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입 속의 검은 잎- ‘그’에 대하여 [문학]

글 입력 2017.04.1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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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속의 검은 잎, 입과 잎이라는 발음의 유사성과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 제목 때문인지 적어도 나에게는 이 시집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기형도 시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세상에 나온 작품으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아마, 마냥 따뜻하고 희망적인 시집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담고 있는 시집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기형도 메모 중에서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많다. 그 중에 가장 지배적인 생각은 그가 살던 1980년대 시대상을 투영해 보는 것이다. “검은 잎”은 민주 항쟁에 참여하여 자유를 외치지 못 했던 자신의 직업(당시 중앙일보에서 근무하던)을 뜻하는 것이 된다. 즉, “검은 잎”은 그로 하여금 마음껏 말하지 못 하게 만들었던 장애물인 것이다. 그가 남긴 메모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 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물론, 시대적 배경에 따라 자유를 외치지 못 했던 자신의 모습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욱 일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시집을 시대상에 비추어보기 보다는 기형도 시인 ‘자체’로 보고 싶다.

 사실 <입 속의 검은 잎> 보다 더욱 내 마음에 와 닿았던 몇 편의 시들이 있다. 바로 <빈 집>과 <질투는 나의 힘>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 집

 
 과거의 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잘 있거라”라는 말로 작별 인사를 건네는 표현은 이미 지난 간 것에 대한 애틋함과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감정에서 오는 씁쓸함을 더욱 고조 시키는 것 같다. 시의 마지막 두 구절을 보면 자신의 사랑을 가엾게 여기면서도 자신이 ‘스스로’ 그 문을 잠가, 사랑을 아무도 없는 곳에 가두었다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그 때 당시 기형도 시인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마음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놓을 수 밖에 없었던 감정이 아니었을 까 생각해 본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 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 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시였다. 과연 언젠가 끝나는 내 삶 속에서 나를 사랑할 날이 오긴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긴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시를 통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질투를 나의 힘으로 삼는 것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그 시대상에 비추어 보는 것은 그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작품은 그저 작품 그 자체일 뿐이다. 작가 내면의 세계가 구현되는 작품 속 세상을 바깥 세상에 빗대어 한정하는 것은 시를 감상하고 음미하는 데에 좁은 시야를 주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때문에 <입 속의 검은 잎>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많은 고민을 했던 한 청년의 내면 세계라고 생각한다. 순전히 ‘그’에 대한 ‘그’의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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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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