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창간호를 만나다: 월간 '독서경영' 01호 (잡지)

글 입력 2017.04.0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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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통한 성장, 성장을 통한 경영"
독서경영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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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중, 고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책을 많이 읽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들었다. 그러나 책이 무엇이고,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이고, 독후감을 남기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단지 중요하다고만 했다. '독서'가 정확히 뭐고 인간의 의식 활동에 있어 어떤 의의를 차지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다독자나 독서경시대회 등에서 책을 잘 읽고 무언가 성취를 보인 학생들에게는 항상 상을 줬던 것을 보면서 '그래, 당장은 모르겠지만 좋은 거긴 한가보다' 생각했다. 다행이도(?) 나는 책에 있어서만큼은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다. 열렬한 인사이더였다. 친구들이 책 추천을 부탁할 만큼은 읽었다. 생일선물도 책을 가장 많이 받았다. 어떤 목적 의식을 갖고 열심히였다기 보다는 내게 책은 어렸을 때부터 그만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그야말로 책벌레였다. 일주일에 한번 혹은 보름에 한번씩, 가족들 이름 앞으로 각각 만들어진 대출증으로 오로지 나를 위한 책들을 잔뜩 골라 펼쳐놓고 한권 한권 해치워 나갔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의 말에 의하면, 자야할 시간이라 어서 불을 끄라고 하자 내가 스탠드를 이불 속으로 끌고 들어가 그 안에서 읽겠다고 하는 것을 말린 적이 있다고 한다. 어지간히 좋아하긴 했나보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집에서 가장 흔하고 널린 것이 책이다. 거실 한쪽 벽은 책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들의 자리다.

  그래서 지금의 독서 습관은? 중,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책에 관해 흥미가 아니라 일종의 의무감을 느끼는 쪽으로 바뀌었다.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입시 공부에 온 정신과 체력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던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도 책읽기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책을 읽고 있던 학생의 책을 압수하고 체벌을 했다!) 내가 본 글자와 들었던 말은 모두 시험을 위한 것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의 분위기 자체가 독서를 방해하는 외압이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대학교에 와서는 국어국문학과에 다니고 있다. 그래, 책을 떼려야 뗄 수 없는 학과 말이다. 그리고 무참하게도 지금의 내 독서량은 형편없다.
  시를 쓰기 때문에 꾸준히 시집들은 구매해서 읽고 있지만 이 외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이제 내 뇌는 배우는 것에만 익숙하다보니 능동적으로 텍스트를 읽는 습관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래도 나름 노력은 했던 것 같다. 아무도 들을 것 같지 않는 교양수업인 ‘고전읽기’를 들으면서 1학년 때는 플라톤, 2학년 때는 니체, 지금은 박지원을 읽고 있다. 고전은 읽을 때마다 난항이다. 그래서일까. 독서력이 부족하다는 자괴감은 책과 멀어진 시점부터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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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호로 첫 창간 잡지를 낸 월간지 <독서경영>을 읽으면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창간호라 그런지 '독서를 통한 성장, 성장을 통한 경영'의 모토를 담아내기 위해 ‘독서의 중요성’을 재차 언급한다. 공감도 됐고, 눈길을 끄는 구절들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뻔하게도 느껴졌다. 그래, 독서 중요하지. 그런데 왜? 책을 읽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값진 선물, 재미있는 경험,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분석력과 비평력! 고은 시인의 교훈적인 말씀을 통해서도,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독서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연합나비독서모임’과 커뮤니티 서비스 ‘트레바리’와 같은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효율적이고 ‘무언가 남는’ 독서를 할 수 있다는 느낌은 확확 들었지만 그래서 어떻게? 왜 책을 어떻게든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시선을 오랫동안 채어가서 놓아 주지 않던 부분이 있었다.
  ‘고전을 읽으며 만나는 특별한 리더십’이라는 챕터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정약용의 일화'와 ‘읽는 사람만이 다르게 읽을 수 있다’에서의 소제목 ‘읽으면 읽을 수 있다’ 였다.
  
  ‘읽는다’는 행위는 글이 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창작 주체와 독서 주체의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독자는 텍스트가 향하는 곳으로 활짝 열려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위해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 시선은 순수하고 무지하지만 뜨겁다. 뜨거운 열정일 수도 있고, 뜨거워지기 위한 열정일 수도 있다. 영특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살았던 한 소년의 삶을 의미 있는 길로 이끈 정약용의 일화처럼, 준비된 독자라면 혹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글에 담긴 세계에 귀를 기울이는 독자라면 타인이 새긴 문장과 생각을 자기 세계의 말로 번역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다가서는 글 읽기’다. 모든 읽는 행위는 시간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다 하더라도 한 발짝, 한 문장의 숭고함을 갖출 수 있다. 읽는 주체가 텍스트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고, 그때 글은 살아 있을 수 있다. 어떤 글이, 작품이 세상에 나올 때 독자가 있어줘야 하는 이유다. 그 이후에 책과 독자 사이의 견고한 이음새가 갖게 될 의미는 두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그런 독서의 출발은 단연 일단 ‘읽기 시작하는 것’.


월간 독서경영은 서울 예장동에 있는 문학의집에서 고은 시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고은 시인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설가 신중선 작가님과 사진촬영을 담당한 임수식 사진작가님..jpg
 

  <독서경영>을 읽고, 며칠 전에 구매한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과 시집 두 권이 다시 보였다. 그것들을 완독을 하고 책장을 덮는다고 해서 무언가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시를 더 잘 쓰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읽는 동안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며 읽었던 사람이었고 무엇을 새롭게 봤고 내 눈빛을 받은 문장들이 얼마나 생동했는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어떤 이와 눈을 마주치고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그것을 기억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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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독서경영
- 창간호 -

발행처: 피알엔코리아(주)
분야 : 잡지
규격 : 205mm * 275 mm
쪽 수 : 140쪽
발행일: 2017년 2월 27일

정가 : 20,000원
ISSN 2508-7770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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