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치명적인 유혹, 셰퍼드 페어리전

글 입력 2017.04.1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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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치명적인 유혹
셰퍼드 페어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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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린다’는 감정에 의문을 제기해본 적이 있나요?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 것일까, 이것에 끌리는 이유는 ‘본능적’인 것일까 ‘학습’된 것일까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저는 ‘끌린다’는 감정에 굉장히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이유로 ‘마음에 들고’ ‘좋은’ 그것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것들엔 과연 어떤 매력이 있을까. 또 그 ‘매력’이란 것은 무엇이 결정하는 것일까. 항상 궁금해왔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의문을 저보다 먼저 가졌고, 또 나름대로 그에 대한 답을 찾은 이가 있습니다. 바로 셰퍼드 페어리입니다. 너무도 매력적인 그래피티로 낙서를 진정 ‘위대하게’ 만든 그의 발자취를 쫓기 위해 <위대한 낙서: 셰퍼드 페어리전>을 다녀왔습니다.



페어리, 오베이 자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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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것은 앙드레 자이언트라는 씨름선수의 수많은 얼굴들이었는데요. 셰퍼드 페어리가 유명해진 계기이자, 그의 심볼이 된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을 알리기 위한 섹션이었습니다.

 페어리는 아무 이유 없이 ‘앙드레 자이언트’의 얼굴을 선택했고, 단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단 이유로 ‘obey’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연관성은 아무것도 없었고, 꼭 이 두가지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페어리의 순간적인 판단이 조금만 달랐다면, 다른 얼굴에 다른 단어가 쓰였을 수도 있었던 거죠. 중요한 것은 ‘앙드레 자이언트’의 얼굴이 쓰였다거나 ‘obey'란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잠재적인 유인요소가 있던 어떠한 ’이미지‘를,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여러 곳에 노출시켰다는 거죠. 

사람들은 여기저기 붙어있는 이 이미지를 궁금해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매력을 느꼈죠. 셰퍼드는 ‘마치 비밀스런 의식’처럼 이미지가 퍼져나갔다고 말합니다. 의미도 모르는,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의미도 없는 이미지에 사람들은 끌리게 된 거죠. 그렇게 ‘의미 없는’ 이 이미지는 유행을 타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어떠한 이미지에 끌리는 것은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거죠. 자극적일 수 있는 이미지가 관심이 갈만한 장소에 놓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후 페어리는 'obey giant'라는 회사까지 차리게 됩니다. obey가 셰퍼드를 대표하는 심볼처럼 된 것이죠. 그래서 셰퍼드의 대부분의 그림엔 obey란 글자나, 앙드레 자이언트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심볼이 설명되지 않고서야 이후 셰퍼드의 작품들에서 많은 부분을 놓칠 수 밖에 없으니, 이 캠페인이 첫 번째 섹션이 된 것은 당연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페어리의 심볼은 물론, 그의 독특함과 ‘이미지’ 그리고 ‘예술’에 대한 사유를 볼 수 있었죠. 저는 ‘매력’에 대한 페어리의 사유를 느낌과 동시에, 아니 오베이 자이언트의 얼굴을 봄과 동시에. ‘페어리’라는 작가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페어리, PEACE&JUSTICE


