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울고 있는 음악, 위로받는 사람

글 입력 2017.04.0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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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것을 들어도 음악이, 악기가 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는데 이번 연주회에선 그런 느낌을 받았다. 특히 연주 초반의 곡들한테서 강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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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보르작의 초기 작품인 스타바트 마테르는 그가 자녀들을 여의고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악을 감상하는 데 그러한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계속 그런 상황들을 생각하며 듣게 되고 더 슬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달리 생각해보면 드보르작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음악은 대부분 그 때의 감정을 담고 있지 않은가? 가령 내가 헤어졌을 때 들었던 음악은 언제 들어도 그 슬픈 감정이 떠오르고, 반대로 정말 행복할 때 들었던 음악들은 언제고 몇 번이고 들어도 그 때의 그 행복한 감정이 음악만 들으면 되살아난다. 단지 음악을 듣는 것만도 이러한데, 작곡을 하는 입장은 더욱 몰입해야하고 그에 따라 이입이 될 것 같다. 자녀들의 죽음이 지휘할 때 마다 느껴졌을 것만 같은데 그래서인지 이 곡으로 드보르작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슬픔이 그를 행복하게 했다는 모순이다.

 1장에서는 자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까지의 그 힘겨움이 느껴졌다. 흔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다섯 단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충격/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긍 이 그것인데, 1장에서 느껴진 것은 충격과 부정, 조금의 분노였다. 당연한 말일지는 몰라도 주변인들의 죽음(혹은 나와 연고가 아예 없는 사람들의 죽음마저)은 몇 번의 장례를 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고 믿어지지 않았던 죽음은 초등학교 때 외할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맞벌이 부모님을 둔 탓에 외할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쓰러지시고 하루 만에 돌아가셨다. 어린 나에게 큰 슬픔이었다. 그 때 이 음악을 들었으면 더 펑펑 울 수 있었을 것만 같다. 이 연주는 죽음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준다. 너만 그런 것 아니라고, 그런 죽음이 끝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특히 5장의 ‘Tui Nati Vulnerati‘은 뭔가 두둥실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슬픈 느낌은 없고 죽은 자를 축복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주회를 가기 전에 음악을 한 번은 들어봐야 할 것 같아 듣고 갔는데, 역시 직접 듣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구나 싶었다. 연주 뒤편으로 한글로 자막이 떴는데 ‘천국에서 주와 함께 행복하소서’ 하는 가사가 인상 깊었다. 드보르작의 염원이 담긴 듯 했다.

이 연주를 기다리며 드보르작의 이 음악이 어떤 분위기 일지, 어떤 색을 띨지 궁금하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흰색이 아닐까 싶다. 그의 어두운 슬픔이 음악으로 승화되어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연주를 들으면서 세월호 아이들이 문득 떠올라 눈물이 살짝 찼다. 그로부터 며칠 후 3년 만에 인양이 되었다. 드보르작의 음악이 여러 사람들을 위로해주면 좋겠다.


[이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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