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절망한 자에게 건네는 담담한 위로 : 영화 '다가오는 것들' [시각예술]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니체
글 입력 2017.04.02 16: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movie_image.jpg


온갖 시위들이 벌어지고 혁명의 기운이 일렁이는 현대 프랑스 사회 안에서도 별 탈 없이 평탄하게 살아가고, 이를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던 주인공 나탈리. 하지만 그녀는 별안간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는다. 남편이 외도를 고백하고, 그 와중에 어머니까지 세상을 뜬 것이다. 언제까지나 자신만을 사랑할 거라 굳게 믿고 있던 남편은 말할 것도 없고, 평소 귀찮게 여겨졌던 어머니도 떠나고 나니 그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탈리는 이 상황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생각을 해.
애들은 품을 떠나고 남편은 가고 엄마는 죽고.
나는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온전한 자유."


movie_image1.jpg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고자 시골로 내려간 애제자 파비앙을 찾아가 그의 집에서 머문다. 하지만 파비앙에게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삶의 근간을 뒤흔들지 모를 사상은 외면한다'라는 비난을 받고 상처를 입는다.

 사실 파비앙의 말이 좀 과격하긴 해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자유'라 정의내렸지만, 이것은 자기 자신조차 기만한 말이었다. 그녀는 힘든 상황들을 통해 약해져 있었고, 거짓된 생각으로 이를 덮으며 애써 긍정적인 면만 보기보다는 그 상황 자체를 진실하게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에게 닥친 일들은 그녀의 삶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외면해버린 것이다. 마치 평탄한 삶, 그리고 남편과의 행복을 위해 옛날에 좇던 급진사상을 외면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학생들의 시위를 외면한 것처럼.

 결국 상처입고 의지할 데 없는 그녀는 어머니가 키우던 고양이 판도라를 처음 떠맡았을 땐 짐이 생겼다는 둥 털알레르기가 있다는 둥  귀찮아하다가 점차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판도라가 사라지자 밤새 찾아다니고, 파비앙과의 짧은 말다툼 후에는  끌어안고 흐느끼기도 한다.  스스로를 '40이 넘은 여자는 가치가 없다'고 평가함과 함께 판도라를 '늙고 뚱뚱한 고양이'라고 일컫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처지에 놓인 둘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movie_image2.jpg

 1년이 지나고 그녀는 다시 파비앙을 찾아간다. 첫 번째 방문에서는 차 뒷자리에 놓여져 있던 판도라는 이번 방문 땐 그녀의 무릎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만큼 둘의 사이는 그 사이 더더욱 친밀해졌다. 한밤중에 판도라는 다시 한 번 사라지지만 이번엔 밖에 나가지 않고 밑에층에 가만히 앉아있다.

이렇게 친밀해진 둘이지만, 나탈리는 다시 파비앙의 집을 떠나며 그에게 판도라를 아예 맡겨버린다. 비록 심적으로는 판도라와 더더욱 가까워졌지만, 떨어져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판도라와 나탈리의 동일성의 관점에서 다시 말하자면, 예전의 나탈리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까봐 집착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친밀성을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상처가 치유되면서그녀도 성장해서 정체성도 바로잡고, 자기 자신에게도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허했다는 것이다.


movie_image3.jpg

 1년이란 시간. 표면적으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씩, 모든 게 변했다. 세상도 변했고 그에 따라 나탈리도 변했다. 도시에서 10년이나 거주하던 판도라가 숲에 들어간지 반나절만에 고양이의 본능을 발휘해 쥐를 물고 온 것처럼,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모든 생물의 본능이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가도 결국 다 살아낼 수 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모든 '다가오는 것들'은
우리 안에서 다 소화되고 녹아든다.
견디다 보면 편해지고, 강해질 것이다.


​이 영화는 한 차례의 큰 변화로 힘들어하는 내게 담담하게, 그리고 지극히 현실적으로 이런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이 말은 크나큰 위로로 날 감싸주었다.


movie_image4.jpg


+ 나탈리가 철학선생이라는 설정이 이 영화에 더 깊은 맛을 가미한 것 같다. 철학수업에서 다루는 주제나 읽는 글들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데, 괜찮아진 후에 읽는 이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행복해지기 전이 가장 행복하다."

비록 나탈리는 또 다가올 다른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과정에서도 나름의 행복을 느낀다. 이루는 와중의 행복은 어쩌면 다 이룬 행복보다 더 값진 것일 수도.


[명수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