하지만 페어리의 매력은 그 이후로도 무궁무진했습니다. 페어리는 단지 ‘매력적인’ 작가가 아니라, ‘미치도록 치명적인’ 작가였거든요, 페어리는 여러모로 치명적이었습니다. 치명적일만큼 날카롭고, 또 치명적일만큼 아름다웠으니 말입니다. 세상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혀를 내두르게 했죠. 예술, 정치, 환경 등. 페어리는 사회 전반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래피티의 주제는 다채로웠죠. 이번 전시도 그런 그의 주제들을 잘 담아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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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평화와 정의입니다. 강렬한 색감으로 마치 선전미술, 프로파간다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와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make art, not war'. 그의 작품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는 이 문구만 봐도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는데요. 그는 예술로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총을 메고 있는 여성이 두르고 있는 것은 총알이 아니라 붓입니다. 여성은 예술로서 전쟁을 막는 예술의 전사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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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야기하는 ‘평화’는 ‘미국인’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911테러 이후, 아랍계 인종들은 미국인들의 엄청난 반감을 샀죠. 그들 모두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페어리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매혹적이게 아랍 여성들을 그려냅니다. 평화의 상징인 ‘꽃’과 ‘수풀’ 등과 더불어서 말이죠. 이는 사람들이 이 이미지에 익숙해지게 해 그들에 대한 반감을 줄이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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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은유적인 표현을 하는가 하면, 페어리는 매우 신랄하게 현재 세태에 대해서 비판하기도 합니다. 위 그림에서 저울은 돈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사람의 죽음보다 돈이 더 중시되죠. 정의의 여신이 더 이상 눈을 가리지 않습니다. 즉 돈 앞에 정의가 사라진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모든 것에 앞서는 워싱턴의 세태에 대해서 비판한 것이죠. 물질만능주의로 달려가고 있는 현재, 원래의 ‘정의’를 추구하자는 것이 페어리의 주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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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부부가 애지중지 안고 있는 것은 아기가 아니라, 미사일과 같은 것이죠. 군대를 늘리고 학교를 줄인다, 는 옆에 문구에서 알 수 있듯. 군인을 계속해서 더 키워나가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을 무기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직관적이면서도, 고도의 비꼬기죠.



페어리, 정의에 의한 정치


페어리가 주장하는 바는 꽤나 구체적입니다. ‘평화’, ‘정의’라고 했을 때는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그의 수많은 작품들의 공통적인 주제를 꼽기 위해 대주제가 나왔을 뿐, 그의 작품 하나하나의 주제는 꽤나 선명합니다. 각자가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죠. 페어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것을 ‘예술가의 책무’라고 말하며 그 본인도 이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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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제를, 다는 아니더라도 하나하나 짚어가자면. 페어리의 작품 중엔 정치적인 것이 많습니다. 사실 사회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서 정치적이지 않을 수는 없죠. 페어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페어리를 지금의 위치로 만든 오바마의 HOPE 포스터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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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트럼프 정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그림은 현재 반트럼프 시위에서 활달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미지인데요. ‘we the people'이란 문구는 트럼프가 현재 배척하고자 하는 이민족들 또한 사람이며, 사람을 넘어서 ’미국‘의 ’시민‘임을 나타내줍니다. 페어리가 반 트럼프 시위의 그림을 그리는 것 또한 그의 ’정의‘를 위해서입니다. 페어리의 ’정치적임‘은 ’친정권적‘ 혹은 ’반정권적‘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단지 그가 추구하는 ’정의‘에 따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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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는 ‘공권력’에 대한 비판을 가하기도 하는데요. 경찰과 군인입니다. 우리를 지켜야할 이들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모습이죠. 이 역설적인 모습으로서 국민을 지키기보단, ‘국가’의 뜻에 따르기 바쁜 공권력을 비판하고자 한 것입니다.



페어리, 넓고 다양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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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했던 만큼, 페어리는 ‘자본’의 움직임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그렇기에 그는 ‘오일 컴퍼니’들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막대한 자본을 움직이면서 여기저기 로비도 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이들이 ‘문제’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의 작품 중엔 물방울 모양에 석유화학탑이 그려져 있는 모양이 자주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처럼, 페어리는 그들에게 통렬하게 욕을 해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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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의 작품 전반엔 페미니즘 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는데요. 페어리의 그림엔 유달리 ‘여성’을 묘사한 그림이 많습니다. 이는 여성을 ‘대상화’한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의 대표적인 모습으로서 여성을 삼은 것이죠. 특히나 페어리가 그려내는 여성은 결코 유약하지 않습니다. 강렬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거나, 혹은 여신이나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죠. 이를 통해 여성을 강렬하게 묘사해냄으로써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들을 타파하고자 헀던 그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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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대한 관심도 남다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Earth Crisis'가 있는데요. 당시 파리에서 열렸던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에 맞춰 제작 돼 에펠탑에 전시됐던 지구본은 현재 지구가 맞딱뜨린 여러 환경적 문제를 집약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전시 된 그림은 지구본에 들어갔던 그림들인데요.

