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붉은 '홍등'의 매력에 빠지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4.2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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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2학년 중국어 시간, 중간고사를 끝낸 우리를 위하여 선생님께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영화라며 '홍등(大红灯笼高高挂)'을 보여주셨다. 영화 초반에는 사실 집중하지 못했었다.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영화와는 다른 색채와 영상미, 중국스러운 분위기가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1시간 44분이라는 러닝타임의 비교적 긴 영화를 본 이후 나는 중국영화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것도 옛날 영화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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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에 개봉된 홍등은 장이머우 감독, 장이머우 감독의 뮤즈였던 공리가 주연으로 참여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장이머우 감독은 '붉은 수수밭'을 시작으로 감독인생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의 커리어 초반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대박이 나면서 그의 영화는 중국을 벗어나 세계 영화계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상업화된 그의 영화는 비판을 받으며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작년에 개봉되었던 '그레이트 월'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영화관에서 봤다면 돈이 아까울 정도로 실패한 작품이다.

 그래서 장이머우 감독하면 90년대 초반에 발표했던 '붉은 수수밭', '귀두', '인생', '홍등'을 들 수 있으며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역시 소설을 영화화한 '진링의 13소녀', '5일의 마중' 등이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홍등' 또한 '처첩성군'이라는 쑤퉁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홍등의 시간적 배경은 1920년대 중국. 서양의 문물과 일제가 중국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때였다. 서양문물의 도입으로 인하여 새로운 지식인들이 등장하는데 그 새로운 지식인들이 바로 '신여성'이다. 그녀들은 대학도 다니는 등 신문물을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전통사상과 봉건주의적인 악습이 많이 남아 있는 중국에서는 '신여성'이 서 있을 자리가 없었다. 그녀들은 정신적으로 깨어있는 여성들이었으나 육체는 봉건주의적 사상에서 생존해야 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느낀 '신여성'들은 결국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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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등의 주인공 '송롄' 또한 대학을 다니던 '신여성'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어려워지자 송롄이 직접 부자집 천씨 가문의 네 번째 부인으로 시집 갈 것을 결심한다.

 천씨 가문에 도착한 송롄은 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규칙을 배우게 된다.

1. 매일 밤 홍등을 네 부인 중 한 부인의 화원에 홍등을 건다.
   (홍등이 걸린 화원의 부인은 주인나리와 밤을 함께 보낸다)
2. 홍등이 걸리면 그 화원의 부인은 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3. 매일 저녁 부인들은 자신의 화원 입구에서 홍등을 기다린다.
4. 홍등이 걸렸던 화원의 부인은 다음 날 아침반찬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

 이러한 전통규칙은 사실 중국문화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나 감독은 이러한 규칙을 넣어 전통사상에서 억눌리는 여성들의 모습을 반영하고자 했다. 첫째 부인을 제외한 둘째, 셋째, 그리고 송롄은 이러한 봉건주의적 사상에 놀아나는 것도 모르고 홍등을 통해 권력을 얻고자 한다. 이들은 주인나리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저주하고, 음모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송롄 하녀로 들어온 옌알도 자신이 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분상승의 욕망을 품고 있어 송롄을 시기하고 그녀를 위험의 궁지에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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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가을, 겨울 이 세 계절 동안 많은 집안은 은밀한 신경전이 오가게 되고 이 때문에 사건사고가 연속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핵심적인 사건은 송롄이 홍등을 훔치고 자신을 저주한 옌알을 벌 준 것이다. 추운 겨울날씨에 밖에서 무릎을 꿇고 저항하던 옌알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또한 송롄은 권력에 욕심이 멀어 거짓 임신을 꾸미고 거짓말이 밝혀져 주인나리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된다. 마지막 중요 사건은 다른 남자와 간통을 하고 있었던 셋째 부인 메이산이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았던 둘째 부인에게 발각된 것이다. 메이산은 남자하인들에게 끌려 꼭대기 방으로 향하게 되고 송롄은 그 방에서 목매여 죽은 메이산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여름이 되었다. 다섯 번째 부인이 새로 시집을 오게 되고 송롄은 메이산의 죽음을 본 뒤 미쳐버리고 만다. 그녀는 홍등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만 하고 영화는 그렇게 끝나게 된다. 송롄은 '신여성'이었지만 육체는 봉건주의적 제도에서 생존해야 했었던 비극적인 삶을 가진 인물로 결말을 맺는 듯 했다.

   그런데 진짜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정말 봉건주의의 중국을 보여주고자 촬영했을까?

 이 영화가 1991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장이머우 감독이 그저 1920년대의 봉건주의에만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장이머우 감독은 아버지가 국민당 장교라는 사실 때문에 문화대혁명 시기에 굉장히 힘들게 살아왔다.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공장에 다니게 되는데 장이머우 감독의 상황과 비슷하게 문화대혁명의 시기의 많은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강제 이동을 지시받아 육체노동을 강행했으며 그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또한 천안문사건 때에도 역시 지식인들은 현실을 깨트리지 못하고 지배계층으로부터 억압을 받았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그는 봉건주의적 사회를 무능력하고 현실을 타파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세계로 비유하여 영화를 촬영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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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문화대혁명에는 지식인이라 불리우는 사람들,
공산당 사상이 아닌 유교, 불교 사상등을 믿는 사람들,
공산당에 반대했던 사람들,
예술인들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들은 목에 명패를 달아야 했고
사람들로부터 희롱, 멸시를 받았다.
사진 속 사람들은 현재 명패를 달고 공개비판을 받고 있다.


 만약 장이머우 감독과 소설가 쑤퉁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영화 <홍등>을 봤다면 아마 단순하게 봉건주의적 제도로 인한 비극으로만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당시 지식인들이 고뇌했던 문제를 생각하며 다시 보게 되니 중국사회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의 의견을 표출하지 못하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의 삶은 수많은 장벽이 존재하는 봉건주의제도에서 살아가는 지식인 여성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영화의 깊은 이야기. 중국 블로그를 통해 다시 보니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홍등'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해석뿐만 아니라 서북지역에서 촬영된 대저택의 모습, 붉은색들의 큰 홍등들, 중국 경극의 모습 등 시각적 배경 또한 굉장히 아름답다고 평가받고 있다. 나는 영화 '홍등'을 계기로 중국사회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 중국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장이머우의 다른 영화 '인생', '귀두', '붉은 수수밭', 천카이모의 영화 등을 찾아보며 중국 영화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90년대 초반의 중국 영화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자꾸 보다보면 중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계속 생기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다. 재미없을까봐, 어려울까봐 중국 영화를 보지 못했더라면, 이번 기회에 '홍등'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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