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쉽지만 묵직하게 다가오는, < 너라는 계절 > [문학]

글 입력 2017.04.0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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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색의 종이로 된 서류봉투에 담겨진 책을 받았다. 대만에 여행을 갔을 당시 지우펀에서 산 엽서를 점원이 작은 갈색봉투에 정성스럽게 담아주신 기억 때문에, 나는 택배상자로 택배를 받는 것보다 서류봉투에 받는 쪽이 조금 더 설렌다.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모양을 만져보고, 뜯어지지 않게 꽁꽁 붙여놓은 테이프를 뜯는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이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에세이들이 유행을 타고 있는 듯하다. 연인끼리 서로의 마음을 담아 선물하기도 하고, 친구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고, SNS에서 이벤트를 통해 받기도 한다. 심지어 나는 이번 생일에 남동생에게서 감성이 가득 담긴 책을 선물 받았다. (내가 사오라는 말도 없었는데...)

  그 중 이 책을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다음에서 연재중인 석류의 그림에세이를 책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모바일로 다 전달되지 않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책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인터넷과 직접 펼쳐서 읽는 종이책 사이에는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차이가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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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는 글과 함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펜으로 가볍게 그린 것 같은 그림이 담겨있다. 처음 읽었을 때에 쉽게 읽히는 글과 잘 어울리는 가벼운 그림체라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 < 너라는 계절 >에 걸맞게 사랑의 계절/ 여행의 계절/ 너라는 계절/ 나라는 계절 4개의 큰 주제로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 잔잔하게 마음속을 흘러가는 글들이 있다. 앞서서 쉽게 읽혀지는 글이라고 말했지만, 계속 곱씹다보면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묵직한 매력이 있다. 책 속에 담긴 글을 몇 개 보여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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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나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질 못한다. 끊임없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어딘가에 오래 머무른다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집보다 밖이 편하다는 생각도 매번 든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역마살이 제대로 꼈다고 말했다. 그게 역마살이면 뭐 어때. 내가 좋다고 느끼면 그만인 것을. 나는 짧더라도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다니는 게 좋고, 그 이름 아래서 행복감을 느낀다. 사실 여행이라는 이름을 딱히 붙이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 자체가 긴 여행의 하나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길디긴 우리의 삶의 여행,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여러 날을 들여 떠나는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삶 자체가 긴 여행의 하나니까.” 길 여행을 하는 도중 하루만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좋아하는 동네에 가 평소 즐겨먹지 않던 커피를 시켜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일,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뒤 집 근처의 동네 또는 놀이터에서 조용히 거닐며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일. 이 모두가 여행 속 여행이다. 우리의 삶을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 차게 해주는 것들, 이것들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지.



/ 교토 /

  "청수사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갑작스레 내리자는 말에, 반짝이는 교토의 거리위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예정에는 없던 하차였지만 마냥 좋았다. 여행의 묘미란 즉흥에 있으니까. 나란히 교토의 거리를 거니는 그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자유로움이 들었다. 일상에서는 쉽사리 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기에 이처럼 작은 일탈이 더 짜릿하게 느껴진다. 왁자지껄한 소음도, 엉뚱한 경로를 알려주던 지도마저도 그저 즐거웠다. 차가울 줄만 알았던 교토의 거리가 목련 꽃잎처럼 부드럽게 발끝에 다가오는 순간, 비로소 나는 행복감에 겨운 숨을 뱉어낼 수 있었다."

이 대목을 읽는 내내 교토에서 엉망이었던 나의 하루가 생각났다. 아침부터 길을 잃어 지도를 욕하고, 밀려버린 일정과 문을 닫아버린 청수사의 저녁에 역정을 내며 버스를 타러가는 내 모습을 기억했다. “여행의 묘미란 즉흥에 있으니까.” 이 대목에 공감을 하면서도 당시에는 짜증만 날 뿐 모든 것이 다 추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떠올렸을 때, 그때서야 “우리 그때 이래서 화가 났었지.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했을 특별한 경험이었어!”라고 말하는 거지. 뒤돌아서면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기에 나는 또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나보다. 여행은 언제나 즐겁지.



/ 눈 /

  "나는 얼굴에 대한 칭찬보다 눈에 대한 칭찬을 듣는 게 더 좋다. 섬에서 지냈던 시기에 유독 눈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들었다. 아이처럼 맑고 수수해 보인다는 사람도 있었고, “경계심을 해제시키는 눈빛이다, 호수처럼 깊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반짝거린다.”는 얘기 등등. 단면적인 얼굴에 대한 칭찬보다 눈에 대한 칭찬이 더 좋은 건 이렇게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 여배우가 왜 현재의 배우자와 결혼을 했냐는 질문에 답변한 내용. “다들 제 얼굴을 보며 아름답다고 하지만, 제 눈동자의 색이 어떤 색인지 알아본 사람은 지금 제 남편이 유일했어요.” 현대인들은 상대방의 눈을 마주치기 두려워한다. 음식점에서 주문하고 계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도 몇 명 있고, 핸드폰으로 간단하게 결제하는 서비스가 늘어나 배달전화를 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다. 이렇게 남과 눈을 맞대는 상황이 줄어드는 현실이다. 그러나 ‘눈을 본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행동인 것 같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그 속내를 눈동자를 통해 진심을 알 수 있다. 나는 상대와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의 표정과 눈동자를 쳐다보는 것이 때론 부끄럽지만, 때로는 내가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가 전달되는 것 같아 자주 그런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앞으로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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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듯이, 점차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다. 공원에 놓인 벤치에 앉아 책을 넘기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책 < 너라는 계절 >과 함께 추억 속 상대방을 그려보며, 혹은 현재 나와 함께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갔으면 좋겠다.



찬란하고도 쓸쓸한 너라는 계절
문화리뷰단_ 박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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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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