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적과 흑: 그들의 사회, 그들의 이야기. [문학]

글 입력 2017.04.1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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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그들의 시대


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그가 속한 사회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가 속해 있는 사회의 분위기, 그 시대상은 한 사회 안에서 성장하고 교류하는 인간의 모습을 형성하게 된다. 곧, 그 사회의 가치관을 긍정적인 방식으로든, 혹은 부정적인 방식으로든 접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1970년대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사는 것’에 몰두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내가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 잘 살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들에게는 지배적이었다. 반면 이러한 경제개발 과정에서 놓치고 만 인권에 대한 문제에 집중하고, 조금 더 다차원적 측면에서의 ‘잘 사는 삶’을 추구하던 이들은, 그들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그들의 가치관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한 사회의 시대적 배경, 그 상황에 반응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삶을 다룬 문학 역시 시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번에 읽게 된 스탕달의 「적과 흑」은 유독 그러한 색채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생각을 하였다. 적과 흑에는 정말 다양한 특성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가치관,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 등은 그 시대여야만 설명 가능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쥘리엥, 드 레날 부인과 마틸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많은 인물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받고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한다.



‘적과 흑’에서, 그들의 시대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내게는 사회가 인간의 삶의 모습을 형성한다는 관점에 상당히 익숙하다. 전공과목인 사회복지학에서는 그 실천과정에 있어서 개인과 환경 간 상호작용을 개인, 환경 모두의 책임으로 보는, 이름부터 ‘환경 속의 인간(person in environment)’인 시각이 주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예를 들면 쥘리엥의 경우 그가 자라 온 가정환경의 세세한 부분들이 그와 상호작용하는 방식과 사회에서 그가 보여주는 입장에 대한 고려가, 쥘리엥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못할 짓도 없는 냉정한 사람이라고 비춰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살아 온 삶의 과정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쩐지 그에 대한 연민을 감출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의 모든 생각을 ‘야심’으로만 채우지 않았는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쥘리엥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적과 흑」을 읽기 시작하던 때에는, 미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소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불륜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읽어 나간 쥘리엥과 드 레날 부인의 사랑 이야기가 200페이지가 넘도록 진행되면서, 나는 무엇인가 잘 읽히지 않는 불편한 점들을 느꼈다. 점차 이 둘의 사랑이 통상적인 연애소설과는 달리, ‘그들의’ 사랑뿐만 아니라 ‘그 사회 속에서의’ 사랑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사회적인 배경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내가 이 소설 속 인물의 이야기를 존중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이 소설의 인물들이 처한 사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찾아보게 되었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파악하게 된 것은 무려 1권의 중반부가 넘어서였다.

 늦은 깨달음이기는 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은 참으로 복잡한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한 상황에서 민중들은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찾고자 했으나, 혁명 말기의 강력한 지도자였던 나폴레옹의 실각 이후 다시 왕정복고가 되었다. 프랑스의 기존 왕실인 왕가가 다시 복귀하자 귀족세력은 잃어버린 자신의 기득권을 어떻게든 지키고자 했고, 이미 혁명을 통해 자유의 가능성을 엿본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에 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의 행동을 그려내고 있었다.



‘적과 흑’에서의 이중성, 쥘리엥의 의무와 사랑


 앞서 인물이 처한 시대적 배경을 찾아보게 한, 내가 느낀 불편한 점들은 주로 인물들이 가진, 말도 안 되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중성에 관한 것이었다. 각 인물들이 취하는 태도는 굉장히 ‘낯선’ 것이면서 때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입장이 혼재되어 있었다. 보통 한 소설에서는 한 인물이 가진 특징, 혹은 그에 동조하거나 대항하는 인물들의 특징을 그려낼 수 있는데 반해, 「적과 흑」에서는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이라는 일관적인 속성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것이 이 소설을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것은, 계속해서 나를 불편하게 했던 주인공 쥘리엥이었다.

 쥘리엥은 드 레날 부인과의 사랑에서 ‘의무’라는 생각을 상당히 자주 드러낸다. 드 레날 부인의 손을 잡는 부분에서도,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건드릴 때 그 손이 피하지 않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쥘리엥은 사랑을 한다기보다는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과제를 성실히 해 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 자신만의 원대한 계획을 위해, 드 레날 부인을 자신이 정복해야 하는 하나의 단계로 보는, 그 정도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드 레날 부인의 아들이 위독해져, 부인이 불행에 빠지게 되자 쥘리엥은 마치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듯한 태도를 드러낸다. 쥘리엥이 드 레날 부인을 도울 수 있다면 목숨까지 바친다고 하며 말이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매우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나는 쥘리엥이 그녀를 돕겠다는 것 또한 그녀의 불행이 그녀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부인의 발 앞에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무감에 가득 차 있던 그는 갑자기 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자신의 의무감을 뉘우치고, 진정한 감정을 회복하려는 것인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브장송으로 떠난 쥘리엥이, 도착하자마자 만난 아망다에게 ‘당신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의 예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드 레날 부인을 떠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가 다른 여인들을 대하는 방식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쥘리엥은 드 레날 부인에게 진정한 사랑을 고백하는가 한편, 파리에서 만난 마틸드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등, 도저히 그의 마음을 알 수 없는 행동을 지속한다.



쥘리엥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자신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드 레날 부인을 생각하며 죽는 쥘리엥의 모습을 통해 그의 진정한 사랑은 드 레날 부인만이 아니었을까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지독한 의무와 지나치게 영리한 계획 안에서, 철저하게 그 자신을 괴롭힌 그 시대 속에서, 쥘리엥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든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짧지만 무엇보다도 치열했던 그의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니, 그의 생각에 공감은 못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정은 가능했던 것 같다. 그는 그 자신에게도 이해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성공에 대한 꿈을 마음속에 가지고 살아가던 가난한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웅이 되고자 하는 야심에 사로잡혀 그의 전 인생을 보냈다. 그가 조금씩 자신의 이상에 도달함에 따라, 그는 영웅이 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그토록 혐오하던 귀족이 되려는 것인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이전에 나폴레옹을 숭배하며 꿈꾸었던 영웅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그 시대의 귀족들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던 자의 꿈은 욕망으로 변질되고, 그 속에서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감정은 애써 억눌러지고 무시되었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이 욕망인지, 진정한 사랑의 감정인지조차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목표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에 갑자기 그의 사랑을 고백하던 장면, 내가 계속해서 진짜인지 의심했던 불편한 장면들이 오히려 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의무로써 자기 자신을 방어하던 그의 행동은, 하나의 목표에 사로잡히게 한 그의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속한 사회, 그가 속한 치열했던 상황에 이토록 크게 좌우된 한 인간의 삶에 연민을 느끼면서, 문득 그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떠한 삶을 살았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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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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