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역사, 위험한 거울 [문학]

글 입력 2017.04.09 10:0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역사, 위험한 거울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해 



 역사란 무엇일까?,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관점이란 무엇인가?, ‘객관적’인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국정교과서가 한창 도마 위에 올랐을 때 외치고, 받았던 질문들이었다.

 한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사건이 쿠데타가 되기도 하고 혁명이 되기도 하며 인물에 대한 평가도 갈리게 된다. 수많은 사실들이 와전되고 우리 주위의 사건들도 루머로 변하고 잘못된 정보로 사회에 퍼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될까? 팩트란 무엇일까?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중세 최대의 스캔들, 스승 아벨라르와 제자 엘로이즈의 사랑은 그들의 편지를 출간한 책도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이를 보는 관점도 다르다.



1_한 명의 아벨라르

 흔히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를 읽은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운운합니다. 불행한 사랑이니, 영육을 엮은 사랑이니, 지고지순한 사랑이니, 그러나 이 모두 헛소리입니다. 남아 있는 흔적의 거죽조차 제대로 못 읽은 서툰 해석이지요. 어디 아벨라르가 한 번이나 엘로이즈를 사랑해본 적이 있었던가요.
 
 그는 흉계를 꾸몄고,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했지요. 불쌍한 풀베르. 순박하고 단순한 자. 그는 몇 푼의 돈과 ‘조카’의 교육에 대한 열성 때문에 ‘순한 양을 굶주린 늑대’에게 맡겨버렸죠. 이제 밀폐된 공간에 단 둘이 있게 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그들은 공부했을까요. 결코 아니지요. 엘로이즈야 성(聖)스러운 마리아를 열망했겠지만, 아벨라르는 성(性)스러운 베누스를 탐냈을 테니까요.

 “우리들이 함께 맛보았던 저 사랑의 쾌락은 제게 있어서 무척이나 감미로워 도저히 후회할 마음이 나지 않으며 … 여느 때보다 더 순수하게 기도드려야만 하는 미사 시간에조차도 그 환락의 방종한 영상이 불쌍한 제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아 저는 기도에 전념하기보다는 부끄러운 생각에 탐닉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벨라르와 헤어지고 13년쯤 지난 뒤, 이제는 수녀원의 원장이 된 엘로이즈가 그리운 이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엘로이즈의 몸에 각인된 성의 흔적은 얼마나 깊은 것인지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엘로이즈는 ‘굉장한 기쁨’에 젖어 그 사실을 아벨라르에게 알렸지요. … 오늘날 남아있는 그의 편지 그 어디에도 아들 아스트랄라브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 쾌락의 성을 추구한 그에게 아스트랄라브는 원치 않는 부산물이었고, 그렇기에 망각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니까요.

 그러니까 결혼식도 떳떳하지 못했죠. 소중해야 할 결혼식. 기억도 못하는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새벽녘에 기억도 못하는 어느 교회에서 순식간에 진행되지 않았습니까. … 자신의 명예 때문에 그녀를 내놓아선 안 된다구요? 결코 세상에 그들의 결혼을 알려선 안 된다구요? 아벨라르가 볼 때야 풀베르는 ‘배신’한 거지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결혼 사실을 세상에 공포했으니까요. … 그러나 얼마나 가관인지요, 모든 것 밀어놓고 자신의 명성에만 매달리는 그의 모습은.

 ‘거세’. 아벨라르를 단번에 추락시킨 파국의 일대 전환점. 따지고 보면 그것도 이 같은 아벨라르의 이기적 심성에 대한 정당한 보복은 아닐까요. 폴베르는 거세보다 더한 손상을 그에게 입힐 수도 있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아무런 위로의 편지나 격려의 편지를 보내지 않았던 것은 당신을 소홀히 생각해서가 아니오. 오히려 당신의 현명함을 깊이 믿었기 때문이오. 나는 당신이 그런 것을 필요로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소.”
 수녀가 되고 13년쯤 후 그의 소식을 접한 엘로이즈가 서둘러 그의 긴 무관심을 탓했을 때, 아벨라르가 내뱉은 말입니다. … 아벨라르가 엘로이즈를 사랑했다구요? 글쎄요. 그의 긴 부재와 공백을 사랑으로 뒤바꾸려면 아마도 신적인 능력의 성형외과 의사가 필요할 겁니다.

 천국은 인간에게 허락되었을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은 행복할까요. 만약 그러하다면, 천국에서 엘로이즈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녕 그녀에게 어울리는 자를 만나 마땅히 누려야할 기쁨을 그녀가 맛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벨라르는 아닐 것이며, 또한 결코 그여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곳은 기쁨과 환의의 천국이 아니라 고통과 한숨의 지옥일 테니까요.

