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젠가 피어오를 '가능성'을 위하여, 2017 리컴포즈

글 입력 2017.04.0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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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피어오를
'가능성'을 위하여
2017 리컴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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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저는 ‘로열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감상했습니다. 제가 제 의지로 오케스트라를 감상한건 처음이었죠. 그때 저는 난생 처음으로 클래식을 한 덩어리가 아닌, 각각의 선율로 인식했습니다. 모든 악기들의 소리가 합쳐진 ‘하나의’ 선율이 아닌, 악기 각각의 소리를 처음으로 들어봤죠. 그 각각을 보고 느낄 수 있었기에 그들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는데요.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제가 오케스트라를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리로만 들을 때는 인식할 수 없던 것을 보게 되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소리가 추가됐을 때, 눈으로 그를 쫓을 수 있으니 소리에 더욱 민감해지게 됐죠. 어떤 악기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는지 유심히 살펴보게 되기도 했구요.

그래서 저는 이번 국립국안관현악단의 리컴포즈를 기대했었습니다. 서양의 악기만으로 이뤄졌던 공연도 소리 하나하나를 쫓기 바빴는데. 거기에 국악, 즉 우리의 악기까지 추가된다면 어떨지 진심으로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뿐 아니라 그 각각의 악기들을 통한 동양과 서양, 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만남 또한 무척이나 기대가 됐습니다. 새로움은 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에서 변형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처럼 양극단에 서있는 것들의 만남이야말로 ‘새로움’의 시초라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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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 리뷰에선 언제나 그렇듯, 이 기대는 일부만 이뤄졌고 일부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공연 순서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서, 기억나는 순서대로 각 곡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맨 첫 타자는 정읍사 바탕인 궁증음악 수제천을 소재로 한 ‘달아, 높이 떠서 멀리 비추어 다오’입니다. 제가 너무 기성 음악, 즉 기본적으로 각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선율(혹은 두세개의 선율)을 이뤄나가는 음악에 익숙해서 일까요. ‘달아, 높이 떠서 멀리 비추어 다오’는 다소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조화를 이루겠지, 합쳐지겠지, 하면서 아무리 기다려도 조화를 이루지 않는 선율은 제겐 퍽 당황스럽게 느껴졌었습니다. 

물론 꼭 조화를 이루지 않아도 각각의 선율을 아름다웠습니다. 처음엔 그 소리에 매료되기도 했죠. 하지만 부조화가 약 15분 가량 반복되니,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워낙 연극이나 영화 등 ‘스토리’를 좋아하고, 그에 매료 돼서 그런지 중심적으로 음악의 ‘스토리’ 이끌어 가는 무언가가 없으니 집중이 힘들었습니다. 음악 자체에서 조화를 느낄 수 없었으니, 당연히 서양악기와 동양악기의 조화도 느끼기 힘들었고요. 

두 번째는 영산지심입니다. 사실 각 악기 명칭을 제대로 안다거나, 뭐라 음악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재주는 제게 없지만. 다소 느린 선율인데다가, 기본적인 선율을 계속해서 유지해나가는 듯 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연주해 나가는 것이 신기했던 곡이었습니다. 서양 악기보단 우리 악기들의 소리가 도드라졌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악기와의 조화도 좋았습니다.

세 번째는 버들은 실이되고 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곡이었는데요. 무슨 악기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가냘픈 소리로 피리소리와 같이 울리는 소리가 참 구슬펐던 곡이었습니다. 약간의 긴장감을 주는 듯한 선율의 진행도 참 좋았습니다. 점점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가장 익숙하지 않을 소리이고, 가장 난해하게 들릴 수도 있는 소리인데. 어느 순간 빠져 들어가 있는 게 참 신기했죠. 특히나 곡 말미에 격정적이고 빠르게 흘러가는 부분은 눈으로 각 악기를 따라갈 수 조차 없었지만. 어쩐지 격정적이었던 한 인간의 삶을 느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네 번째는 진토굿입니다. 아무래도 굿이라서 그런지 주술적인 느낌이 강했는데요. 초반에는 어떻게 보면 부조화라고 느껴질 수 있을 만큼 각자가 자신의 주장을 충실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달아 높이 떠올리 비춰다오’와는 또 약간 다른 느낌이었죠. 말미 부분에 아마 가야금이 주를 이뤘던 선율이 참 아름다웠던 기억이 납니다. 단호하면서도 아름답고 그 와중에도 다른 악기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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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곡당 약 20여분. 결코 짧지 않은 각 곡들을 들으면서 때로는 흥겨웠고, 때로는 소리의 발원지를 찾기 위해서 눈을 바삐 움직였습니다. 때로는 서양음악, 아니 팝음악에 익숙한 제겐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에 멍하니 앉아있기도 했죠. 

그 과정을 겪으며, 제가 리컴포즈에 내린 결론은. 리컴포즈는 ‘가능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무언가를 이뤄냈다고 말하기엔, 조화를 온전히 이뤄내지는 못한 것 같았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국악 특유의 느린 선율에 서양음악(혹은 현대음악) 특유의 난해함이 섞여, 집중하기 힘든 음악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니까요. 아직은 ‘대중적’으로 만들기엔,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많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컴포즈가 의미를 갖는 것은, 전통의 재발견 측면에서도, 현대 예술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서도. 리컴포즈는 꼭 필요한 것이며…만족스럽기만 했던 무대는 아니었지만, 동서양 악기가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선율은 희망적인 가능성을 제시하기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리컴포즈는 ‘가능성’이었습니다. 어떻게 말하자면, 아직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 거죠. 하지만. 그 가능성이 품고 있는 무궁무진한 미래를 볼 때, 그것만으로도 리컴포즈를 할. 그리고 감상할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언젠가 이 '가능성'이 활짝 피어올라, '미래'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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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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