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락부심' is not OK, Computer [문화 전반]

허영으로 뭉쳐있던 나의 '락부심' 해체기, Radiohead의 음반 『OK Computer』
글 입력 2017.04.1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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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락부심’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이것은 ‘락’과 ‘자부심’을 결합한 말인데, 결합하는 과정에서 소위 '중2병'의 의미가 첨가된다. 나는 정말 ‘중학교 2학년’ 때 이 철없는 자부심에 한껏 부풀어있었다. 다른 사람이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락 음악을 듣는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과 밴드부 연습실에 모여, 당시 미소년 밴드로 인기가 많았던 FT아일랜드는 진정한 락을 하고 있는 것인가하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고 아이돌 노래는 듣지 않는다며 자랑스레 떠들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창피한 기억이지만, 비주류와 저항정신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그 시절에는 락 음악이 하나의 종교처럼 느껴질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락부심은 음악을 음악으로 듣는 행위를 방해하고, 다양한 음악을 들어보며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없애버렸다. 락부심은 그다지 좋은 자부심이 아니었고, 일종의 허세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쓸모없는 자부심을 조각조각 해체해 준 앨범이 있었다.
 
  락부심이 절정을 달리고 있을 때, 좀 더 유명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노래를 원했다. 그러던 중 「Creep」으로 익숙했던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가 눈에 들어왔다. ‘90년대 최고의 명반!’이라는 수식어는 당시의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앨범의 가장 유명한 트랙을 몇 개 골라 ‘꾹 참고’ 듣기 시작했다. 어려웠고, 난해했으며, 가사는 이상했다. 우주 공간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가 그런 감정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한 번 듣고 mp3에 락부심 용으로만 간직해두었다. 그리고는 자랑했다. “라디오헤드, 진짜 소름돋더라니까.” 아마도 어려워서 두뇌에 소름이 돋았던 게 아닐까?

  그렇게 『OK Computer』를 mp3에 넣어두고 난 후 꽤 시간이 흐르고, 랜덤재생으로 노래를 듣고 있던 중에 그 앨범의 「Paranoid Android」가 흘러나왔다. 넘길까 망설이던 도중 보컬이 으스스하게 노래했고 그것이 흥미롭게 다가오기에 귀를 기울이려던 순간 갑자기 나를 지목하며 소리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상한 가락의 기타 연주, 그것이 종료되고 분위기가 급강하해서 곡하는 것만 같은 부분, 다시 이상한 멜로디와 기계음으로 끝나는 이 노래는 한 편의 뮤지컬을 본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한 편의 충격을 경험하고 난 뒤, 『OK Computer』를 1번 트랙부터 끝까지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생각보다 난해한 음반이 아니었다. 어쩌면 가사 또한 심오하고 추상적인 것을 노래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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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트랙 「Airbag」은 자동차 사고 생존자가, 열한 번째 트랙 「Lucky」에서는 비행기 추락사고 생존자가 두 번째 삶을 부여받았다고 깨닫는 것을 표현한, 어떻게 보면 긍정적인 감정을 노래한 것이었다. 「Let down」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라는 우울한 감정을 따뜻한 사운드 속에서 노래한 곡이었으며, 1996년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 OST로 제작된 「Exit music」은 또 어떤가보니 보컬인 톰 요크가 어렸을 때 본 오리지널 판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둘이 결혼식을 올린 뒤 왜 도망가지 않고 그런 비극을 맞는지 슬퍼하며 쓴 곡이었다. 가사가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도주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는데 이 곡의 침울한 목소리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거꾸로 집어넣은 중반의 섬짓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이 노래에서 아늑함을 느꼈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어느정도 귀에 붙던 여섯 번째 트랙 「Karma police」는 도움을 요청하는 화자와 그에 대한 ‘업보의 경찰관’의 냉혹한 대답, “네가 자초한 일이야”로 구성되어 있었다. 노래 없이 컴퓨터의 목소리로 녹음된 트랙으로, 가장 낯설게 들릴 법한 「Fitter, Happier」를 살펴보니 가사가 아닌 90년대 중산층의 “체크리스트”를 늘어놓으며 거짓된 삶을 경계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곡이었다. 가사를 뭉개는 듯한 노래와 여태껏 들어봤던 노래들 중에 가장 우울한 멜로디, 마지막의 절규까지 무서운 요소는 다 갖추고 있어서 처음에 가장 기괴하게 느껴졌던 「Climbing up the walls」는 어느새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되어 있었고, 「No Surprises」는 제목과 감미로운 음악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노래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세상에서 내뿜는 해악에 지쳐버려 모든 것이 차단된 안식처를 갈망하는 화자가 등장해 안타까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락부심에서 벗어나게 된 이유이다.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내가 이 앨범에서 찾은 것은 음악을 온전히 음악으로 듣고 있는 나였다. 인트로가 자극적인 것만 골라듣고, 가창력이 풍부하거나 귀에 착착 감기며 몸이 들썩이는 음악만 들었던 내가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귀 기울이고, '감상'하고 '사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앨범에서 느낀 전율은 락커가 고음을 내지르거나 기타리스트가 속주를 할 때 느꼈던 전율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조금 비약을 해보자면, 『OK Computer』는 나로 하여금 음악의 정의를 새롭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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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성찰했다. 온갖 음악들을 늘어놓고 위계를 정하기 전에, 그것들을 제대로 ‘감상’해 보았는지. 그런 성찰을 반복할수록 음악가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해 놓은 음악에 높고 낮음을 매기는 건 부질없는 짓인 것처럼 느껴졌다. 락부심이 쥐구멍으로 숨어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OK Computer』가 락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락부심 해체기로 동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평소 들었던 방식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주고 ‘What's That…?'이라고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데 있어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단숨에 들어보라. 53분의 러닝타임동안 우울과 긴장, 안도를 번갈아 경험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소비해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락부심까지, 모조리 말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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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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