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나의 사랑, 그리스 >, 지금 그리스의 이야기 [시각예술]

국제관계학 전공자가 조금 깊게 풀어보았다.
글 입력 2017.04.2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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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기좋은 나라' 그리스가 경제위기로 인해 이토록 무너져내리기까지 근 2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스의 민낯이 드러나고 정부는 재정을 정상화하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그리스는 2015년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말았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에는 그리스의 이 사태에 대한 감독의 따끔한 분석과 나아가야할 방향이 담겨있다. 에로스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저 사랑이야기처럼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마냥 단순해보이지는 않는다. [부메랑], [로세프트 500mg], [Second chance]라는 세가지 에피소드의 흐름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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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메랑

  지중해와 맞닿아있는 남유럽 그리스에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이주하여 살고 있다. 시리아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들까지 몰려들면서 더이상 그리스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이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파시즘'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매우 과격주의적인 제노포비아 성향의 파시즘이었다. 영화 속에서 처음 등장하는 '안토니오'라는 인물이 바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그놈들이 우리를 좀먹고있어.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다 그놈들 때문이야." 이미 이민자들이 살기 힘들어진 그리스지만, 과격한 파시스트들은 기어코 힘을 합쳐 폐공항에 거주하는 이민자들을 내쫓기 위해 총격전를 일으킨다. 그런데 그 총격전 현장에서 안토니오는 딸 '다프네'와 마주했다.

  여대생인 다프네는 얼마 전 늦은 밤에 길거리에서 괴한들의 습격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시리아에서 온 '파리스'가 몸을 던져 그녀를 구해준 것이다. 며칠 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둘. 둘은 서로를 한 눈에 알아봤고 곧 사랑에 빠졌다. 사랑이 어찌도 그리 잔인한지. 둘은 함께하는 것만으로 행복했지만 늘 불안해야 했다. 서로를 향한 눈빛은 여느 연인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들의 행복은 당장 다음날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안토니오가 다프네를 의심하기 시작한 그 날 밤, 다프네는 파리스와 함께 바로 그 폐공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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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국가든 간에 이민자가 과도하게 유입되면 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민자들의 잘못이라기 보다, 단순히 인구유입에 의한 비율상의 증가, 혹은 이민자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 등 여러가지 요인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시리아에서 온 파리스 역시 고향에서 그림을 배우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는 그리스에서 운전자들에게 부메랑을 팔며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만약 내가 내전에 쫓겨 타국으로 가게 되었다면, 나는 그곳에서 범죄자가 되었을까? 같은 국가에서 태어난 국민도 같은 국가공동체 속 국민에게 잔혹한 범죄행위를 저지르지만, 이미 한쪽으로 답을 내려버린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이미 소용없는 것이었다. 파시스트들은 국내의 불안정한 상황을 그저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놈들'만 없어지면 내 나라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그들도 알고있었을지도 모른다.



2. 로세프트 500mg

  '지오르고'는 아내와 자식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이다. 어느샌가부터 아내와의 사이는 소원해지고 이제 어린 아들조차 그것을 알아차려 버렸다. 그는 매일 우울증 치료제 로세프트를 복용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술집에서 스웨덴 여인 '엘리제'를 만나 잠자리를 갖게 되는데, 다시 만나기를 여러 차례, 결국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야 만다, 지오르고는 점점 더 그녀의 숙소에서 머무는 날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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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리스에 몇 달 정도 머문다던 그녀는 지오르고의 회사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출장 온 상사였다. 그녀가 온 며칠새 무려 15%의 직원들이 잘려나갔다. 기업은 35% '감축'을 원하고 있었다. 숫자라는 것은 너무나도 비인간적이다. 지오르고의 동료는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졌지만 중절수술을 해야했고, 회사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은 며칠 후 목을 매달고 말았다.



3. Second chance

  '마리아'는 자주 가는 마트 앞에서 우연히 한 독일인 남성을 도와주게 된다. 이 남자 '세바스찬'은 그 때 마리아에게 호감을 느끼고 둘은 마트라는 공간에서 잦은 만남을 갖게 되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음에도 더듬더듬 이어지는 대화로 둘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러던 중 역사학자이며 국립도서관에서 일한다는 그는 그녀에게 어느날부터 매주 책을 선물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마리아는 세바스찬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고 남편과는 더욱 소원해진다. 사실 그녀의 남편은 바로 '안토니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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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세바스찬은 그녀에게 그리스어가 아닌, 영어로 된 책 'Second Chance'를 선물했다. 사랑의 신 에로스 신화에서 에로스를 배신한 프시케에게, 사랑을 회복할 두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더듬더듬 책을 읽어가던 날 밤 안토니오는 폐공항으로 떠났고, 다프네는 총에 맞았고, 마리아는 떠났다.


  예고편만 보고 나서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있다면 굉장히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예고편은 상당히 로맨틱한 음악과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하지만 필자는 국제관계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영화가 그리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스판과 영문판 포스터에 비해 유독 낭만적인 한국판 포스터를 보며, 조금 더 깊게 영화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전세대 모두에게 일어난 사랑이야기다. 그러나 사실 가정을 가진 중년 남성과 노년 여성은 불륜을 저지른 것이기도 하다. 비정상적이었던 이들의 사랑은, 개인의 도덕적 잘못보다는 그만큼 병들어있는 개개인을 의미할 것 같다. 더이상 가정에서는 행복과 안식을 누릴 수 없는 개인. 그리스에는 국가의 위기, 가정의 붕괴, 그리고 개인의 몰락이 있었다.

  각 부제 역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첫 번째, 파리스가 팔던 [부메랑]. 안토니오는 차에서 부메랑을 발견했고 한 번 던져본 부메랑은 완벽히 그에게 다시 돌아왔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지만, 필자는 이것을 안토니오가 저지른 악행이 그의 딸의 죽음으로 돌아온 것으로 해석하려 한다. 조금 더 크게 보면, 극우주의자들이 난민들에게 저지른 멸시 그리고 잔혹한 범죄가 오히려 결국 그들 자신을 망가뜨리고있는 것임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두 번째 [500mg의 로세프트], 그리스 전체가 빠져있는 우울증을 의미할 것 같다. IMF의 극단적인 긴축정책과 그리스 정부의 갑작스런 교육, 연금, 의료에 대한 예산 삭감은 서민들로 하여금 크나큰 박탈감과 절망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한 가정 속의 누구도 결국 행복해질 수 없었다. 지오르고와 마리아 모두 그들의 세계에서 도피하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 [Second chance]. 영화의 마지막, 집에서 우연히 그 책을 발견한 지오르고는 그것에 남겨진 메모를 보고 세바스찬을 찾아간다. 그렇게 마리아와 세바스찬만이 유일하게 다시 마주하며 영화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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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와 세바스찬이 과연 어떤 관계로 끝났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마 그것이 감독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독일인 세바스찬에게 유독 까칠했던 마리아는, 그리스 긴축정책에 일조한 독일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반감이 투영된 것이며, 둘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는 그리스가 가진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지금이 바로 그리스에게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다. 국가의 존폐가 달린 극단적으로 나쁜 상황이었지만, 덕분에 그리스는 유고한 역사 속에서 자신들이 놓쳐왔던 허점을 낱낱히 드러내게 되었다. 과거를 아는 이들에게는 얼마든지 더욱 큰 미래가 놓여져 있다. 그리스에게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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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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