지구본의 원본은 볼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제가 전시를 보러가기 전 바로 3일 전쯤에 페어리 재단에서 지구본 축소 모형을 제작해 보내왔다고 합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그 지구본의 위용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요. 일단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데다가…거기다 그 안에 있는 그림 하나하나가 다 의미를 갖고 있으니. 정말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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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페어리의 환경에 대한 사유는 비단 ‘환경’을 주제로 작업한 작품 뿐 아니라, 그의 작품 전반에 드러나 있습니다.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넘어가기 쉽지만 그는 종이하나도 아무거나 사용하지 않았죠. 그의 그래피티의 배경이 되는 종이는 여러 쓰레기들을 모아 콜라주해서 만든 것입니다. 쓰레기들을 재활용해 작품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죠. 한 장의 그림에도 논어부터 수학공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종이들이 섞여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환경에 대한 그의 철학을 보다 더 관철시킬 수 있음은 물론, 그의 그래피티가 보다 감각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했죠.



페어리, 아름다움


 페어리의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정적으로 한 장 한 장이 다 너무도 아름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에 대한 그의 감각 자체가 무척이나 뛰어났거든요. 멀리서 보더라도 한 눈에 들어올 만큼 강렬하면서도, 가까이서 보면 한참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디테일했습니다. 그냥 분석이고 설명이고 다 떠나서, 그냥 보는 순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죠. 알폰스 무하 이후로 이토록이나 작품에 매료되고, 강렬한 소장욕구를 느낀 적은 처음이었는데요. 그의 작품엔 하염없이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페어리가 그래피티로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킬 수 있던 이유도 이 ‘아름다움’에 있죠. 이 아름다움은 그의 능력이면서, 또 의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갖고싶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또 그 이미지에 익숙해지는 순간부터 그를 상세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마음으로 느끼게 되죠. 어떤 이미지에 대해선 친근함을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페어리는 보다 쉽게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인식을 심어주고, 심어주지 못하더라도 ‘생각하게끔’만드는 것입니다. 그림의 매력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니 말입니다. 

페어리의 아름다움은 ‘순수함’이 아니었죠. 목적성이 꽤나 분명합니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최고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던데,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페어리의 작품 대다수는 ‘목적’이 있기에 아름답지 않은거죠. 하지만 저는 원체 반골이어서일까요. 그림 속에 담긴 페어리의 사유들이, 또 철학들이, 그 목적들이 있어 그의 그림이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페어리, 유쾌한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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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아예 벗어난 후 마주한 버스 정류장에도 오베이 자이언트가 존재했습니다. 이를 보며 이게 바로 그래피티의 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장을 벗어나서도 함께하는 그림의 힘. 거리의 스티커 한 장만으로도 지금까지 봤던 페어리의 모든 작품이 순간적으로 연상되게 하는. 그의 철학을 떠올리게 하는 그래피티의 힘.

그 자리에 그림을 그리고, 스티커를 붙인다는 것이 그래피티 작가 식으로 ‘태깅’이라고 할 때. 즉 그 자리를 ‘정복’했다고 할 때. 예술의 전당과 관람객들이 오베이 자이언트 스티커를 붙여놓은 대한민국 곳곳은 페어리에게 점령당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점령’이 유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거리도 페어리와 같은 여러 사유들에, 철학들에. 매혹적인 예술에 점령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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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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