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히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문화 전반]

죄 없는 자 이들에게 돌을 던져라
글 입력 2017.04.1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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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받으려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여자가 있다.
인간처럼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남자가 있다.
< 인간 실격 >의 요조와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의 마츠코, 그들이 맞닿은 지점은 어디일까.


태어나서 죄송합니다(원고).JPG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20세기 기수’는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에서 극 중 다자이 오사무의 환생이라 불리던 작가 지망생, 마츠코의 애인인 테츠야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한다. 마츠코 또한 죽기 전 폐인의 생활을 이어나가던 아파트의 벽에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를 끝없이 덧칠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화상과 같은 < 인간 실격 >의 요조, 그리고 마츠코의 인생은 너무나 닮아 있다.




 
 요조는 기억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은 그 속에 자연스레 녹아 들어 살아갈 수 없다고 확신한다. 인간들이 자연스럽게 행하는 말과 행동은 그에게 큰 두려움이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한 생존 방법으로 익살을 선택한다. 누구한테서 조금이라도 나쁜 말을 듣는 것이 극히 두려워 무조건 상대방을 웃기려고 한다. 떨리는 마음과는 반대로 익살을 너무나 잘 떨어서인지, 가족을 비롯한 누구도 그의 상태를 알지 못하고 그는 자신의 생존 방식을 고수하며 성장한다.

 겉보기에 공부도 잘 하고 재치 있고 예의 바른 요조가, 속으로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거짓임을 들킬까 두려워했다는 것을 누가 알았을까? 그는 자신의 음울한 마음을 숨기면서, 아버지 몰래 술과 여자를 배우고, 유일하게 마음 놓고 본심을 보여줄 수 있는 여자 쓰네코를 만나지만 그녀와의 동반 자살에 실패하고 혼자 살아남는다. 그 이후 요조에게 세상은 더욱 낯설고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겉으로만 상냥하게 대하는 법에 익숙한 그는 스스로 누군가를 ‘방문’할 능력조차 없다고 여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태로 썩어 들어간다.

 요조는 이처럼 자신이 거짓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강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타인들이 보여주는 자신 또한 어느 정도의 거짓이라는 것을, 심지어 그 거짓이 언젠가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너무나 순수했기 때문에, 자신의 세상에 대한 무지와 거짓된 행동 자체에 치를 떨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미움 받지 않기 위해 그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휩싸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몰랐다면 가족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감쪽같이 모두를 속이며 살아왔을 수가 없다. 즉 그는 인간처럼 사는 법을 알고 ‘점차 세상을 경계하지 않게’ 될 정도로 살아 왔지만, 너무 깨끗한 그의 본성이 ‘속되고 기만적이며 이기적인’, 그러나 보편적인 인간의 면모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이 강박감은 그를 괴로워하면서도 인간처럼 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죄의식에 시달리게 하다가, 종국에는 스스로의 삶을 ‘인간 실격’으로 정의하게 만든다.


마츠코.jpg

 
 인간처럼 살아야 한다는 이 강박감은 사랑 받고 싶다는 강박과 일면 비슷하다. 마츠코는 어릴 때부터 아픈 여동생으로 인해 아버지에게 사랑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마츠코에게는 절대 웃어주지 않고, 백화점을 가서도 동생의 선물만 사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딱 한 번 테마파크에 놀러 갔을 때, 마츠코는 광대를 보고 웃는 아버지를 보고 광대의 표정을 따라 하게 된다. 그녀가 광대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지을 때마다, 아버지는 이까지 드러내면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츠코가 자라면서 어릴 때는 재롱이었던 이 습관에 아버지는 점차 반응하지 않게 되고, 마츠코는 실수를 만회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마치 어렸을 때는 잘 먹혀 들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요조의 익살처럼, 쓸모 없는 처세술로 남아버린 것이다. 마츠코가 수학 여행에서 돈을 훔친 학생 때문에 곤경에 처했을 때, 이 버릇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결국 교사 자리에서 해고당한다.

 어릴 때부터 사랑 받지 못했던 트라우마가 있는 마츠코는 집을 나와 사랑을 찾는다. 하지만 그녀를 거쳐간 모든 남자들은 마츠코 자체를 사랑하지 않고 그녀가 주는 애정, 그녀가 가진 친구의 명예, 몸, 돈만을 바라보며 빼앗아 간다. 수많은 남자들을 거치며 피폐해진 마츠코 앞에 제자 류가 다시 나타난다. 그는 마츠코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근원으로 분명 미움의 대상이지만, 사랑에 목마른 마츠코는 이젠 아무 것도 상관 없다는 마음으로 류에게 헌신한다. 누구한테도 1순위가 되지 못했던 마츠코는 친구지만 남편이 있는 메구미와 야쿠자인 류와 사이에서 주저 없이 류를 선택한다. 그녀의 인생이 시궁창으로 향할지라도. 그러나 류도 그녀를 온전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마츠코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다가 어이없게도 아이들에게 맞아 죽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이는 요조에게 마지막까지 평생의 숙제였고, 사랑 받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지만, 사랑 받는 일은 마츠코에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요조의 삶은 ‘인간 실격’으로, 마츠코의 삶은 ‘혐오스런 일생’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이 말들과는 반대로, 요조는 교바시 마담에게 ‘신처럼’ 착한 아이로, 마츠코는 류에게 구원의 신으로 남아 있다.

 사실 다른 사람들처럼 살기에는, 그들은 너무 순수하고 깨끗했던 것은 아닐까. 속되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요조에게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삶을 박탈했고, 속물적인 세상은 마치 신처럼 끝없이 사랑하는 법만 알았던, 어쩌면 아이들보다 순수한 마츠코에게 너무 가혹해서, 태어나서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게 만들었다.

 그러니 아무도 이들의 인생을 감히 비난할 수 없다. ‘인간 실격’이니 ‘혐오스런’이니 하는 말은 그들을 버려지게 한 세상에서 생긴 정의일 뿐이다. 진정으로 순수해 본 적 없는 이 세상의 우리가, 단지 누군가의 삶이 세상의 기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고개만 숙여질 뿐이다.





아트인사이트 태그.jpg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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