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제(剝製)된 영원 : 사라 바트만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4.1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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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剝製)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이는 영원한 삶이라 이야기 할 것이고, 다른 어떤 이는 육신으로부터의 자유를 앗아간 행위라 이야기 할 것이다. 나 역시 박제(剝製)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날들이 있었다. 고민의 시작은 원시부족의 모습을 한 여성이 부끄러워하며 인터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밑에만 가린 차림으로 외지인들을 맞이했다. 외지인들은 핸드폰으로 그녀를 찍고, 구경했다. 그녀는 그것이 일상인양 그들의 앞에서 걷고 웃고 말했다. 그들이 다녀간 뒤, 그녀는 그녀의 차림에 대해 “부끄럽다”고 이야기했다. 낯선 이들의 앞에서 벗은 것과 다름없는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어찌 편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식의 학비를 대기 위해서 부족의 모습을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보며 박제(剝製)된 삶에 대해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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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剝製)와 함께 사라 바트만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종차별의 상징이자 여성학대, 식민통치의 잔혹성을 이야기 할 때면 대표적으로 이야기 되는 사라 바트만은 유럽이 식민지배를 하던 19세기 노예무역으로 팔려가 한 평생을 전시된 박제품(剝製品)으로 살아야 했다. 사키 바트먼, 후에는 사라 바트먼으로 이름을 바꾼 그녀는 코이코이족 출신으로 유럽인들로부터 호텐토트 비너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호텐토트는 사실 코이코이족을 비하하는 말로, 코이코이족을 인간이 아닌 우수한 유인원 정도로 여기며 열등하다는 의미로 붙인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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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 바트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블랙 비너스』의 장면) 


 사라 바트만은 윌리엄 덥롭이 돈벌이를 위해 구매한 “상품”이었다. 그녀는 유럽과 프랑스를 돌며 광장이나 축제에서 나체로 백인들의 시선 앞에서 섰다. 그녀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일 뿐, 그녀의 인간성이나 존엄성 따위는 백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5년간 이어지는 전시와 사창가 생활을 견디던 1815년, 그녀는 프랑스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자유로워야 할 죽음은 그녀에게 안식이 아닌 또 다른 박제를 가지고 왔다.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해부학자이던 조르주 퀴비에가 그녀의 시신을 양도 받아 그녀의 생식기와 뇌를 분리해 유리병에 담고 그녀의 육체를 연구에 사용한 것이다. “인간이 멈추고 동물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명분 아래 그녀의 몸을 해부하던 칼끝은 그녀의 자유를 앗아갔다. 그녀의 뇌와 생식기는 유리병에 담긴 채로 186년간 프랑스 박물관에 전시되었고 그녀의 죽음은 박제되었다. 살아생전 그녀를 짓누르던 눈빛들이 이제는 죽어버린 그녀의 육신에 핀을 꽂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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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 바트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블랙 비너스』의 장면) 


 1995년 마침내 인종차별정책으로부터 해방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코이코이족의 뜻을 받아들여 사라 바트만의 유해를 반환 받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반환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사실상 사라 바트만을 한 명의 인간이 아닌 수집품 중 하나도 여기는 태도를 보였다. 허나 학자들과 여론의 비판이 심해지자 프랑스 당국은 사라 바트만의 유해를 고국으로 돌려보냈고, 사라 바트만은 사후 192년 만에 감투스 강가에 묻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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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제이 굴드, 김동광 옮김, 『인간에 대한 오해』, 사회평론, 2003.)


 책 『인간에 대한 오해』에 따르면, 사실 인종차별과 배척은 역사와 함께 존재한다. 인종과 성별에 따라 지능이 결정된다는 것은 배타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도덕적 알리바이를 갖추게끔 만든다. 흑인은 백인보다 우월할 수 없고, 여성은 남성보다 진화하지 못한 상태며 이로 인해 우월성을 갖는 것은 오로지 백인남성뿐이라는 과학자들의 실험결과는 당시의 사회상에 비추어 본다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인종차별과 배척으로부터 태어난 수많은 결과물인 골상학, 두개계측학, 지능지수테스트(IQ)와 우생학은 그들의 우월성에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자이자 『인간에 대한 오해』의 저자인 스티브 제이 굴드는 이러한 결과물들과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한다. 인간의 지능이 인종·계층·성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유전적·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학자들의 유명한 연구들에 대하여, 그는 이들이 연구방법으로 쓴 통계학이나 수량화가 지닌 방법과 실험적 오류를 철저히 파헤치고 이들의 결과물을 반박한다. 예컨대, 흑인이 백인보다 지능이 떨어진다는 가설 아래 두개골의 용량을 측정해 인종에 따라서 용량에 차이가 난다는 걸 입증하려고 했던 유명 학자들의 노력이 오만과 편견에 찬 것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백인들은 흑인의 특정 신체부위가 진화한 백인과 다르며, 그 이유는 흑인들의 성욕이 과잉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있어 우수한 유인원이자 열등한 존재인 사라 바트먼의 죽음은 애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 죽은 것과 다름 없는 것이므로 그녀의 죽음을 박제(剝製)하는 것 또한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사라 바트만의 부족 이름인 "코이코이"는 코이코이족 언어로 "사람"을 뜻한다. 코이코이족은 우월한 유인원도, 백인에 닿을 수 없는 열등한 존재도 아니었다. 그들은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그저 사람일 뿐이었다.

 속이 텅 빈 껍데기를 소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감정을 표현하지도, 어떤 고민도 생각도 할 수 없는 존재를 소유하고 그것을 전시하는 것이 과연 “소유”인가에 대해 고민이 든다. 단순한 물체가 아닌 온전한 존재 그 자체를 소유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것을 진심으로 사랑함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죽음을 기리기 위해 박제(剝製)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제(剝製)될 존재의 선택에 의한 경우여야만 한다. 누구도 다른 존재를 박제(剝製)할 권리는 없다. 죽음의 끝을 붙잡고 그것의 구석구석에 핀을 꽂는 게 낭만적인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인생이란 모두에게 불평등하지만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나는 이 말을 진리처럼 믿는다. 가난한 이도, 부유한 이도 모두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자유라 부른다. 진정한 자유란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동일한 선상에 서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의 죽음에도 관여해서는 안된다. 죽음은 언제나 죽음 그 자체여야 한다. 요즈음도 박제(剝製)된 삶에 대해 고민한다. 혹시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삶이 박제(剝製)된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한다.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을 박제(剝製)한 것은 아닌지 공포감에 휩싸일 때도 있다.

 자유의 날개에 핀을 꽂는 것을 상상하면 오싹한 불쾌함이 차오른다. 희뿌연 달이 사라질 것만 같은 밤이다. 박제(剝製)된 모든 것들을 떠올린다. 어쩌면 이 밤 조차 박제(剝製)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고요한 밤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아직 박제(剝製)되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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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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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la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박제된 삶'이라는 말에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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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YoNaK
    • 2017.04.24 22: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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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la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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