「역사, 위험한 거울 中, 한 명의 아벨라르」



 아벨라르는 완전히 악마이다. 철학과 인간을 탐구한다는 학자가 순진한 학생을 이용하고, 비밀결혼식을 올린 후, 수녀원에 던져버리다니. 13년간 아무 연락하지 않고 있다가, 서투른 변명이나 흘리고, 엘로이즈를 외롭게 만들다니… 그런데, 이게 정말 사실일까? 책의 바로 다음 장은 정반대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2_또 한 명의 아벨라르

 이제까지의 해석, 어떠셨는지요.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래서 아벨라르는 자신만 사랑했을 뿐, 단 한순간도 엘로이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믿게 되셨는지요. 만약 지금까지의 ‘거짓말’을 순진하게 믿으셨다면, 역사한다는 게 너무 허망하지요. 그럴 듯한 몇 마디 말로 역사적 진실을 간단히 덮어버렸을 뿐이니까요. … 못 믿겠다고 서둘러 흥분하지는 마십시오. 이제 차곡차곡 아벨라르의 참모습이 드러날 테니까 말입니다.

 우선 ‘연애 시절’을 생각해봅시다. 아벨라르는 분명히 엘로이즈의 ‘사랑스런 갖가지 매력’에 매혹되어 그녀에게 접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육체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고만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 지나친 혹평이 아닐까요. … 아벨라르는 여성들의 몸을 닥치는 대로 탐하는 소위 ‘바람둥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그는 학문의 순결한 전사였죠.

 그러나 좀더 중요한 사실은 아벨라르가 엘로이즈를 사로잡기 위해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는 점입니다. 훗날 회상의 편지에서 엘로이즈는 그가 준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오직 그녀만을 위해 만들어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송된 사랑의 노래들이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아벨라르가 엘로이즈의 입술을 훔치고 그녀에게 성을 강압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능욕이었을까요. …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에 대한 엘로이즈의 추억이 밝고 긍정적이라는 점입니다. … 게다가 성을 통회해야 할 죄악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영원히 잊지 못할 기쁨과 행복의 절정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 만약 아벨라르가 창녀를 대하듯 그녀를 대했을 뿐이라면, 정녕 엘로이즈는 성에 대한 부정적이고 암울한 기억만을 지녔을 것입니다.

 혹자는 결혼의 형식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이는 그릇된 견해입니다. … 그녀의 전생애를 통해, 엘로이즈는 오직 단 한 번 아벨라르의 명을 거역합니다. 결혼하자는 아벨라르의 제안을 그녀가 고집 세게 거절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 그녀에게 ‘보상’하기 위해, 그녀가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그녀에게 돌리기 위해 아벨라르는 혼배성사의 재단으로 나아간 것이죠, 이 같은 그가 자신만 생각했다고요? … 결코 그렇지 않지요. 엘로이즈의 몸만 탐냈을 뿐이라면, 굳이 뭐 하러 결혼합니까.

그래도 결혼 후의 그 긴 공백은 회환으로 남을 수 있겠죠. … 그렇다면 음울한 이별의 공백기에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 해답은 그의 ‘참회록’, 사람들이 흔히 <아벨라르의 수난사>라고 부르는 바로 그 편지 속에 있습니다. … <아벨라르의 수난사>는 실상 그의 참회록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이 잘 보여주듯, 진정한 참회록이란 고해성사 그 자체입니다. … 그는 감추고 싶은 사실들을 숨김없이 밝히며, 자신의 삶을 타락-처벌-구원이라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반성합니다. … 이별의 긴 여백에서 아벨라르는 삶과 사상의 재정향을 위한 벼랑의 끝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산이 부서져 찬란히 부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녕 그러하다면, 우리는 그의 긴 침묵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천국은 인간에게 허락되었을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은 행복할까요. 만약 그러하다면, 천국에서 엘로이즈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녕 그녀에게 어울리는 자를 만나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을 그녀가 맛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그렇다면 누구일까요. 오직 한 사람, 아벨라르이며, 또한 아벨라르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곳은 기쁨과 환희의 천국이 아니라 고통과 한숨의 지옥일 테니까요.

「역사, 위험한 거울 中, 또 한 명의 아벨라르」



 실제로 제시된 팩트는 ‘교제’, ‘비밀결혼식’, ‘주고받은 편지들’, ‘고해성사’들 정도이지만, 이를 가지고 무수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관점과 시각에 따라 이야기가 천차만별이 되고, 인물의 평가가 극적으로 갈린다. 역사를 제대로 정의할 수는 없어도 역사, 그것은 위험한 거울일 것이다.


[고도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