수 있는 일을 3년이나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노의 이유였다. 나 역시 분노했다. 수많은 날들을 거리에서 보내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을 때, 나는 순진하게도 인양하는 일이 아주 어려워서 그들이 얼버무리는 것이라 조금은 생각했다. 이 순진한 생각이 천박한 생각에 불과했을 줄이야. 내가 분노한 상대는 바로 나였다. 아주 조금의 마음이라도 어떻게 그들을 믿을 수 있었을까? 때아닌 자기혐오가 피어 올랐다. 숨을 쉬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내게는 이를 극복할만한 위로가 필요하다. 사실 나 말고도 아주 많은 이에게 위로가 필요하다. 노란 개나리만 보아도 눈물이 난다는 나의 지인은 꽤 긴 시간을 인양장면을 보며 울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나의 하찮은 위로에 그녀는 밝은 얼굴로 답장을 보냈다. 그녀의 편지가 책상 위에 다소곳이 놓여있다. 아마도 그녀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구절들을 가득히 적어두었을 것이다. 그래.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것도 바다를 보며 눈물 젖는 것도,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이별을 가늠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트라우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참고자료
신동아, 「욕망의 사회에서 살림의 사회로 비정규직 줄이고 직업윤리 회복」, 김유림 기자



태그.jpg
 

[김나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