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명 나게 놀아보자, 창작 뮤지컬 ‘판’ [공연예술]

뮤지컬계의 판을 엎으러 온 창작 뮤지컬 '판'!
글 입력 2017.04.10 04: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신명 나게 놀아보자, 창작 뮤지컬 ‘판’


본 오피니언은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PDy8qS2rMdO-MVVRRLx2hgZK99M.png
 

  새로운 창작 뮤지컬이 탄생했다는 반가운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공연을 보러 다녀왔다. 이게 웬걸. 과연 한국 창작 뮤지컬의 짜릿함과 전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훌륭한 뮤지컬이었다. 바로 뮤지컬 ‘판’이다.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조선시대 이야기책을 맛깔나게 읽어주던 전기수 달수, 호태와 소설책을 사랑했던 서민들이다. ‘판’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맛깔나게 부르며, 여러 넘버들은 훌륭하게 엮여져 있었다. ‘판’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국어국문 전공인 필자에겐 더욱 더 와 닿았는데, 지금부터 이 창작 뮤지컬의 숨은 재미를 낱낱이 공유해보겠다.


1. 바이올린과 장구라니?
  무대 2층 왼쪽 편에는 바이올린을 포함한 오케스트라가, 무대 1층 오른쪽에는 장구를 맨 산받이(악사이자 연희자)가 있다. 이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넘버에 따라 부드럽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색다른 조합에 귀가 매우 즐겁다. 공연 중 배우들의 카혼 연주는 이색적이게 느껴지면서도, 효과적인 연출을 보인다. 조선시대 전기수 이야기를 다루며, 동서양 악기를 콜라보 시킨 것은 이 창작 뮤지컬의 신의 한 수다.


2. 꼭두각시놀음의 재탄생
  전기수는 소설을 읽고 돈을 버는 직업이다 보니, 전기수를 다룬 뮤지컬 ‘판’은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 이야기를 다루게 되었다. 실제 전기수의 주 고객층은 이야기를 좋아하나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서민들, 또는 규방 여인들이었다. 뮤지컬 ‘판’에서도 이러한 서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을 전기수들이 줄줄 읊으며 연희하는데, 그냥 듣기만 하는 전기수들의 공연과는 달리, 뮤지컬이다 보니 시각적 효과를 함께 노렸다. 바로 꼭두각시놀음-우리나라 민속인형극-을 차용한 것이다. 신명나는 넘버 속 이야기들과 어우러지는 인형극은, 어릴 적 본 여러 꼭두각시놀음과 겹쳐지며 절로 시선을 앗아간다. ‘판’의 인형 응용은 더 넓어져, 멀티맨의 분장, 배우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출 등으로 무대 위 하나의 요소로 자리 잡는다.


3. 무엇이 우릴 막는가? 풍자와 입담
  몇 개월 전 대한민국에서는 두 인물이 중심축으로 벌여온 비리들이 낱낱이 밝혀졌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문화계 블랙리스트’다. 그들이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계 인사들을 모두 차단해왔다는 충격적인 증거다. 극 중 초반에 등장한 달수와 호태는 산받이의 재촉에 ‘검은 장부에 들어갈 지도 모른다’고 얘기한다. 관객 모두는 그것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말하는 걸 알아차리곤 입담에 놀라 웃는다. 문화의 중심인 공연 산업, 그 공연 내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비웃는 대사를 직격탄으로 날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패되어있던 조선시대 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유쾌한 풍자와 입담으로 비판한다. 과거 고전소설들이 현실 비판에 무게를 실어왔던 것처럼, 뮤지컬은 서민들의 목소리가 섞인 이야기를 읽으며 진행된다. 웃으며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한 뮤지컬 배우는 뮤지컬 ‘판’을 보고 왔다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환호를 보냈다. “새삼 창작의 위대함을 느낀다. 너무 아릅답고 존경스러운 무대였고, 그로 인해 우습고 같잖은 세상살이를 되짚어 본다.(김대종 배우 트위터)” 뮤지컬 ‘판’은 이렇듯 창작 뮤지컬의 힘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뮤지컬 ‘판’에서 주인공 달수 역을 맡은 김지철, 유제윤 배우가 뽑은 애정 대사는 놀랍게도 같다.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다음에 만날 사람들이 내게 한 권의 책이 되어 주겠지. 살아가며 만나게 될 사람들이 내게 또 한 권의 책이 되겠지.’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타난 창작 뮤지컬 ‘판’은 관객들에게 그날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또 매일의 공연은 관객들을 포함한 하나의 책이 된다. 커다란 무대, 유명한 넘버가 없이도 훌륭히 제 역할을 해낸, 뮤지컬 ‘판’. ‘판’은 다가오는 15일 마지막 공연을 올린다. 흥미로운 뮤지컬이었던 만큼, 짧은 기간이었던 만큼, 빠른 시일 내로 돌아와 뮤지컬 판 속 최고의 ‘판’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주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