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이보그도 자아를 가지고 있을까?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4.1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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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기 학생들부터 다 큰 어른까지 “나라는 걸 못 찾겠어요.”, “나는 누굴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조울증마냥 오락가락하는 기분에 휘둘리고, 모든 일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존재의미를 찾아서 많은 행동들을 한다. 이 영화에서는 사이보그가 그런 행동을 한다.

 기술이 놀랍게도 발전해서 사람과 사이보그를 구별하기 힘들고, 뇌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서 수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졌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의 자아란 존재할 수 있을까?

 기업의 네트워크가 세상을 수놓고,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한 사이보그가 만들어지고, ‘전뇌화’되어 뇌와 네트워크를 연결해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어졌지만, 아직 세상이 망하거나 하지는 않은 멀지 않은 미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은 그런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후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실 분은 뒤로 가시거나 스포일러를 지나 밑으로 쭉 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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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토코 쿠사나기는 경찰로, 6과에서 소령으로 일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사이보그였으며, 범죄자들을 잡는 일을 해왔다. 어느 날부턴가 그녀는 계속 자신이 누군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러다 하나의 뇌인 ‘고스트’를 해킹하여 사람을 조작하는 범죄 사건을 맡게 되고, 그 원인인 ‘인형사’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직감을 믿는 편이었으며, 자신의 고스트를 신뢰하고는 했는데, 그 고스트가 해킹당해 가짜 기억 속에서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모토코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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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로 거울 속 자신을 쳐다보거나 혼자 사색에 잠기거나, 배를 타고 가다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혹은 닮은) 사람을 보는 환상을 겪게 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러던 와중에 그 범인인 ‘인형사’라는 사이보그를 만난다. 그리고 자아를 찾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다이브’이다. 영화에서 다이브가 나오는 장면은 세 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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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는 이 영화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자, 이 시리즈를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면서 ‘광학 위장술’을 사용해 세계로 흡수되는 모토코. 그녀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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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는 영화 중반쯤의 잠수하는 장면이다. 바다 깊은 곳에 잠수했다가 점점 떠오른다. 이 영화 속에서 바다는 정보의 바다를 상징한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그 곳에 들어간 것이다. 그녀의 소멸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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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이 영화에서 직접 다이브라고 말하는 하나의 기술이다. 전선으로 사람과 전뇌화 된 뇌 혹은 사이보그를 연결해서 그 정신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 모토코는 오로지 자신을 찾기 위해 인형사의 정신에 다이브한다. 인형사는 모토코에게 융합을 제안했고, 그렇게 모토코는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인형사의 네트워크와 자신의 정체성을 결합한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면서(고전 13:11) 소령이라 불렸던 여자도 인형사도 여기에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융합된 개체는 세계 자체가 되어버린다. 결국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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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이 놀랍게도 발전해서 사람과 사이보그를 구별하기 힘들고, 뇌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서 수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졌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의 자아란 존재할 수 있을까? 감독은 이 질문을 영화 시작에 던져놓고 마지막에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자아란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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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란 끝없이 생성되고 변형되는 존재이며 어떤 사람, 상황이냐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다. 그 자체로 허상이자 환상이라는 것이다. 상징계적 자아는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자꾸 남과 비교해 그것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인형사와 융합하면서 모토코는 알게 되었다. 자아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유의 아이덴티티란 없다. 이는 무척이나 불교적 사고관을 떠올리게 한다. 흙으로 만든 소가 왜 강을 건너가는가? 강에 흡수되어야만 건너편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아를 찾기 위해서라면 자아라는 환상을 깨고 세계에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유의, 독자적인 ‘나’라는 존재가 존재할까?


 이 사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고민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며 앞으로 헤쳐나갈 방향을 알려준다. 모든 것이 자아이다.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도 내 자아의 일부이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내 자아의 일부이다. 부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을 돌아보니, 나 자신은 없고 인연만이 있었다. 이 인연이라는 그물망, 네트워크에서 우리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고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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