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감.대] 감각04. 연인과의 대화

글 입력 2017.04.08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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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모 때문인지 보통 사람들은 내가 말수가 적을 거라 예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1:1로 만났을 때 이런 내 모습을 잘 몰랐던 사람일 경우 '아, 생각보다 말을 잘 하시네요. 유쾌하시고.'하며 의외라는 표정을 짓곤 한다. 맞다,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들 속에서는 말이 없는 편이고 심지어 살짝 우울해 보일 정도지만,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과는 어떤 종류의 말이라도 붙여가며 곧잘 보내곤 한다. 물론 기복은 심하다. 기본적으로 내적인 에너지가 어느 정도 만땅인 상태여야만 누군가를 상대할 수 있는 편인 것 같다.
  대화는 여러 종류가 있다. 서로를 탐색하기 위한 대화, 나를 전달하기 위한 대화, 아무것도 아닌 대화. 굳이 유형화를 하자면 이 세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겠는데, 그러나 나의 경우 '연인과의 대화'는 다른 영역으로 분리시켜 놓는다. 세가지 전부가 포함되기도 하고 아예 그 밖에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별하다거나 유별나다는 자랑을 늘여놓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 글을 남겨두는 이유는 연인과 나 사이에 괜찮게 쓸만한 녹음기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얘기한다. 서로의 가족과 친구들, 학교생활 같은 환경적인 것부터 음악과 영화, 책, 정치, 사회적 이슈에 관한 토론도. 그날의 날씨나 그날의 기분도 우리에겐 중요하다. 항상 드나들던 길목에서 카페가 빠지고 새롭게 단장되고 있는 곳에 어떤 상점이 들어올지 예상하면서 내기를 하는 것 따위도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의미있는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도 아니고, 나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절대 아닌 시간이다. '순전히' '오롯하게'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때다. 그런 건 일기에도 충분히 적지 않느냐 싶겠지만 아니! 자신을 설명하고 탐색하는 과정을 누군가를 향해 말로 발화하는 것은 침묵의 글 속이나 SNS에 자신을 담는 것과 다른 과정이다. 확실하다.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이렇게나 해야할 말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입이 바빠진다.
  아무것도 아닌 주제로 시작한 대화가 '너와 나는 엄청나게 다른 사람이다'라는 단순하지만 거대한 결론으로 가닿는 데까지는 몇 시간이 걸린다. 하루 24시간 중 그 몇 시간을 수다로 써버렸는데도 우리가 이 대화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나와 그가 '나와 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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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그는 저녁 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같은 저녁 시간대라고 해도 서로 미묘하게 다른 시점에 애정을 품는다. 그는 해가 저물면서 맑았던 하늘이 점차 붉게 변해가는 꽤나 긴 시간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해가 지고 이미 보이지 않지만 수평선이나 능선 위로 어스름하게 남은 찰나의 황혼이 더 좋다. 연인은 자신의 하늘에서 떨어지고 떨어지는 태양을 보며 그래도 붙잡고 싶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무언가가 가슴에 일렁거린다고 한다. 그러나 해가 사라진 나의 하늘에서는 마침내 하늘에서 자유로워진 태양의 해방감과 떠나가버린 존재가 던지고 간 부재의 긴 여운이 푸르게 드리워져 있다. 이러한 차이를 발견한 우리는 거기서 대화를 멈추지 않고 각각이 인생에 대해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있느냐로 물어가기도 한다.
  그는 따뜻함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시야에 담기는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연민과 애정을 갖는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나와는 다르게, 노을을 보면서도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다고 하니 그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그 일맥을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나는 다소 비관적인 사람이다. 염세주의자라고까지는 설명하고 싶지 않고, 그저 남들보다 좀 더 많이 부정적인 편인 것 같다. 나는 내 삶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담아내려는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나란 인간의 역량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잊어가는 것이든, 떠나가려는 것이든, 변해버린 것이든, 아픈 것이든 대체로 그 앞에서 난 무력하며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 고통도 그대로 내버려둔다. 연민을 하며 내가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차라리 고통에게 편지를 쓰는 편이다.


  우리는 서로가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이게 '나'라는 사람이었구나를 배워간다. 그리고 되새긴다. 각자의 자리를 말이다. 플라톤의 <향연>에 의하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본래 하나였다가 쪼개진 반쪽에 대해 다시 일체화되어 완전성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둘'이 된 이상 같아질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자꾸 서로에게 미끄러지고 긁히는 이유다. 그와 나도 마찬가지다. 아무 생각 없이 함께 까르르 웃다가도 이토록 명백하게 다른 서로의 자리를 확인할 때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함께 있지만 다른 곳에 있다. 당신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은 서로가 다른 시공간에 있다는 뜻이다. 함께 있지만 다른 시간이 흐르다니. 그렇다면 그건 영혼의 고립일까?
  이런 류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마주보거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잘 살고 싶어. 잘 버티고 싶어. 그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에 안도한다. 그는 아깝지 않게, 아쉽지 않게 몸과 마음을 다 쓰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내 인생을 재방송으로 봐도 재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안다. 그래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대화들 속에서 나와 그는 '우리가 우리인 것'이 다행이라는 것을 서로가, 그리고 스스로가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을 마무리하면서 다시금 느낀다. 돈이 모이면 그럴싸한 녹음기부터 마련해야겠다.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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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김나연
    • 진짜 팬이에요 엉엉 글 너무조아요..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해서ly
    • 2017.04.12 15: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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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연으어... 부끄럽게...! 좋게 봐주셔서 너무너무 고마워요*_*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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